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와 화해하기까지

by 고봉만


고수를 처음 접해본 것은 2015년 8월, 3박 4일로 홍보 영상 촬영 차 다녀오게 된 베트남 출장에서다. 내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첫 해외 방문이다. 처음으로 만들었던 여권은 올해로 벌써 10년이 지나 만료되었다.


2015년 8월


사실 너무너무 떠나기 싫은 출장이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시 동행했던 직원들이 나보다 10살 이상 많은 직장 상사 세분뿐(게다가 모두 남자분들!)이었던 것도 그렇고(그 당시 나는 스물여섯이었다), 하필 당일에 터져버린 대자연의 힘으로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든 상태에, 매너리즘에 빠진 회사에 대한 불만도 많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여행이 아닌 일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타게 된 것도 심란함을 더했다. 3박 4일 동안 호텔방 안에만 틀어박혀있을 내 모습이 미리 그려졌다. 아저씨들이야 아저씨들끼리 관광도 하고 놀면 재밌겠지. 나는 출장에 대한 고통을 함께 덜어내 줄 동료도 없었으니. 모든 상황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조작된 것처럼 여겨졌다. 베트남에 온 한국사람 중에 나만큼 우울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아저씨들은 아니나 다를까, 출장이 가져다준 자유를 누리느라 즐거워 보였다. 덕분에 화딱지가 잔뜩 났다. 그들이 말만 붙여도 짜증이 솟구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감정이 곡예를 타기 시작했다. 함께 클럽에 가자는 말도 완강히 거부한 나는 일과 식사가 끝나면 줄곧 호텔방에 머물렀다. 혼자 인근 마트에 들러 초코 컵케이크를 사 온 것이 내 일탈의 전부. 무더운 것을 기본값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돌변하는 날씨에, 야외에서 장비들을 들고 뛰어다녀 기력도 없는데, 여기에 생리통까지 겹쳐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불쾌지수가 전고점을 향해 치솟았다. 그렇게 힘든 일과를 끝마친 어느 날인가 마주하게 된 저녁 메뉴가 하필 똠양꿍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거북한 음식이 있다니.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경악스러움이었다. 똠양꿍만으로도 벅찬데, 안에 숨어있던 고수가 궁극기를 날렸다. 흔히들 표현하는 데로 먹어본 적 없는 화장품 맛이 났다. 현지의 고수향은 어쩐지 더욱 지독했다. 으악. 첫 입부터 내가 거부감을 드러내자 아저씨들은 조용히 쌀국수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첫 만남에 곧바로 이별을 선언하고 그 이후에는 애써 고수가 없는 음식을 찾아 먹어야 했다. 또 어떤 음식을 먹었더라. 흠. 사실 쌀국수 외에는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참 고통스러운 3박 4일이었다.



최근까지도 고수를 보면 그 당시의 향과 맛이 났다. 고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거창한 계기는 없다. 점심시간 우연히 쌀국숫집에 갔고, 그때 우연히 육수에 절여먹은 고수가 쌀국수의 풍미를 더해주었을 뿐. 다른 계기는 전혀 없다.


그래서 많이 이상했다. 요즘의 나는 입맛이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정확히는 차분하게 하나씩 변해간다. 단 커피만 먹던 내가 쓴 커피에 익숙해지는가 싶더니, 요즘엔 또 신 커피만 찾는다. 열매의 지독한 냄새와 달리 팬에 구웠을 때 느껴지는 은행의 고소한 맛, 혀를 마비시키는 마라의 알싸한 맛도 알게 되었다. 늘 골라내고 먹었던 피자 토핑으로 올리브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없어서 못먹는다. 어렸을 땐 갓 잡아 올린 빙어나, 메뚜기를 튀겨주면 맛있게 집어먹었다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도대체 어떻게 먹었던 걸까 싶다. 잊힌 과거의 맛을 잃고 새로운 맛을 얻게 된 것 같다. 물론 즐겨 먹던 음식은 여전히 잘 먹는다. 세월과 함께 얻게 되는 변화가 신기하고 새삼스럽다. 입맛이 변할수록 꼬깃꼬깃 접혀있던 세상이라는 종이를 차근차근 펼쳐보는 기분이 든다. 나에게 미식의 세계가 주는 경험은 여전히 미지 속 탐험의 과정이다. 나는 아직도 못 먹는 음식들이 많기에, 앞으로 또 어떤 맛을 얻게 될지에 대한 기대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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