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건망증에는 이유가 있다

사랑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

by 작은 마음 수집가


출산을 하고 나서부터 나는 자주 깜빡한다.

사물의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방금 들은 말은 금세 흐릿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를 낳으면서 뇌도 낳았구나.”

이 말을 요즘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 전 일이다.

아이 어린이집에 기저귀를 챙겨가야 한다는 걸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 앞에 꺼내두기까지 했으니까.

문제는 집을 나설 때였다.

나는 그 기저귀를 그대로 두고 나가버렸다.

그 다음 날은 다행히 기저귀를 챙겨 나가기까지 성공한 듯 했으나, 서둘러 내리느라 조수석에 두고 내렸다.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가벼운 일상의 일들은 생각의 끝에서 놓아버리고 만다.


또 한 번은 저녁을 먹기 전에 둘째 아이 목에 채워줄 턱받이를 아무 생각 없이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첫째 아이 목에 채워준 적도 있다.

그때 당황해하던 첫째의 표정을 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과 눈이 마주쳐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난 정신을 어디에 두고 지내는 걸까.


‘아이를 낳으면서 뇌도 낳는다’는 말은 정말이지 괜히 있는 말이 아닌가 보다.

내가 신경을 게을리하거나 챙기지 않으면 혼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두 팔에 안겨있으니까.

그런 존재가 젖먹이 시절일 때는 더욱,

그런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니 더더욱 그랬다. 

어쩌면 친구와 나누던 대화 속, 굳이 기억할 필요 없는 새로 생긴 미용실 이름이나 남편이 미리 고지한 다음 주 회식 날짜 같은 건 머릿속에 남아있을 자리가 없는 건 아닐까.


아이와의 외출을 준비하면서 줄줄이 아이를 위한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정작 내 물건은 빠뜨리기 일쑤고,

이제 장보기 목록을 적어 놓지 않으면, 제대로 장 볼 자신이 없다.

나는 점점 ‘빼박 주부’에, ‘빼박 아줌마’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내가 잊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와 처음 눈을 맞추던 순간, 조리원에서 허둥대며 수유하던 장면, 첫 운동회 날 맑게 웃으며 달리던 아이 얼굴, ‘엄므아’에 가까운 첫 옹알이를 하던 날.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는 뇌를 잃은 게 아니라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다시 설계된 게 아닐까.


사물의 이름은 자주 흐릿해졌지만, 아이의 표정 하나는 또렷하게 남고,

해야 할 일은 종종 놓치지만, 아이의 마음이 유난히 맑거나 흔들리는 순간은 놓치지 않는다.


엄마들의 건망증은 무능이 아니라 집중이고,

약점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 바뀐 흔적이다.


그렇게 우리 엄마도 어느 날부터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기억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엄마를 닮아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