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아야 자라는 것들

돌봄과 내려놓음 사이에서 배우는 성장의 온도

by 작은 마음 수집가



첫째가 네 살 무렵이었을 거다.

이사한 새 집에서 키울 고사리과 식물 하나를 데려왔다. 화훼농장에서 직접 고른 보스턴고사리를 예쁜 화분에 심어 들고 왔다.


미리 잘 키우는 방법도 공부했고, 그 조건에 맞게 화분은 직사광선을 피해 밝은 그늘의 창가에 두었다.

고사리과 식물이 좋아한다는 공중 분무도 자주 해주었다.


파릇파릇한 잎이 집 안에 있으니 걸어 다닐 때마다 눈길이 가고, 눈길이 가니 자연스레 손길이 닿는 일도 잦아졌다.

지나칠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며 ‘잘 자라라, 잘 자라라’ 마음의 응원까지 더해주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닿지 않았던 걸까.

오래 지나지 않아 잎은 시들어 바스러지고, 초록의 생기는 금세 사라졌다. 결국 화분은 베란다로 옮겨졌다.


그렇게 화분의 존재를 잊은 채 지내다 가끔 베란다에 갈 일이 있을 때만 물을 간간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메말랐던 잎 주변에 새순이 돋고, 잎이 다시 풍성해지더니 어느새 화분 가득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살뜰히 챙겨주지 않았고, 공중 분무는커녕 물도 자주 주지 못했는데, 오히려 식물은 자신이 자라고 싶은 대로 잎을 힘 있게 뻗어 올리고 있었다.

지금도 사계절을 몇 번이나 지나며 우리 집 베란다에서 초록빛을 뿜어내는 중이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늘 비슷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너무 자주 물을 머금으며 ‘잘 돼라’고 뻗은 부모의 살뜰한 손길이 오히려 아이들의 숨을 막히게 할 때가 있지 않을까.

모든 조건을 맞춰주려는 마음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빛을 희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계절마다 달라지는 기온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때로는 뜨거우리만큼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갈증이 날 즈음 스스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아이들은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자신만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필요해 보여도 먼저 나서지 않고, 보아도 못 본 척 지나가는 의도적인 무관심일지 모른다. 해주는 것보다 해주지 않는 일이 더 어렵지만, 오늘도 눈을 질끈 감는 연습을 해본다.

아이들은 살뜰함보다 여유로움 안에서 한 뼘 더 성장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