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by 작은 마음 수집가


‘아이에게 엄마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칫한다.


둘째가 27개월 무렵, 걷고 뛰고 스스로 옷을 입고 밥을 먹는다. 그렇게 신체적으로 독립성을 키워가면서도 정서적으로 엄마에게 재접근하는 시기가 있었다. 어느 날은 목적지에 도착해 아이를 내려주려고 아빠가 자동차 문을 열었다. 그러자 마치 아이의 불안 버튼이라도 눌린 듯 “엄마가! 엄마가아!!!” 하며 문을 여는 의식부터 다시 엄마가 하기를 요구한다.

밥을 먹다 떨어트린 숟가락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주워주면 다시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엄마가 다시 주워달란다.




‘아이에게 엄마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이 시기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동전이 뒤집히듯 아이의 기분과 감정이 변한다. 온몸으로 아이의 칭얼거림과 울음, 고집과 생떼를 받다 보면, 하루 끝에는 ‘푸시시이-‘ 힘 빠진 풍선처럼 입을 앙 다물어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사히 하루를 견뎠구나, 하는 마음과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호흡으로 쥐어짜 내는 순간이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감정 기복이 몹시 심하고, 떼쓰기가 절정이 되며, 엄마와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이 시간을 엄마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흘러가기를 그저 기다려야 한다. 왜 저러는 건지 도저히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진심으로 귀찮고, 버겁고, 지친다. 그러다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자기 전에 또 아이에게 ‘미안하다’ 후회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 재접근기 때 아이 마음에는 온갖 물음표들이 떠다닌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힘들게 매달려도 떠나지 않을 거야?“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아이야, 아니면 아직 아기야?“

”엄마 마음은 내 모든 감정을 감당할 수 있어?“

“엄마는 정말 나를 사랑해?”

“나 엄마랑 조금 떨어져도 괜찮은거야?”



아이가 스스로 이런 질문들에 어느 정도의 확신과 안정적인 답을 찾을 때쯤, 어느새 아이는 달라져있다.

“엄마 양치만 하고 나올게”하고 화장실에 문을 닫고 들어가는 엄마에게 ”응!“ 담백하고도 씩씩한 대답 하나만 하고도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차분히 설명을 듣고 납득을 하면, 떼도 더 이상 길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매달릴 때 떠나지 않고, 어떤 모습도 안아주고, 귀찮아도 끝까지 설명해 주고, 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오는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것이다.


엄마를 향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짙은 농도의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아이의 마음.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며 엄마의 온기와 관심을 무럭무럭 흡수하고는 어느샌가 아주 조금씩 혼자 힘으로 오뚝하고 서가는 아이.

그 찰나 같고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나는 새로이 사랑을 배워간다.


상대가 어떤 모습이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준다는 것과 부족한 내 사랑마저 완전한 것인 양 받아주는 아이의 사랑.


이 불완전하고도 완전한 사랑은 아이를 키우는 양분이면서도 나를 키우는 힘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