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사이에서 힘을 빼는 방법
첫째가 다섯 살 무렵, 둘째가 생겼다.
사실 남편과 나는 터울이 길지 않게 둘째를 낳자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어디까지나 우리만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밤잠에 예민하고 자주 깨던 첫째 덕분에, 아이가 태어난 이후 몇 년 동안 우리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부족한 수면과 떨어진 체력 때문이었을까. 둘째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마음을 놓고 있을 무렵, 다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모든 것이 처음인 첫째.
경험도, 사랑도, 시간도 늘 부족해 보였고, 그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 자주 고민했다.
그러다 한 해, 한 해 커가는 첫째를 보며 육아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되었다.
욕심 버리기.
힘 빼기.
심각해지지 않기.
내 뜻과 내 마음이 더해지는 순간, 나는 늘 진지해졌고
그 진지함은 어느새 욕심이 되어 있었다.
첫째와 하원하고 집으로 가는 길,
집에 가면 엄마와 종이접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돌이 조금 지난 둘째가
언니의 사정을 봐줄 리 없었다.
색종이를 들고 마주 앉으려는 순간,
둘째는 필사적으로 내 다리에 매달렸고
자꾸만 언니를 꼬집었다.
첫째와 종이접기를 제대로 해줄 수도,
둘째를 안아 달래지도 못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런 날들은 어느새 매일이 되었다.
첫째는 첫째대로
엄마와의 온전한 시간을 고파했고,
둘째는 둘째대로
엄마와의 애착을 단단히 하고 싶은 본능으로
화장실 앞까지 울며 쫓아오는 날들이었다.
내 몸이 두 개이지 못해
아이들에게 생긴 빈틈들이
상처가 아닌 성장이기를 바랐다.
완벽함에 기대어 마음의 안정을 찾던 나는
그럴 때마다 완전히 흔들렸다.
그 누구에게도 온전하지 못했던 하루들이 쌓이자
스트레스도 함께 쌓여갔다.
그러다 다시 초심을 떠올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루이틀만 육아하고 그만둘 것이 아니니까.
너무 비장하게,
하루하루를 힘주어 잘 지내려 하지 말자고.
‘완벽한 균형’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그냥 오늘을 지내면 충분하다고.
어떤 날은 첫째에게 더 많이 주고,
어떤 날은 둘째에게 더 많이 주는 날도 있다.
그건 ‘불균형’이 아니라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다짐한 마음이 있다.
부모로서 어떻게 힘을 뺄까.
아이에게 어떻게 스스로 하는 힘을 줄 수 있을까.
때로는 결핍이 성장하게 한다.
지나친 제공보다
건강한 결핍을 선택한다.
내가 더 많이 해주려 애쓰기보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일.
“오늘 밤도 욕심과 불안은 덜어내고,
조금 더 가벼워지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