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나가주세요, 혼자 먹고 싶습니다

by 고봉만




몇 달 전,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추천 글감 하나가 포스팅 욕구를 자극했다.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주제였다. 그 짧은 소개글 한 줄이 마치 운명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사진첩을 뒤져 지나온 흔적을 차곡차곡 모아 자신 있게 포스팅을 등록했다. 그러자 다음날 오후 블로그 메인에 등록되었다는 알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혼밥은 두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어요', '저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와 같은, 또는 나와 다른 이유로 자신만의 시간을 슬기롭게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일 수 없는 사람들, 또는 혼자가 두려운 사람들. 많은 이들이 혼자라는 단어에 대한 경험치를 나눠주었다. 댓글과 응원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내 사연을 스쳐간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랐다.


프로 혼밥러는 아직 추구미다. 그래도 세미프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식당보다는 카페에 가는 횟수가 더 많지만 반차를 신청한 날은 대개 혼밥을 즐기곤 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그 시기와 맞물려 다니던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짧은 순간 주어진 재정비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지 고민하다가, 혼자 카페를 찾아가 책을 읽거나 필사를 했다. 그 이후 자신감이 생겨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대부분 접근이 어렵지 않은 것들이었다. 식당을 찾고, 영화관을 가고, 전시를 관람하고, 그리고 딱 한 번이지만 여행도 다녀왔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려있기도 했다.


특히나 혼밥은 식당을 찾아보는 과정도 즐거웠다. 미각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맛집 탐방에 대한 주도권은 모두 동행인에게 양도하곤 했으나, 혼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실패와 성공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다. 나의 바이오리듬에만 의존한 채 메뉴를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주로 일식이나 패스트푸드, 또는 분식류를 먹는 편이다. 선호하는 메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1인석이 있어 식사가 편하다. 맛집은 사전에 여러 곳을 리스트업 한다. 분위기와 혼잡도를 보고 메뉴를 수시로 수정하기 때문이다. 혼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변덕이다. 혼밥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까. 입맛의 조정을 끝내면 천천히 내 속도에 맞는 차분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 와중에도 로망이 있다면 집 근처에서 국밥에 반주를 곁들이는 것이다. 지금은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퇴근 후 곧장 귀가하곤 하지만, 자취를 했더라면 단골집 하나를 선정해 신출귀몰했을 것이다. 지난번 혼자 다녀온 여행에서 즐긴 반주가 퍽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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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식당이 혼자 오는 손님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후기를 미리 찾아보고 가는 편이다. 대식가가 아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슬프다. 엽떡, 피자와 같이 나눠먹기 좋은 음식이나 곱창, 대창 같은 구이 음식도 혼자 먹고 싶은 메뉴 중 하나인데, 음식을 잔뜩 남기는 것보다는 포기하는 것을 택하곤 한다. 식탐의 활성도 대비 위장이 양적으로 따라주질 못한다. 먹방 유튜버들이 자주 존경스럽다.


직장생활 중 합의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식사 속도다. 펄펄 끓는 음식을 위장으로 곧장 내리꽂는 동료들의 기적적인 식사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본래도 세월의 흐름을 샘 하며 식사를 하곤 하지만 뜨거운 음식은 앞접시 없이 제속도로 먹을 수가 없다. 속도가 더디니 덜어먹는 프로세스를 줄여보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그럴 경우 음식을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채 버려야만 한다. 이 회사, 저 회사를 떠돌며 10년이 넘어가도록 노비의 삶을 살고있지만 식사 속도만큼은 여전히 타협이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소음이다. 내가 소음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혼밥의 해방감을 알게 되었다. 사방에서 대화소리가 들리면 집중력을 상실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여기에 사회생활이 접목되면 점심시간 동안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고 만다. 뇌가 본능대로 나뒹구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혼밥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과 함께 나약해지는 신체로 인하여 혼밥의 매력에 더욱더 깊게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복잡한 사회관계망에 얽혀 뇌가 휴식을 필요로 할 때, 밖이든 집이든 나만의 속도로 홀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조용히 사색하며 나를 다시 한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을 끊어내지 못해 혼밥이 두려울 수도 있다. 나 또한 눈칫밥이라면 먹을 만큼 먹어봤기에 그 두려움을 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맞다. 그러나 나를 위해 창조된 세계가 아니듯, 타인들 틈에서 나의 존재감은 우주의 티끌만큼 아주 미미하다. 그 사실이 혼밥의 두려움을 많이 덜어주었다. 혼밥을 필요로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앞선다면 차분히 쉬운 난이도부터 도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패스트푸드, 분식점, 또는 카페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브런치류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단 한 번의 시도가 세상을 뒤바꿀 수 있듯이. 모든 과정이 생각보다 다정하게 다가와 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혼자 고기도 구워 먹고, 혼술도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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