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담당자로서의 고충 그리고 새로운 꿈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이 점차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 현 정권의 임기도 내년이면 종료다.
현 정권이 들어서고 VIP가 가장 먼저 방문한 인천국제공항공사에는 그 곳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VIP는 본인 임기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천명한다. 그 이후 나의 잔혹사는 시작되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기관은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모두 완료되었다.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던 직원들과 파견 또는 용역으로 근무하던 직원들까지 내부화가 되었다는 말이다. 정규직 전환이 무슨 말인지 처음 들어보는 이도 있을 거 같다. 그래서 부연 설명을 하자면, 공공부문 특히 공공기관에서 2017.07.20일자 기준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하라는 정부부처 합동 가이드라인이 전 공공기관에 하달되었다. 현 정권 취임 일성 하에 제1호 정책으로 내세운 본 전환은 과정 상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앞으로의 10년, 20년 후가 더욱더 걱정이 되는 어쩌면 큰 변화의 변곡점과 같은 역사적인 고용정책이다.
전환의 수혜를 입은 이는 그 누구보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고 전환대상에 들지 못 하였거나 전환심사 과정에서 탈락한 이는 이제 더는 없는 기회를 잡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자체가 전무후무한 일이지만, 관련 가이드라인은 엉성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이처럼 중차대한 고용정책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도 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전환 과정에서 전환담당자로서 남 정규직 시켜 주려다가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스스로 먼저 퇴사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야근은 기본 밥 먹듯이 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였다.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긴 하지만, 공공기관 이야기를 하면서 "정규직 전환"이야기는 전 공공기관에 해당되는 주제이기에 한 번 정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전해오는 정규직 전환의 목소리가 가슴 한 켠을 여전히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내가 정규직 전환 담당자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공공기관인 우리기관의 전환 담당자인 나에게 정규직 전환이라는 직무를 처음 맡겼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니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팀장의 말과는 달리 전환 업무를 수행해 가면서 점차적으로 커져가는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내부갈등과 바람직한 전환에 관한 고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풀리지 않는 난해한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아 답답함이 계속 되었다.
‘일과시간 그리고 퇴근을 한 이후에도 늘 머릿속에서는 정규직 전환 정책을 어떻게 이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고민을 계속 하게 되었고, 그에서 나아가 ‘정규직 전환가이드라인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전환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상황은 무진기행의 안개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다시는 없을 것만 같은 치열한 고민과 소중한 경험들을 아로새기게 해 준 듯 하여 감사한 마음도 크다. 정규직 전환 신규 임용식 이후 전환되신 분이 나에게 다가와 “그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라고 감사의 인사와 위로의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그 간의 고민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나에게 전한 그 말이 진심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게도 대학 졸업 前 대기업 인턴십을 통해서 정규직 입사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여러 기관을 이직하면서도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안정된 자리를 벗어나서 갑작스런 퇴직을 하게 되면서 그 행운이 단절되었고 처음으로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었던 계약갱신에 대한 불안한 기대와 곧 있을 계약 만료 도래에 따라 또 다른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막연함과 수고스러움은 당시 수행 중인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개인에게도 좋지 못 하기도 하거니와 기관 발전에도 저해되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다. 처음 겪는 기간제 근로자의 설움이었다. 그 때 당시의 본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계약기간의 정함이 있는 자(기간제 근로자들) 또한 그러할 터. 하물며, 2년 이상의 장기간 동안 계약직으로 생활을 하면서 기간제법의 예외사유에 해당되어 장기 근무를 하면서도 겪은 그들의 비애와 속마음을 어찌 다 제가 알 수 있을 것인가. 짧은 계약직 생활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함도 또 다른 오만이자 교만인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다.
정규직 전환가이드라인이 발표된 2017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축하공연에는 여러 인기 작품들에 출연한 조연들이 한 명씩 무대에 올라와 “꿈을 꾼다”라는 곡을 열창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영화에서 한 컷의 등장을 위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영화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그 분들을 통해서, 우리는 비중은 있지 않지만 감칠맛 나는 역할로서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더 했기에 대중적 인기 뿐 아니라 영화의 완성도를 채워준 그들을 단순히“조연(助演)”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인생에서 주어진 배역은 한 사람의 스토리였고 그 자체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도 그런 것이지 않을까’라고 스스로의 답해 본다. 어쩌면, 그 답은 전환 추진의 가이드 문맥 상에 있었는데, 전환 추진 중에는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 하다가 나중에 전환 종료 이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간 계속되어 온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서 파생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반드시 한 번은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그 고통은 순간 아플 수 있지만, 고통 이후 잘못된 그 간의 관행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사회가 변화되면서 더 나은 삶이 기대된다면, 당연히 우리가 감수하고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이다. 상시·지속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 되어야 하고,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기본 당위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정규직 전환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전환대상이 “해당 직무를 말하는 것인지”or “그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인 것인지”에 대한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별도의 예산 지원 없이 고용승계 이후 단계적으로 처우를 개선해 나가는 것에 대한 앞으로의 고민들과 전환 시 청년 선호 일자리는 경쟁채용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현 직무 수행자에 대한 우대를 주장하는 노동계의 주장은 전환 추진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최소한의 기회보장을 주장하는 내부의 목소리가 각종 언론에 보도되었고, 주무부처 등 각 기관에 민원이 접수되면서 감사를 수감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전환심의위원회의 노력은 수감 이후 제대로 해 보자라는 의지로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결심(의사결정)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하며, 전환가이드라인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하나씩 이행해 나갔고 전환의 중요사항(전환대상, 전환방식, 전환 이후 처우 등)을 심사숙고하여 심의·의결 하면서 비록 다소 늦었지만 제대로 된 전환을 추진할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 전환 과정은 기관의 앞날을 고민하는 소중한 전화위복의 시간임을 고백한다. 전환을 통해 기관의 과거 및 현재의 인력운영 상 문제점을 진단해 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향후 상시 지속적인 업무의 인력 활용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함에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은 백상예술대상의 조연들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직무를 수행해 오던 분들에게 감사할 수 있음과 동시에 우리는 다 같이 기관의 이름 아래 한 식구임을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환 이후 변화의 첫걸음을 뗀 우리에게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 동안 앞날이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장밋빛 청사진만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기관 발전을 위한 남겨진 숙제들이 많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너와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수처작주(隨處作主)의 마음으로 기관 발전을 위해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번 입사지원서에 “언제나 익숙함을 벗어나 다시 초보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늘 쉽지 않으나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삶이 제가 옳다고 믿는 것에 바쳐져 그늘진 곳, 소외된 분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기재했고, 늘 그 꿈을 꿔 왔다. 이제 새로운 꿈을 꿔 본다. 앞으로 할 일은, 아니 우리가 하는 일은 “같이”하는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더욱 보람될 것임을 확신한다. 본 전환이 개인, 기관 및 사회 변화의 마중물로서 자리매김하여 먼 훗날 몇 달전 태어난 사랑하는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며, 끝으로 전환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아래 시(詩)로서 대신하고자 합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 한 그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