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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스케 Nov 30. 2020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는 슬플 거라는 편견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이누도 잇신
장르: 드라마
개봉: 2004
국가: 일본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우에노 주리 등

현실적이어서 다큐 같은 엔딩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인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다. 어느 날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길 가다 우연히 조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알게 되고, 점점 사랑에 빠진다.

조제와 츠네오가 우연히 만난 장면

처음에 둘이 우연히 만나는 장면,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은 말 그대로 ‘영화’ 같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많은 이의 인생 영화로 뽑히는 이유는 엔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조제와 츠네오는 이별한다. 하지만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둘이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랑이 식었는데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서 애정이 식었고 둘은 이별한다. 가끔 둘은 서로가 생각나 씁쓸하고, 아련해하기도 하지만 또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조제와 이별했지만 조제가 생각나 힘든 츠네오

이 세상의 수많은 ‘지나가는 사랑’을 잘 표현했다는 점이 이 영화를 현실적이고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지나가는 사랑이 뭐 특별하게 위대하고 그런 게 아니라 평범하게 지속다 마무리되고, 또 다른 사랑이 다시 시작된다는 점에서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우리 모두의 사랑과 닮았다.

조제와 츠네오의 이별 장면

호랑이와 물고기들


영화 속 조제는 츠네오와 호랑이를 보러 간다. 호랑이를 보며 조제는 츠네오에게 이런 말을 한다. “호랑이가 무섭지만,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와보고 싶었어. 남자친구와 함께라면 무서움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때 호랑이는 조제의 ‘의존적인 사랑’과 ‘용기’를 의미한다. 애인이 생김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호랑이를 마주할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생겼지만, 이는 애인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소 의존적인 특징을 갖는다.

호랑이를 보고 있는 조제와 츠네오

반면 물고기들은 조제의 ‘독립’, ‘다양성’을 의미한다. 영화 속 조제는 물고기를 보기 위해 아쿠아리움에 가지만, 문이 닫혀 꼭 보고 싶었던 물고기들을 보지 못한다. 대신, 우연히 지나가다 찾은 ‘물고기 테마 호텔’에 묵는다. 조제는 방 안에 누워 물고기 모양의 불빛들을 보게 된다. 한 번의 고난이 있었음에도 기어코 극복해 만난 물고기들의 모양은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갖가지 조개 등 다양하다.

여러 모양의 물고기를 보면서 조제는 이렇게 말한다.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근데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조제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봤고, 혼자도 살아갈 수 있다는 힘을 얻었다. 혼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물고기는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들’로 존재하기 때문임을 알았기에.

'물고기들'을 보며 웃고 있는 조제

영화 마지막 쯤, 조제는 츠네오 없이 홀로 잘 살아간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밀어줘야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위축되고 소심하게 살아갔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조제는 홀로 전동 휠체어로 도심 곳곳을 당당하고 자유롭게 누빈다. 이동수단의 변화는 조제의 삶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 조제

‘장애=슬픔’이라는 또 하나의 편견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인생 영화로 꼽았지만,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이유는 ‘슬플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는 결국 결말이 슬플 것이고, 신파적일 것이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그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실제로 마주한 이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지나가는 사랑 이야기’였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스토리 앞에서 내가 가진 생각이 편견으로 가득 찬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번 계기로 앞으로는 편견 없이 영화 시청을 시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편견을 깨지 않았더라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영화를 마주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인생 영화를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될 수 있으니까.

책을 좋아하는 조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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