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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스케 Aug 16. 2020

사랑의 필요조건은 독점 아닌 여백

책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도서명
: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저자
: 홍승은
홍승은 작가는 페미니스트 집필 노동자다.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글쓰기 에세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폴리아모리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등을 집필했다.

■ 책 내용 및 소개
: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대한 책이다. 폴리아모리란 ‘비독점 다자 연애’를 뜻한다. 한 사람과 독점적으로 사랑하지 않고 다자간 사랑하는 형태다. 이 책은 홍승은 작가의 폴리아모리 에세이다. 홍 작가는 두 명의 애인과 사귀고 한 지붕 아래서 산다. 세 식구의 사랑과 삶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책 표지

■ 요약 키워드
#비독점
#합의
#존중
#관계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해방감
#상상력


■ Aha moments
#사랑의 필요조건은 독점 아닌 여백
 나는 우리 가족을 소개할 때 ‘셰어하우스형 가족’이라는 표현을 쓴다. 각자 방에 들어가 개인의 시간을 보내는 비중이 크다. 방문을 꼭 닫고 있을 때면 굳이 말을 걸지 않고, 밥도 자기가 먹고 싶을 때 알아서 챙겨 먹는다. 하지만 고민이 있을 때나 힘들 때 이따금 거실과 부엌으로 나와 얘기할 시간을 갖는다. 종종 외식도 한다.
 명절 때만 되면 일부 친척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편견 가득한 참견을 내뱉는 것에 불쾌했던 나는 우리 네 식구가 셰어하우스형 가족으로 사는 지금이 정말 좋다. 때론, 가족 사이가 먼 거 아니냐며 서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난 서로 독립적이고 존중하는 지금이 좋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서로 선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가까이 있어 쉽게 상처 주기 쉽다. 서로 잘 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홍 작가는 “아무리 깊이 사랑해도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얇은 벽을 넘지 못하는 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계는 지속하기 힘들었다.”라고 했다.
불쾌감만 느끼는 명절 친척 집에 이제 그만 가겠다고 선언한 것도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나서였다. 불편한 내 감정이 있을 때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행동을 변화해도 괜찮다는 그의 조언에 용기를 갖고 실천했다. 그때 부모님은 나에게 네 의사를 존중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이제 명절이 되면 “다녀올게”란 말은 해도 “같이 가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홍 작가는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일정 부분의 체념과 인정으로 나는 조금 더 상대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 안에 모든 걸 포함시키려고 하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가두는 우리(cage)가 될 테니까.”(라임에 감탄), “나를 지우는 사랑이 아닌 나의 토대에 단단하게 발 딛고 걸어가는 사랑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내가 지향하는 사랑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책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지금, 비록 새 책 내음은 희미해져 버렸지만, 글자로부터 오는 따뜻한 온도감 느껴진다.
 
“합의의 반대말은 권력이다”
“상상력으로 내 안의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

북토크에서 받은 홍승은 작가의 사인

#콘텐츠가 주는 어떤 해방감
 지난주 방문한 홍승은 작가의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북토크에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한 단어를 뽑자면, ‘해방감’이다. 홍 작가는 영화 〈두 개의 선〉을 보며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커플은 법과 제도, 다른 관계들 속에 억지로 포함되기 싫다는 이유로 결혼 아닌 동거를 선택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병원 갈 일이 생기면서 결국 출생신고, 혼인신고 등 기존의 틀에 구속된다. 홍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도 어떤 해방감을 주는 책을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가 홍 작가의 책에서 어떤 이끌림을 느낀 것도 일종의 해방감이 아니었을까 되짚어본다. 홍 작가는 불편함을 행동으로 드러내도 된다고, 구속하는 방식이 사랑의 디폴트값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불편함을 표현해도 될까’, ‘꼭 붙어있어야 사랑인 걸까’라고 생각하며 계속 날 의심했었다. 홍 작가의 책은 이런 내 생각까지도 배제하지 않고 인정해준다. 모두가 고유한 존재니 그렇게 살아가도 된다고 토닥여준다. 사실 모두가 고유한 존재라는 말은 모두가 각기 다른 자신만의 특성이 있다는 말이다. 때론 우린 그 특성을 숨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드러났을 때 변화가 시작된다. 그 반응이 좋든 나쁘든 세상에 조그만 균열이 남는다.
 균열은 또 다른 균열을 일으킨다. 그렇게 숨어있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고 고유한 존재로 인정받을 때 나도 더 나 다운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세상이란 단단한 얼음장에 부딪히고 균열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균열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입장도 충분히 흐뭇하지만, 이제는 내 콘텐츠로 직접 균열을 내며 그 짜릿함을 맛보고 싶다. 뉴스든, 에세이든, 영상이든, 랩이든. 어떤 방식이든.


■ 기억에 남는 문장들
#존중
p39. 아무리 깊이 사랑해도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얇은 벽을 넘지 못하는 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계는 지속하기 힘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정 부분의 체념과 인정으로 나는 조금 더 상대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p272. 우리 안에 모든 걸 포함시키려고 하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가두는 우리(cage)가 될 테니까.
p279. 나를 지우는 사랑이 아닌 나의 토대에 단단하게 발 딛고 걸어가는 사랑을 하고 싶다.
p282. 우리는 다만 서로를 소유하고자 애쓰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쓴다. 소유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상대와 또 다른 상대를 존중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합의
p162. 협상력의 토대가 공평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적인 합의 원칙을 따를 경우, 폴리아모리는 권력을 가진 몇몇만 누릴 수 있는 트로피가 되어버린다.
p187. 지민: 끊임없는 대화와 합의를 통해 평등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삭제된 지금의 비정상 사회에서 우리는 다시 합의, 대화, 존중을 말하고 지키려는 노력 중이다.
p200. 우주: 폴리아모리를 단지 기질이나 성향의 문제로 이해하는 순간, 관계에서 필요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견
p183. 은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모르면 혐오하고 알면 사랑한다.” 지민: 상상력의 부재가 얼마나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폭력이 되는지...
p207. 우주: 우리를 드러내기로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이 늘 옳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려고 우리가 굳이 이 노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p252. ‘정상’의 틀은 수많은 ‘비정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그 틀에서 벗어난 존재에게 당연하다는 듯 권리를 박탈한다.
p331. 김도현 “중요한 건 어쩌면 편견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편견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소통과 배움을 통해 그러한 편견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변화 시켜 나가려는 태도일 것이다.”
 
#비독점
p185. 지민: 사실 과연 지금까지 일대일 관계들이 서로에게 만족을 주었는지 묻고 싶다. 일대일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일대일이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있는 독점과 통제, 소유가 폭력의 배경이 됐다.
p197. 지민: 연애를 시작하면 당연히 독점이 약속으로 여겨져서 너는 내 것이 되고, 나는 네 것이 되고... 소유와 통제가 암묵적인 전제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연애가 시작되자마자 역할이 정해져 버리잖아요. 성별에 따른 역할이나 연인이라면 무릇 ‘어떠해야 한다는’ 것들. 다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때론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그것만이 유일하다고 상상되는 사회이기에 안 헤어지고 버티는 것만이 책임이라고 여기는 게 안타까워요.
 
#해방감
p253. 기존의 언어가 설명하지 못하는 빈 곳을 채우려고 ‘난리 치는’ 서사들. 그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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