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껴안기
‘엄마’라는 이름이 어깨를 짓눌러 땅속으로 파묻힐 것만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엄마’로서의 내가 퍽 마음에 들 때가 있다.
내가 가진 예민함마저 자랑스러울 때도 있다.
새벽에 잠깐 잠이 깨 아이의 다리를 쓰다듬다 낮에 없던 수포가 오돌토돌 올라온 걸 알아챈다.
어느 밤 문득 눈이 떠져 아이 머리칼과 등을 어루만지다 아이 몸에서 열이 나고 있음을 알게 될 때가 대게 그렇다.
그렇게 나는 예민한 성정을 가졌고, 학창 시절부터 쉽게 잠들지 못했다.
덕분에 그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몇 번이나 바뀌어도 잠들지 못한 채, 누군가의 사연과 음악 속에서 허우적대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밤만 되면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의 꼬리가 또다른 꼬리를 물어, 커다란 실타래가 되곤 했다. 그래서 사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하지만 그 예민함은, 엄마가 된 이후 톡톡한 역할을 한다.
아이의 표정만 봐도 기분이 왜 상했는지,
입술이 달싹거리기만 해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발만 봐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종종거림이 읽혔다.
젖을 먹이던 아기 때도 울음으로 모든 걸 말하듯, 상황에 맞게 아이가 내는 울음소리가 내 귀에는 달리 들리는 듯했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짓눌림이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짊어진 내가 어느 날은 꽤나 괜찮아 보인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다 보면,
늘 부족함이라 여겼던 한 켠은 어느 날 충분함이 되고,
과함이라 여겼던 한 켠은 어느 날 온전함이 된다.
그렇게 아이를 통해 나는, 나를 있는 힘껏 꼭 껴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