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시키는 일이야.

by 작은 마음 수집가


한 달에 한 번, 생리가 시작되기 전이면 내 마음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세상을 세모눈으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뭐 하나만 걸려봐라’하는 시선으로

온갖 짜증과 예민함을 품은 사람이 된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라, 호르몬이 데려온 다른 사람이다.


지난 주말도 어김없이 그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의 하루는 멈추지 않는다.

그날 우리는 첫째의 입학을 앞두고 가방을 사러 아울렛에 갔다.

평소 쇼핑할 시간이 없는 남편에게는

온 김에 신발도 보고 옷도 고르라며 시간을 주었다.


나는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첫째와 매장을 오가며 가방을 골랐다.

점심을 먹을 때도, 엄마의 무릎이 자기 자리인 양

떼어낼 수 없는 둘째를 안고 먹었고, 낮잠을 재우기 위해 유모차를 밀며 걷고 또 걸었다.


덕분에 남편은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랐고,

첫째의 가방 사기 미션도 무사히 끝났다.

원래도 쇼핑을 하면 에너지가 빠르게 닳아가곤 하는데

‘예민모드’까지 켜졌으니 체력은 이미 바닥에 가까웠다.


집에 돌아오자 온몸이 축 늘어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침대에 잠시라도 누워 숨을 고르고 싶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닫아주었고, 거실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주방으로 나와 밀린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가볍게 말을 건넸다.


“푹 쉬었어? 내가 애들 데리고 놀았는데.”


그저 스친 말이었을 텐데 마음 한구석이 콕 찔렸다.


“알아. 문 닫고 나가는 거 봤어.

근데… 푹 쉬긴 뭘 푹 쉬어.”


내게는 숨만 고른 시간이었는데

남편의 말속의 ‘푹’이라는 단어가 억울하게 다가왔다.

그 한마디에서 시작된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건드리며 날을 세웠고 그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차가운 말들을 더 주고받고,

자기의 입장만 늘어놓는 이 대화들이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아 눈물이 찔끔 났다.

뭐가 그렇게 서운했고, 억울했는지.

그날 밤 나는 세모눈의 사람이 되어

온갖 불만과 억울함을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밤이 한 번 지나가고 나니

세모눈의 사람은 조금 뒤로 물러나있었다.


매달 한 번쯤, 내 마음이 나를 잠시 떠날 때가 있다.

그 시간만큼은 나 스스로에게도, 가족에게도 조금은 더 너그러워졌으면 한다.


“어제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미안해.”

“아냐, 나도 못 받아줬어.”


그 모습을 보던 아이들이

서둘러 자기들의 고백도 보탠다.


“엄마, 오늘 아침 짜증내서 미안해요.”

“미아내요.”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우리는 가장 쉽게 상처를 준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다치는 사람은 제일 가까운 가족이다. 남편의 배려는 당연함이 되고, 나의 배려는 기어코 인정받아야 하는 내로남불의 마음이 올라온다. 아이의 질문은 귀찮음이 되고, 아이의 자유로운 말과 행동은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되어버린다.


다음 달에 세모눈의 사람은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내가 나에게 미리 알려주어야지.

또 가족에게 솔직하게 양해를 구해야지.


그날의 마음은

잠시만 머물다

이내 지나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