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사생활
“여기서 뭐 해?”
엄마의 뒤에 서서 인기척을 냈다.
퇴근이 늦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식을 했다. 적어도 내가 근무 중인 이 회사의 동료들은 급여도 적은데 퇴근까지 늦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직주근접이 아닌 것도 문제. 부득이하게 회식이 정해지면 그마저도 가볍게 즐기고 흩어졌다. 2차 갈 사람을 모집하는 분위기도 거의 사라졌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전체적인 팀의 분위기도 소극적인 편이다. 다년간 음주 문화에 찌들어 이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 나도 간편해진 회식 문화가 무척 반가웠다. 술이란 것은 이제 편안한 사람들과 주고받고 싶다. 주량은 천천히 마셔야 딱 소주 두 병 정도인데, 모두들 내가 소주를 다섯 병 정도 마시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기적적인 수치가 탄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음에 지친 몸을 늘어뜨린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 밖으로 시선을 붙박은 채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저녁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옆 동네를 모조리 순회하는 노선이지만 늦은 시간이라면 버스를 타는 쪽이 마음 편했다. 삼사십 분가량 앉아서 머리를 비운 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면 열 시를 넘기게 되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집이 그리운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회식의 향기가 온몸에 배어 조금은 눈치가 보였지만 한적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귀가하는 나를 반겨줘야 할 타이밍에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뜻밖에도 내 방 창가에 서서 윗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충망까지 시원하게 밀어젖힌 채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손짓으로 환영 인사를 대신한 엄마는 다시 창밖 상황에 집중했다. 손에 들린 엄마의 휴대전화가 요란했다. 번쩍번쩍 유튜브가 재생 중이다. 엄마가 평소 즐겨 보던 한일가왕전 채널이다. 이전에 경험했던 내 휴대전화의 볼륨만큼 소음이 컸다. 그때 익숙한 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관망했다.
“아니, 음악을 왜 그렇게 크게 들으세요?”
도전장이 날아왔다.
“나와보시라고 일부러 틀었어요.”
유튜브 재생을 멈춘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통화하셨죠?”
“아뇨. 안 했는데요.”
하? 엄마는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닌데. 내가 여기서 다 들었는데.”
“저 아니에요.”
매일 듣던 목소리의 그녀가 본인의 무고를 주장한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삭제하는 꼴이다.
“그래요? 누가 여기서 큰 소리로 통화하던데. 못 들으셨어요?”
“저는 통화 안 했어요.”
“그렇구나. 누군진 몰라도 대화소리가 다 들려요. 서로 조심 좀 하자고요.”
“저 아니에요. 아니, 저도 윗집 때문에 힘들어요.”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윗집이 시끄럽게 해요. 저도 힘들어요. 며칠 전엔 누가 여기 앞에 쓰레기를 버려서 냄새가 났어요.”
우리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데 먼저 자진신고까지 한다.
“윗집에 한 번 얘기해 보세요. 쓰레기는 치우시면 되잖아요.”
“제가 왜 치워요? 냄새나는데.”
“그럼 냄새가 나는데 안 치워요? 불편한 사람이 치워야지.”
“여기 얼마나 사셨어요?”
“저희는 10년도 더 됐어요.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저흰 2년 정도 됐어요.”
오래 계셨네요. 그러곤 더 이상 말문이 막혔는지 말이 없다.
“저희 딸이 귀가 예민해서 힘들어해요. 우리 서로 조심하자고요. 우리도 피해 안 주도록 할게요.”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았어요. 저도 조심할게요.”
“저 아줌마 거짓말 하는 거 봐.”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서 몇 분을 듣고 있었는데. 나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통화하는 사람 저 집 밖에 없는데. “이제 안 그러겠지.” 엄마는 승리한 영웅처럼 씩 웃었다. 한 번 지켜보고 또 그러면 말해. 주변이 적막으로 젖어들었다. 엄마가 내 방을 떠나고 나는 다시 창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부터 이 고요 속에서 숙면을 취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그동안 홀로 견뎌냈던 감정들의 충돌을 떠올렸다. 방금 전 오고 갔던 대화로 인해 나 홀로 파헤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정말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내가 체념한 탓일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걸까. 이 알고리즘에 대한 방향은 정해져 있다. 애써 외면해 왔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것 같은 허무함이 내 온몸을 감쌌다. 안 되겠다. 나는 서둘러 침대에 내 몸을 의탁했다.
딸내미. 잠깐 밖에 나가봐. 밤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나를 침대 밖으로 끄집어냈다. 밤공기가 그럴싸하게 차가워졌다. 나는 계절을 잊은 채 잠옷 바람으로 슬리퍼를 고쳐 신었다. 굳이 현관문 밖까지 나서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시선을 잡아끄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틀었다. 밝게 켜진 불과 굳게 닫힌 창문. 건물 외벽을 뚫고 나오는 커다란 소음. 골목길 곳곳을 파고드는 무아지경의 리듬. 무심하게 마실에서 돌아온 어르신과, 건너편 주택의 개 짖는 소리. 바닥에 흩뿌려진 개의 대변들. 자동차 바퀴에 짓눌린 음식물 쓰레기. 폐기물을 들고 이웃집 앞을 기웃거리는 의좋은 이웃들. 과태료 부과 스티커. 무엇 하나 정 붙일 곳이 없다. 공허한 마음으로 나는 다시 몸을 숨겼다.
좁은 틈바구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 총포탄 없는 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전쟁 중에서도 사랑이 꽃피듯 불행 중에서도 다행인 일은 있다. 그것은 자정이 되기 전에 모든 소음이 멈추게 되었다는 것. 작은 변화 하나로 폭발하지 못한 채 들끓고 있는 화산이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무엇이 이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들의 양심? 엄마의 경고? 밤마다 두 세 차례 열고 닫히는 괴팍한 창문 소리?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복수에 대한 충동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가 또 한 소리 할까?”
엄마는 다시 돌아온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손바닥을 휘저었다.
“아냐, 아냐. 나중에 신고하면 돼. 엄마도 차라리 녹음을 해놔. 증거로 쓸 수 있게.”
남의 일인 양 건조하게 대답했다. 흐응. 정말 이상한 아줌마야. 엄마는 내 반응에 안심하고 돌아섰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무엇이 달라졌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