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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Raggae와 트롯Trot 비교 (2)

레게, 자메이카의 유행가

by MTWT 김토일

레게의 음악적 특성은 1960년대에 형성되었고 장르 명칭으로서의 ‘레게’는 자메이카 밴드 투츠앤더메이탈스(Toots & The Maytals)가 1968년에 발표한 노래 ‘두더레게(Do The Reggae)’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밥말리와 그의 밴드 웨일러스(Wailers)가 ‘원러브(One Love)’를 발표한 것이 1965년이었는데 당시만해도 특정한 음악군에 대한 장르적 명칭으로 레게가 사용되지는 않았다. 노래 ‘두더레게’가 자메이카에서 크게 히트하면서 비로소 레게라는 사회문화적 용어가 특정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 레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hEBChUkck

* 투츠앤더메이탈스(Toots & The Maytals)가 1968년에 발표한 노래 ‘두더레게(Do The Reggae)’


레게의 사회적 배경

자메이카는 1494년 콜럼버스의 상륙에 이은 16세기 스페인의 침략을 시작으로 오랜 세월 동안 제국의 식민지 시대를 겪어야 했다. 1655년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지배자 지위를 탈취한 이래 1962년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거의 400년 이상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제국의 약탈자들은 자메이카에 사탕수수 등의 농장을 건설하고 인신매매와 노동착취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을 수탈하고 부를 축적했다. 유럽 이주자들이 퍼뜨린 전염병과 강압적 노동으로 인해 자메이카 원주민들은 거의 절멸되었고 소수의 유럽인 지배자들과 노예로 끌려온 다수의 아프리카인들이 자메이카 영토의 새로운 거주자가 되었다.

slaves.jpg 수백년 전부터 이렇게 사냥해왔고,
slave-market.jpg?width=1200&auto=webp&quality=75 수백년 동안 이렇게 착취했다. 잔인한 유러피언들.


2021년 현재에 이르러 자메이카 총 인구는 약 300만명이 되었는데 대체로 17세기 동안 서아프리카의 현 가나공화국과 나이지리아공화국 주변으로부터 노예로 끌려온 이들이 현재 자메이카 인구 구성의 다수자로서 전체 인구의 76.3%를 차지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위주의 유럽계 이민자 후손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3.2% 그리고 아프리카 유럽 혼혈이 15.1%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타 인도와 중국의 이민자 등이 나머지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레게음악이 형성된 공간은 현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 지역의 서부 빈민가이다. 킹스턴은 1692년에 개척된 도시로서 1872년 자메이카의 수도로 지정되었고 자메이카의 최대 도시가 되었는데 2021년 현재 전체 인구의 3분의 1 가량인 94만명 정도가 킹스턴 지역에 거주중이다. 킹스턴이 수도로 지정되기 전인 1838년에는 자메이카의 노예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노예들은 개인적 의지와 무관하게 자유노동자의 신분이 되었다. 김용호(「카리브 대중음악의 혼종성과 레게의 저항성에 대한 연원적 고찰」, 2006)에 의하면 19세기 말 사탕수수산업의 침체와 유럽 출신자들의 독재정치에 대한 아프리카 출신 농민들의 봉기 실패는 대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촉발시켰다. 특히 킹스턴의 경우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전인 1828년 35,000명 정도에 머물던 인구가 1943년에는 11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인구가 더욱 급증했는데 전쟁과 공황,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농촌 지역의 경제가 더욱 쇠퇴하고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갔던 이들이 다시 귀국하여 킹스턴 및 외곽지역에 자리를 마련하면서 킹스턴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1960년에는 38만 명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불과 10여년 만에 도시의 인구가 3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강남강북킹스턴.png 왼쪽은 유럽계 부자동네 킹스턴, 오른쪽은 아프리카계 빈자동네 킹스턴. 왼쪽은 19세기 말, 오른쪽은 20세기 중엽.

레게의 구체적인 탄생 장소로 일컬어지는 자메이카 최대 도시 킹스턴 서부 지역의 트렌치타운(Trenchtown)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빈민들의 집단 거주 공간이었다. 빈민가에서 별다른 전망이나 희망없이 살아야 했던 킹스턴의 청년세대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키웠고 1960년대 자메이카에서는 이들에 의해 ‘루드보이(Rude Boy)’ 문화가 만들어졌다. 킹스턴의 하층계급 청년들이 만들어낸 루드보이 문화는 반역과 저항 그리고 폭력의 언어를 음악에 투사했으며 루드보이 집단을 근거로 형성된 새로운 음악 문화는 레게 발생의 토대가 되었다.

밥말리리즈시절 02.jpg 깔끔한 머리의 밥말리

레게의 음악적 특성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레게음악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갖고 있어 음악적인 연원 및 범위를 특정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한 음악이다. 한국의 레게 음악인인 성낙원(「자메이카 음악 분석 및 한국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 2018)은 레게의 음악적 연원에 대해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에서 스카와 록스테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음악 장르’로서 ‘미국의 재즈와 뉴올리언즈 R&B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서술하였고 미국의 대표적 음악정보 아카이브 올뮤직닷컴은 ‘독특한 자메이카의 음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뉴올리언즈의 리듬앤블루스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기록해 두었다. 영문 위키백과사전은 같은 주제에 대해 ‘레게의 직접적 조상은 1960년대 자메이카의 스카와 록스테디이며 이들은 카리브 전통음악으로서의 멘토와 칼립소 그리고 미국의 재즈와 R&B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표현했는데 거기에 덧붙여 레게 조상으로서의 스카 역시도 미국 R&B의 강한 영향력 하에 탄생한 것으로 서술하였다.


레게의 정의에 대한 다양한 서술 가운데 자메이카 정부가 공적 차원에서 요약하고 발표한 것은 객관성 여부와는 별도로 레게에 대한 가장 공식적인 설명이라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자메이카 정부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을 위해 작성한 공적 문서에 다음과 같이 레게를 정의하였는데 폭넓은 교류와 혼성에 의한 다문화적 특징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화의 역사성이 관철되는 자메이카 고유의 유산임을 강조하고 있다.


"레게음악은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유래되었다. 레게음악은 전통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초기 자메이카 스타일 음악에서 파생된 장르이다. 이후 카리브 해, 북아메리카(리듬앤블루스, 록, 재즈), 라틴아메리카의 특징을 비롯하여 다양한 음악적 영향이 혼합되었다. 레게에 앞서 초기 자메이카 대중음악인 “멘토(Mento)”, 1950년대 후반에 인기를 얻었던 “스카”, 뒤이어 “록스테디”가 등장했는데, 자메이카에서 탄생한 이 모든 장르는 오늘날 “레게”라고 불리는 장르가 발전하는데 뒷받침이 된 음악 스타일들이다." (* 인용문 출처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웹사이트. 원문 해석에 오류가 있어 원문을 참조로 일부 번역을 수정하였다. 번역문은 https://heritage.unesco.or.kr/자메이카의-레게음악, 원문은 레게 등재신청서를 각각 참조하였다.)


레게에 대한 기존의 언급 내용을 보면 음악적 원류 최상위에 멘토(Mento)라는 초기 자메이카 유행가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경우가 많다. 다만 중첩되고 잉태되며 파생되는 음악의 장르적 성격을 고려할 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식민지 시대를 통과하면서 여러 음악요소들이 뒤섞인 멘토라는 음악적 갈래에 대해 이론적으로 규격화하고 발생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련된 몇몇 서술들에 의하면 멘토 스타일 음악의 형성 시점은 대체적으로 19세기 혹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는 서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프리카와 유럽의 혼성 음악이라는 측면이 주로 강조된다.


멘토의 시점에 대한 보다 흔한 서술은 19세기라는 발생 시점들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20세기 이후로 구체적인 형성 시점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 주로 1920년대와 1940~50년대가 특정되는데 1920년대는 멘토 레코딩 음반이 등장하는 시기로 그리고 1940~50년대는 멘토가 음반을 통해 대중들의 커다란 인기를 얻고 대중화되는 전성기로 특정된다. 여기서는 대중음악으로서의 멘토의 특성이 강조되며 멘토는 자메이카 대중음악의 효시처럼 다루어진다. 짧게 부연하자면, 멘토는 자메이카 노예 해방이 이루어진 19세기 중반 이래로 일정한 음악적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여 음반산업이 성장하던 1940~1950년대에 이르러 상당한 대중적 인기에 도달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aSMTTGYa10

자메이카의 멘토(Mento). 베이스기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초대형 카림바(Kalimba) 스타일 악기 Marimbula(혹은 Rumba box)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앞서 레게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음악으로 미국의 R&B가 언급된 바, 미국의 유행가가 자메이카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멘토가 음반 매체의 등장을 통해 성장했던 것과 같이 근대적인 매체의 등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1950년대 미국 뉴올리언즈 등의 남부도시에서 송출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디제이들의 R&B 라디오 방송이 레게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운드시스템이라고 하는 자메이카의 전형적인 유흥문화도 자메이카 유행가 문화에 미국의 R&B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사운드시스템은 자메이카에서 성행한 일종의 야외 무도장으로서 미국의 최신 R&B음악을 앞다투어 입수하고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사운드시스템을 운영하던 DJ들의 경쟁력이었다. 한편, 당시 자메이카에서 흔히 소비되었던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낮은 기술 수준으로 인해 저음부의 음량이 매우 빈약했는데 이로 인하여 미국의 R&B 음악과 달리 훗날 레게의 아주 전형적인 엇박자 기타 스트로크 어법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레게는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음악이라기보다 20세기 근대적 대중매체를 통해 대도시로부터 탄생하고 성장한 유행가 성격의 장르이며 레코드와 라디오전파를 통해 주변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성립된 예술이다. 또한 앞서 설명하였듯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형성된 음악이기도 하다. 시간적 범위 차원에서 부연하자면 유네스코 등재일 기준으로 발생 및 전승의 기간을 대략 50년 정도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의 원류로 소환되는 멘토음악으로까지 넉넉하게 시기를 확대한다 해도 길어봤자 대략 100년 범위 이내의 역사성을 지닌 음악 유산이라 하겠다.


https://youtu.be/K_tm5_f0ixo?t=563

1970년대의 자메이카 사운드시스템 문화. 자메이카 유흥문화의 중추적 존재로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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