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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예 Mar 08. 2022

별들은 빼곡히

그렇게 예쁜 밤이라면 잊고 싶지 않았다

1.

“언니 여행을 간다면 어디 가고 싶어?”

“별 보러 가고 싶어”




나는 한 번도 '별'을 보러 간다는 게 행선지의 목적이 되어본 적은 없었는데. 오 신기하다 저번에는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다더니 역시나 밤하늘을 좋아하는가 보구나.


이날 우리는 밤 산책을 했다. 바람이 약간은 쌀쌀한 거리를 걸었는데, 마침 미세먼지가 좀 심한 날이라 별 게 보이지는 않았다. 낙산공원 성곽길은 밑에서 조명이 비추고 있었고, 성곽 밑으로는 마찬가지로 불이 잔뜩 켜져 있는 아파트들과 주택들과 사무실들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애완견과 산책을 나오고, 어떤 사람들은 퇴근을 하고 바로 왔는지 양복을 입은 채로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곽에 올라가지 말라'는 표지판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우리는 성곽을 한 바퀴 걸었다. 서울의 밤을 본 건 오랜만이었다. 먼지에 싸인 남산타워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였지만, 오히려 달은 또렷하게 잘 보였다.



2.

별을 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언젠가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가는 새벽 버스를 탔다. 4시 반 버스였는데, 스르륵 잠이 들려던 나를 옆자리 친구가 밖을 좀 보라며 툭툭 쳤다.




“밖에 별 봐봐”




별이 있다고? 창문 밖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나 밝은 밤하늘을 보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 더 신기했다. 새벽의 설악산이 이렇게 예쁜데 내가 여태껏 몰랐다는 게 되려 신기했다. 여행을 가던 길의 찰나였지만 마냥 짧고 가벼운 순간은 아니었다.














3.

차마고도를 따라 걸어 산을 여행하던 나는 첩첩산중 속에 있는 객잔에서 잠을 잤다. 저녁을 먹고 방에 있다가 별을 보자며 밖에 나갔다. 별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이 산속에서는 별이라도 봐야 할 것 같았다. 숙소의 뷰포인트에 이미 다른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다. 겨울이었고, 산 속이었기에 벌써 바람이 매우 찼다. 그렇게 쳐다본 하늘은 별이 빼곡했다. 별이 너무 많아서 하늘이 아니라 우주를 보는 것 같았다. 주머니가 톡 터져 모래알이 후두둑 빠져나오듯이, 하늘을 보고 있는 내게로 별들이 온전히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하늘이 그렇게 검은지도 몰랐고 별이 그렇게 밝은지도 몰랐다. 고개를 꺾어 하늘을 하염없이 계속 쳐다봤다 고개를 꺾고 허리를 꺾은 채로 빙글빙글 돌아보아도 어느 각도에서든 반짝반짝했다 저 산 너머에도, 또 저 산 너머에도 마찬가지였다.


꺾인 고개가 슬슬 아파져 머리를 들었다. 정면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앞에 놓인 산이 보였다. 눈으로 뒤덮여 하이얀 설산이었는데, 고도가 높아 달이 가까워 달빛을 온전히 받아 별만큼 빛나고 있었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산이 이렇게 빛날 수가 있다고?


무대 조명을 홀로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 속에서 눈이 부시도록 희게 빛나는 눈이 신기해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경이로운 순간을 모르고 살 뻔했다고 생각하면 서운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온 곳에서, 여길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한 곳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비현실적이라서 현실적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데도 벌써 아쉬웠다. 이거는 내 눈으로만 볼 수 있을 텐데, 이걸 지금만 보고 다음에 못 볼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 아쉬웠다. 산에서 밤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하늘은 둥글고 별이 빼곡했다. 분명 엄청 추웠던 것 같은데, 내게 남은 건 찬 바람이 아니고 별과 달 뿐이었다.




오로라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산이든, 사막이든, 별이 쏟아지는 창공 아래 누워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예쁜 밤이라면 잊고 싶지 않았다.


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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