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의 삶

by 고봉만


최근의 나는 주말이건 평일이건 특별한 일이 없어서 오로지 출근과 집, 누워서 휴대폰 아니면 게임, 그리고 잠, 다시 출근, 집, 잠, 이토록 지독하게 하루하루를 복사 붙여 넣기 식으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이토록 권태로운데 내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그러니까 마지막 남자친구와 상처로 점철된 이별을 경험한 직후.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린 것이 약 3년 전. 나는 어느 순간 다정함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지금까지도 말조심을 하느라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아마도 천성이 말을 곱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살얼음판 같은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 부모님으로부터 따뜻한 단어를 다양하게 물려받지 못했고, 거기에 내향적인 성향만은 제대로 물려받아 지독하게 수줍음을 탔다. 초등학교 저학년땐 철없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자존감도 낮았다. 덕분에 학창 시절 또래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서툴러,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자라고 보니 세상에서 스몰토크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성장하고 보니, 소통의 어려움이 낮은 자존감과 불량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자신감을 마모시키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것을 끔찍이 두려워했다. 손을 사정없이 떨어댔기 때문이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 그 말은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나를 고문하는 방법이었다. 비단 사진뿐만이 아니다. 숟가락을 들거나, 음료가 든 컵을 들어 올릴 때도 그랬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20대 땐 소주잔을 한 손으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당시에는 뇌가 알코올에 지배당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마도 관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리라.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또는 그런 착각)이 그토록 긴장감을 주었다. 그토록 사회성이 부족했다. 그토록 소심했고, 그토록 겁이 많았다.


이제야 나는 늦은 나이(...)에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잘하기 위해. 10대에 못다 푼 한과, 망나니로 살았던 20대 시절의 죄를 청산하고 조금쯤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타인과 뒤섞이기 위해. 과거의 나는 아주 외톨이는 아니었으나, 마음 한 편엔 고독에 대한 공포심이 가득했던 것 같다. 30대가 된 지금은 이 공포조차도 나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앞서 말했던 다정함에 미쳐있던 그즈음부터랄까. 비폭력대화, 인간관계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안 읽던 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왜 그동안 책을 읽지 않았을까). 나는 본디 정성껏 말을 하는 방법을 몰라서,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짧은 몇 년의 시간 동안 가면을 쓴 채 살았다. 물론 과거의 나와 비교해 보자면 지금의 나는 행동도, 가치관도,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만족스러운 성장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최근 들어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만 같은 한계를 느꼈다. 지금까지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짜의 삶이란, 아무래도 진짜가 될 순 없는 모양인지.


삶이 무기력하니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 스스로를 돌볼 여력도 없는데, 주제넘게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겠다고? 뇌가 굳는 것이 지독하게 공포스러워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때의 보람도 전과 같지 않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그토록 다정을 흉내 냈던 걸까.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되면 타인도 다정하게 다가올 거란 기대, 그때 되돌려 받은 다정함이 내 삶을 바꿔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변화인데. 자기만족을 위해 이상적인 모습의 나를 만들어내려고 아등바등 살아놓고 왜 그토록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자 했던 걸까.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싶어도 어떤 질문부터 시작해야 할지, 사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이 어렵다. 무덤 속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고 흙으로 되돌아간 어떤 철학자들을 다시 끌고 나와 묻고 싶을 지경. 누군가 나에게 조금 더 솔직하게 굴어도 괜찮다고 속 시원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짜의 삶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경청의 소중함을, 따뜻한 말과 표현의 만족감을, 생각이 떠오르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서. 가짜의 모습이 나를 현실에 순응시켜 준 것만 같아서. 성장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쥔 채 고독을 갈망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상처받았어도, 그것이 새로운 보물찾기의 시작이 되었던 것처럼. 한번 과몰입을 시작하면 질릴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편인데, 아직까지는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의 나'가 좀 더 마음에 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언젠가는 가짜가 진짜가 되는 날이 오겠지. 지금은 일단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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