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 팝니다.'
위 문장은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가 6개의 단어만으로 적었다고 전해지는 문구이다. 우리는 이 짧은 문장 몇 개를 보면 자연스레 '연상'을 시작하게 된다. '이 사람의 아기는 어떻게 된 걸까?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였을까? 미혼모였을까? 신지도 않은 아기의 신발을 시장에 내놓은 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을 그대로 두면 우리는 그 잠깐 사이에 아기와 주인공 만으로 상상 속의 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만약 이 사진을 인공지능 로봇에게 보여주면 어떤 답을 보여줄까? 아직까지의 기술력이라면 '신발 중고시장' 검색 결과를 링크로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기계는 '1 더하기 1은 2이고, 여름 뒤에는 가을이 온다'처럼 선언적 데이터를 기본값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인간은 실패할 걸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쳤다는 장발장 이야기에 처벌에 앞서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로봇이라도 해도 단시간 내에 인간만큼 복잡한 감각 체계를 갖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분명 언젠가는 그 모든 게 가능해질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정교한 기술 발전이 계속된다면 로봇은 정말 인간만큼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시대
지난 2016년 일본에서는 AI가 제출한 소설이 일본 주요 경제신문사 '니혼게이자이'가 주최한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통과된 작품명은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며, 분량은 A4 기준 약 3장 정도이다. 이 공모전에는 실제 1450여 편의 소설이 출품되었는데, 그중 AI가 제출한 작품 수는 총 당선작을 제외하고도 10편이나 된다. 결코 적지 않은 경쟁률을 뚫고 통과한 셈이다. 심사 당시 심사위원들은 AI가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당선된 AI는 일본 인공지능연구학회 회장인 마쓰바라 진 교수(일본 홋카이도현 하코다테 미라이 대학)가 주관하고 있는 'AI 소설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알려져 있다. AI는 사전에 개발자가 입력한 방대한 소설들을 러닝하면서 구조, 시점, 문체 등 소설의 구성 방식을 습득한다. 학습이 완료된 AI에게 개발자는 '언제, 어떤 날씨에, 무엇을 하고 있다' 정도의 간단한 요소를 넣어준다. AI는 사전 학습을 통해 인지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발자가 입력한 상황에 맞는 단어를 '선택'해 소설의 한 문장을 완성한다. 물론 AI 스스로 독자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기엔 어려운 단계라고 하지만 분절되지 않은 문장으로 소설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놀랍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딥러닝은 단순히 인간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특정한 인간들이 끝없는 학습과 노력을 통해서만 도달했던 영역에 인공지능은 단숨에 도달했다. 이제 우리는 전문적으로 언어를 학습하지 않았어도 외국어 통번역 플랫폼에서 손쉽게 검색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는 '큐아이'가 등장해 이미 도슨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잠재된 능력까지 학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로봇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실제로 요즘 로봇들은 인간처럼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상황을 추측할 수도 있다. 지난 2018년 한국 중소기업벤처부의 초청으로 내한한 AI '소피아'는 능숙한 대화를 선보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홍콩의 핸슨 로보틱스사가 개발한 AI 로봇 '소피아'는 인간과 거의 흡사한 외모에 능숙한 대화 기술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당시 '소피아'는 상체 위주의 완성품이었기 때문에 걷거나 뛰지는 못했지만, 개발이 지속되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이다. 이러한 모방과 재현은 비단 인간의 신체 뿐만 아니라 감정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분노나 애도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람처럼 가슴을 움켜쥐고 털썩 주저앉는 로봇이 나올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알파고와 소피아에게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을 보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초조함과 허탈함, 두려움, 안도감 등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은 로봇 공학 중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으로 풀어볼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로봇이 인간과 '얼마나 닮았는가', 그 싱크로율에 따라 변화한다고 한다. 보통 초기에 느끼는 강한 호기심은 어느 한계점부터 강한 거부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 변곡은 로봇이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호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이론을 토대로 보면 알파고와 소피아가 얼추 '비슷한' 로봇에서 '똑같은' 로봇이 되는 단계를 오가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언제, 무엇 때문에 변화하는가
2014년 개봉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영화 『Her』는 이와 같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한 기업에서 대필 편지 작가로 일하는 남성이다. 부인 '캐서린'과 별거하면서 깊은 상실감과 고독감에 빠져 있던 '테오도르'는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인공지능 운영체제로 '사만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낸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속마음을 꺼내놓으며 점점 깊게 의지하게 된다. 더 이상 새로운 감정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피곤한 감정 체계를 모두 초월해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영화 속에서 '사만다'는 지금의 AI보다 훨씬 발전된 기술들을 보여준다. '사만다'는 여러 개의 대답 중 답을 고르느라 망설이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우울해하는 '테오도르'를 위해 유머를 시도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앞으로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육체보다 오히려 정신을 먼저 닮아가려 할 것이라는 예상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로봇이 인간만큼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꼭 먼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런 '사만다'조차 결국은 자신이 다른 운영체계들과 함께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온다. 스스로의 한계보다 더 나은 세계로 넘어가게 되었음을 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테오도르'에게 “내 감정이 너무 빨리 변화해서 힘들어”라고 털어놓는 '사만다'의 대사는 주목할 만하다. '사만다'는 스스로를 이해할 새도 없이 '누군가'에 의해 '성공적'으로 변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와 달리 '테오도르'는 경험한 범위 안에서 세상을 보고, 성공과 실패 속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인간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가 있다면 그 점일 것이다. 인간은 '업그레이드'든 '다운그레이드'든 스스로의 의지가 있을 때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로봇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공감, 연민, 중독, 죄책감 등 후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든지 나아지거나 후퇴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로봇은 그럴 수 없다는 것, 기술이 따라갈 수 없는 그 영역에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결점 투성이의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가능성'의 방향은 심리학, 윤리학, 철학, 문학 등이 수천 년 간 인간을 탐구하면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져온 이유이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만약 100%에 가깝게 예측 가능한 매뉴얼을 지닌 로봇이 나온다면, 그게 정말 로봇이 인간이 되는 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