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함 속에서 만난 평온함
그날,
섬으로 들어가려던 길이 하얗게 흐려졌다.
해무가 내려앉아
배는 뜨지 못했고,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섬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 풍경.
색도, 소리도, 방향도 모두 희미해졌다.
해무는 조용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기운.
촉촉한 안개가 살갗에 닿았지만,
몸이 떨리지는 않았다.
그날의 공기는
무해했고,
어쩐지 신비로웠다.
나는 선착장에 서서
멀리 흐려진 수면을 바라봤다.
가로막힌 것도 같고,
어쩐지 멀어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 기다림은
초조함보다는
멈춤에 가까웠다.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묘하게 아름다웠다.
바다는 바다 같지 않았고,
섬은 섬 같지 않았다.
그 모든 흐릿한 형체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돌아가지 못하는 동안,
나는 그곳을 떠올렸다.
작은 마당, 고양이,
창밖으로 보이던 파도,
해초냄새 스며든 바람,
익숙하게 밟던 흙길.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는 장면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면서
해무는 조금씩 걷혔다.
섬의 능선이 드러나고,
바다는 다시 제 얼굴을 되찾았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멈춰 있었지만,
마음은 조금 더
섬에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지나가지 못한다고
마음이 닿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날, 해무는
그 조용한 사실 하나를
내게 남기고 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섬이 거기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었듯,
나 또한 어느 흐릿한 경계 너머에서
조금씩 자신을 다시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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