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속도를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꺼내본 첫 그림의 기억

by 작은 마음 수집가


3월 3일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요즘 자꾸만 달력에 남은 숫자들을 헤아려본다.

이제 고작 한 달도 남지 않은 날들 앞에서,

아이가 여덟 살이 되기까지 함께 거쳐온 무수히 많았던 ‘처음‘의 날들을 꺼내본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적은 있지만,

초등학생의 엄마는 처음이라서,

새로운 길의 출발선 앞에 서서 몸을 풀며 준비운동을 하고, 신발끈은 단디 메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되는 모양이다.


사실 첫째는 처음 시도하는 일 앞에서 
‘덥석’, ‘와락’, ‘흠뻑’이라는 말보다 ‘주저’ ‘신중’ ‘망설임‘ 이 더 잘 어울리던 아이였다.

두 돌이 되기도 전에 색연필이 부러질 정도로 힘을 주어 과감히 끄적이던 둘째와는 다르게 첫째는 세돌 가까이 되도록 하얀 종이 위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영유아검진을 앞두고, 검사하는 항목들을 체크해 보다가 동그라미, 세모, 네모 그리기를 연습해 보기로 하던 날이 기억난다.

엄마가 먼저 시범을 보인 모양들이 따라 그리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지,

아이는 색연필을 쥐려 하지도 않고 짜증을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욕심을 털썩 내려놓았다.


“우리 점찍기 놀이하자!”

“커다란 초콜릿과자 위에 초코칩을 콕콕 찍어주는 거야”


선 그리기가 부담스러웠던 아이는 점을 찍는 일에는 조금 용감해졌다.

알록달록 색연필을 바꿔 쥐며 “초코~칩!“을 외치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이의 마음에 조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처음으로 종이 위에 자신의 색을 입혔다.



돌멩이처럼 생긴 동글동글 얼굴에 눈코입을 넣어 가족의 모습도 그렸다.

그 그림을 보고 어찌나 기특하던지.

어찌나 신기하던지 보고 또 보았다.


더딘 모습에 답답하고,

느린 모습에 걱정하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어달라는 듯이 하나씩 해내던 그날의 장면을 천천히 천천히 꺼내본다.


세돌 때 그림을 그리지 않아 걱정시키던 그 아이는 지금, 시키지 않아도 매일 한두 시간씩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이제는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도, 섬세함도 나를 저만치 앞서간다.



더디지 않았고, 늦지 않았다.

다만 아이만의 속도였을 뿐.

그 속도를 몰라서 조급했던 쪽은, 언제나 나였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걱정하는 대신,

지금껏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많은 ‘처음’을 건너온 아이를 다시 한번 믿어보자고 마음먹는다.


학교로 향하는 그 길이 설렘과 긴장이 함께 섞인 길일지라도,

그날의 첫 순간 역시 엄마는 너와 함께,

기꺼이 건너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