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건 내 보물 1호야!“

기다려서 갖는 기쁨에 대해

by 작은 마음 수집가


얼마 전 크리스마스 때의 일이다. 일곱 살이 된 첫째의 낡아진 운동화 대신 새 운동화를 하나 사러 백화점에 갔다.

양가 어른들에게는 미리 말씀드렸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는 선물이 있으니, 다른 선물들은 안 사주셔도 된다고. 손녀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도 백번 이해하지만, 내 아이를 위해 내 주관대로 하기로 했다.


백화점 6층, 아이들을 위한 모든 것들이 즐비한 곳에 들어서자 첫째는 장난감 매장으로 눈이 쏠렸고, 이내 마음까지 뺏긴 듯 장난감 하나에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사주마’ 하셨고, 첫째는 내 눈치를 봤다.

백화점에 들어서기 전에 한 약속이 떠올랐는지, 내 바지를 붙잡고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알겠어요.. 안 살게요.. 그냥 가요.”


그 순간, 흔들렸다. 이 장난감 하나가 뭐라고.

어머님 아버님께 어떻게 설명드리고 또 아이에게 난 지금 당장 나쁜 역할로 보일 텐데 그게 과연 맞는 걸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조금 더 고민해 보자 타이르고는 결국 예쁜 운동화 하나만을 사가지고 왔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

‘풍요로움 앞에 욕망을 다루는 힘이 느슨해지는 것‘

특히나 첫째는 양가의 첫 손녀로,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때마다 한아름의 선물들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 장난감은 이 인형은 누가 사줬는지, 이 신발은 언제 받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 살씩 많아질수록 ‘간절한’ 물건보다, ‘있으면 좋겠는’ 물건들이 쌓여간다.


이게 맞는 걸까.


아이들이 원하기도 전에 손에 쥐어지는 찰나들이 쌓일수록, 아이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욕망들은 평평해지고, 뛸 듯이 기쁜 표정들은 흐릿해진다. 가슴에 오랫동안 갖고 싶은 물건을 품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결국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참 귀하다.

나는 내 아이는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했다.

그런 귀한 순간을 직접 겪었으면 했다.


다음 날 둘만 있을 때 첫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어제 갖고 싶은 장난감을 엄마 때문에 못 가진 것 같아서 속상했냐고 물으니, 떼쓰기보다 참는 아이인 첫째는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누구보다 너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사람이야. 그런데 엄마는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뭘 가지게 되는 게 사실 좀 걱정이 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조금 더 이어갔다.


“엄마는 네가 기다릴 줄도 알고, 노력해서 얻을 줄 아는 아이라고 생각해. 정말 네가 원하는 게 생겼을 때, 애쓰는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 엄마랑 같이 골라보자. 그게 너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 거야.”


“그렇다고 네가 원하는 마음 자체가 잘 못 된 건 아니야. 그건 당연한 마음이야.”


그리고 며칠 뒤, 성당에서 1년 동안 기다리던 은총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토요일마다 어린이 미사에 참례하고, 밥 먹기 전과 후에 기도를 하고, 아침이나 저녁때 기도를 하면 그때마다 은총표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였다.

은총시장은 바로 그 은총표로, 갖고 싶은 물건들을 직접 골라 살 수 있는 날이다.


첫째는 은총시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발을 방방 뛰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장난감을 잽싸게 골랐다. 그다음은 엄마를 위한 장갑, 동생을 위한 장난감도 골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뜬 첫째가 말했다.


“엄마, 이건 내 보물 1호야!!”


그 보물 1호는 며칠이 지나도 아이 손에 꼭 들려있다. 밥을 먹을 때도, 외출을 할 때도, 친구와 놀러 나갈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함께 말이다.


나의 가치관이 시대적인 흐름에 맞지 않는 건 아닐까 흔들릴 때도 있을 거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게 될 때도 그냥 쉽게 갈까 고민될 거다.

그럴 때마다 자기 힘으로 직접 산 장난감을 오랫동안 곁에 두며 뿌듯해하던 아이의 표정을,

방방 뛰며 설레하던 아이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