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집에는 우리 집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산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몇 번의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아이들끼리도 놀게 되었다. 바로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되니 마음의 부담도 덜하고, 주말엔 서로의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놀아도 되니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우리 부부는 열한 살이 된 옆집 아이를 참 좋아한다.
또래와 비교해도 해맑고 천진난만하다. 그러면서도 예의가 바르고, 더 놀고 싶어도 약속한 시간을 잘 지킨다.
그렇게 구김살 없이 밝은 모습이 우리에게 늘 예뻐 보여서 그 아이를 보며 ‘우리 아이도 저렇게 자라면 참 좋겠다’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다 며칠 전 첫째 아이가 옆집에 놀러 가서 저녁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리고 옆집 엄마에게 우리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첫째에게 옆집 엄마가 간식을 먹겠냐고 물어보면, 주로 아이는 머뭇거리며 생각해 보겠다고 하거나, ‘엄마에게 물어봐야 해요’라고 말한다며 그런 모습들이 귀엽고 “아이를 참 잘 키우셨네요.”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사실 나는 옆집 엄마가 마지막에 ‘너무 귀엽고 잘 키웠다’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면, 그건 나에게 칭찬이 아닌 아쉬운 모습으로 남았을 거다.
첫째의 자기 의견을 또박또박 말하지 않고 주저하는 모습이 내겐 늘 아쉬움이었기에 그렇다. 그런데 옆집 엄마는 그런 아이의 신중하고 흔히 나대지 않는 듯한 태도가 좋아 보였나보다.
왜 나는 ’엄마에게 물어봐야해요‘를 그저 아쉬움으로 봤을까. 혹시 ‘쭈볏댐’을 ‘당담함’으로 고쳐주고 싶은 욕심에 그랬을까.
옆집 아이를 바라볼 땐, 아이의 부족한 모습이나 고쳤으면 하는 아쉬움보다 잘하는 모습이나 대견한 모습이 눈에 더 들어온다.
내가 책임지고 고쳐주거나 채워주지 않아도 되므로, 단점에는 눈이 잘 안 가나보다.
나도 종종 내 아이를 ‘옆집 아이’ 보듯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저 대견하고, 그저 사랑스럽고, 그저 귀엽게 말이다. 오늘만큼은 옆집 아이를 바라보듯,
내 아이를 한 번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