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의 뇌는 과학 관련 분야는 아주 문외한이다. 내 인생에 과학이라 함은 중·고등 교육 과정에서 배웠던 생물, 지구과학, 화학, 물리 등 교과서에 실려있는 정직한 이론과 성인이 된 후 음향업에 (잠시) 종사할 때 배운 전기 공식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내용이 어렵고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전부 잊어버렸다. 고등학생 때 물리 선생님이 교내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미남 중 한 분이셨지만, 나는 물리가 싫어서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았다.
덕분에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와 등을 지고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몇 년. 몇 해 전 어느 날 뜻밖에 접하게 된 과학 도서 한 권이 나에게 이 세상은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하고, 네게도 그 세상의 일부를 보여주겠노라- 소리쳤다. 그 책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라는 책이다. 안타깝게도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반드시 습득해야만 했던 교과 이론 이후 처음 접해본 과학책의 내용은 내 생각보다 훨씬 쉽고 흥미로웠다. 생소한 용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간담을 서늘하게 할 때도 있었지만, 비교적 이해가 쉬운 설명과 예문으로 독서에 전혀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도리어 새로운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과학책에 대한 편견('과학'과 '책'이 품고 있는 전문성과 나의 무지몽매함이 충돌하여 자괴감에 빠지리라는)이 조금은 누그러들게 되었다.
그렇다. 과학책, 생각보다 읽기 쉽다! 공포감을 떨쳐버리고 펼쳐든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도서로 분류되어있긴 하지만, 과학적 이론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까지 함께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 새로운 사실과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생물학자의 삶을 좇는다. 저자가 사진과 회고록 등을 통해 만난 낯선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독서 후기를 작성해 보겠다.
그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의 형태를 밝혀냄으로써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과학자, 더 정확히 말하면 분류학자였다. …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中
저자의 인생에 '혼돈의 시기'가 찾아온다. 책에서 말하기를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에 대한 시기의 문제로, 그 사람을 집어삼키고 당신의 개를 죽이거나, 당신의 소중한 기억을 부식시키고, 당신이 간신이 쌓아 올린 모든 성스러운 장소를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혼돈으로 가득한 삶. 혼돈에 매혹되고, 답을 구하는 일이 운명처럼 느껴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의 삶을 좇아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아버지의 충격 발언과 연약함으로 무장한 언니의 영혼, 떠나간 남자. 그녀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하얀 콧수염을 가진 어떤 분류학자에게 매료된다. 확신이 없는 일,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 절망 속에서 나풀거려도 이 분류학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나아가게 한 에너지의 원동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고기가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전의 시대이다(약 두 세기 전).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송이보다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한 회고록에 쓴 내용이다. 그는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질서를 부여하여 의미 있는 생물학적 실체로 재창조했던 생물학자 겸 분류학자다. 밤하늘의 혼란스러운 별들을 사랑하고 작은 들풀을 수집하던 소년의 관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자연의 무질서 속으로 발돋움한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박물학자였다는 루이 아가시. 그는 '책이 아니라 자연을 공부하라'는 모토를 가지고 수집과 관찰의 기술을 전파하고자 작은 섬에 여름 캠프를 꾸려 학생들을 모집했다. 매력적인 소식을 전해 들은 젊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체할 것 없이 그의 캠프에 지원했으며, 며칠 뒤 경이로운 미지의 섬으로 떠나기 위해 승선하게 된다.
당시 루이 아가시는 자연의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으로 창조되었으며, 피조물들 간의 배열을 맞추는 것은 신의 계획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성한 일'로 이는 신의 의도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가르침도 함께 섞여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은 자연계의 배열을 '신성한 사다리'라고 불렀으며, 자연계의 높낮이를 뜻하기도 한다. 이때 등장하게 된 것이 현미경과 돋보기인데, 아가시는 피조물들의 껍질을 가르고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이 신의 위대한 계획을 해독하는 길이라 믿었다고. 그 결과로 알아낸 것이 어류종의 내부 골격 구조가 인간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 사실은 곧 신이 인간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로 정의되었으며,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으로 도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예로 멍게 같은 경우 바다에 사는 멍청한 주머니에 불과하며, 신이 게으른 인간에게 주는 명명백백한 경고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가시의 사상은 『종의 기원』으로 생물학에 새로운 판도를 제시한 다윈의 견해와는 달랐다. 다윈은 「자연계에 불변의 경계선이란 없으며, 진화의 흐름에 일정 규칙을 부여하는 일은 단지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 설계한 자의적인 선」이라 말했다. 그는 자연계가 가진 복잡성이 자유롭게 섞이고 변이 하는 것을 방임해야 종이 진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루이 아가시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다윈의 주장을 죽는 날까지 반대했던 반면, 그를 따르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연계의 불확실한 진화를 인정하며 다윈의 생각을 일부 받아들였다고 한다. 저자는 그의 이런 면모에서 그가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그의 다음 행적을 좇는다. 하지만 스승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사명에는 스승이 남긴 미완성의 사다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피조물들이 우연에 의해 생겨난 것을 받아들이는 한편, 그는 멍게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마음에 품은 채 불완전한 생명의 나무를 완성하기 위해 계속 전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혼돈은 이 불운한 생물학자의 삶을 꾸준히 집어삼켰다. 나도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어, 저자가 궁금했던 만큼 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는 어떻게 우주처럼 부풀어 오르는 혼돈, 형제의 죽음과 아내의 죽음, 자식의 죽음, 동료의 죽음의 지배력을 떨쳐내고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인간을 사다리의 더 높은 곳에 올려놓기 위해) 수집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인류 최초로 바늘을 집어 들고 표본에 이름표를 꿰매어 넣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이 행동은 지진으로 인해 정성껏 수집한 그의 표본들이 산산조각 난 채 바닥을 나뒹굴게 된 사건을 계기로 한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中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한 원동력의 유의미한 단서를 그의 서적에서 찾았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이다.」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자신을 속이는 것.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 절망도 누군가를 위해 숨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재난 한가운데서 살아남았고, 그 결과 바닥을 나뒹굴며 메말라가는 표본에 물을 뿌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의지로써 자신의 세계를 빚어갈 수 있다는 믿음. 그 위대함을 발판으로 삼고 그는 자신을 망치기 위해 손톱을 가지런히 정렬해 덤벼드는 시련을 진정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기만'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긍정적 착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자기기만으로 발휘되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이 작은 속임수 하나가 가능성과 집요함을 끌어내고 과학적 세계관이 주는 허망함에서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거짓말도 타고난 속성을 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기만이 쌓아 올린 절망감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보이길 바랄수록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높아지고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 따르는 좌절감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크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는 다른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는 사람에게서 긍정적 착각 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본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이상적으로 보이길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 내면에 심어진 긍정적 착각이라는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 통제력, 자기 과시와 같은 줄기를 이루고 자신감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으나, 그것은 사막에서 피어난 신기루와 같아서 왜곡과 열등감으로써 스스로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긍정적 착각 지수가 높은 이들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 간의 특이한 기벽 하나가 공유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손으로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지나친 과신을 유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세계를 열등한 것으로 분류해 생물의 배열, 즉 신성한 사다리의 가장 암울한 곳으로 밀어내기 위해 앞장서는 계기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부적합자! 단박에 귀를 사로잡으며 매우 암시적이고 너무나 깔끔한 단어.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살 자격이 있는가에 관한 그의 의견에 과학의 망토를 둘러줄 수 있는 단어였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中
사다리의 끝으로 추락 가능한, 인간의 퇴화에 대한 믿음은 '우생학'이라는 편견을 낳는다. 그리고 그 편견의 중심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저명한 과학자가 있다.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던 이 단어는 그를 통해 미국 전역에 널리 보급된다. 우생학은 단어 그대로 유전적 형질 가운데 우수한 것들을 선별적으로 개량하여 인류의 전반적인 유전적 품질을 향상하고자 하는 과학적 신념이자, 그러하다는 이론이다. 우생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장애와 질병, 정신 질환, 더 나아가 방탕함, 범죄성, 게으름, 가난 등의 형질을 유전적 열등함으로 여기고 자연계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유전자 풀에서 선뜻 인간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른 정책으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불임화의 합법화를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명목으로 인간이 희생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불임화는 열등하다고 분류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강제적으로 진행된다. 우생학자들의 견해가 견고해질수록 비인간적인 방법의 불임 수술은 점점 늘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거 없는 과학적 이론을 핑계로 엄마가 되고 싶었던 소녀들의 꿈이 짓밟히고 희생된다.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이토록 악랄한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자기기만. 저자는 그의 발자취를 좇는 과정에서 이성적이었던 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옮은 것'이라는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착각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의 사상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자연의 질서. 이 혼돈을 사로잡는 일이 그에게는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 됨과 동시에 방향 감각을 잃고 파멸로 치닫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과 부적합자를 구분하는 힘이 같은 곳에서 기인하다니. 「긍정적 착각은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이 경고한다. 나는 책을 통해 이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어떤 파멸을 야기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 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中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보았다. 어류의 골격 구조가 포유류와 유사하다는 것을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보았다. 루이 아가시는 이와 같은 생물학적 유사성을 인간에게 던지는 신의 경고로 여겼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가미를 달고 물속에 사는 종을 어울러 '어류'라 부르게 된 범주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자가 아니기에 몰랐던 몇 가지 새롭게 발견된 (현대의 분기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들을 소개하자면 박쥐는 설취류보다는 낙타에 훨씬 가깝고, 폐어는 실제로 연어보다는 소의 심장 구조와 더 비슷하다고 한다. 또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그토록 인간 퇴보의 경고로 일삼았던 멍게는 「척삭이라는 척추와 비슷한 구조물을 가장 먼저 선구적으로 갖춘 생물이며, 다시 말해 이는 퇴보한 존재가 아니라 정반대로 혁신가였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류' 또한 마찬가지다. 어류라는 것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직시한다면 틀린 범주가 된다는 것이다. 어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속에 참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저자의 친구가 그녀에게 전해준 말로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라는 문장이다. '지구는 돌고 있다'라고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천문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던 당시의 대중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이단시된다. 하지만 직관을 벗어나는 것. 내가 이해하고 있는, 과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들, 밤하늘을 회전하는 별을,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의미를 깨부순다면 우리는 자전하는 지구를, 공전하는 우주를 깨닫고 은하계를 항해할 수 있다. 과학이 평생의 과제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 '의심'. 인간이 과거로부터 축적해 온 범주를 다시 한번 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탐구하는 것. 나는 그것이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의식 속에 갖추어야 할 작은 균열처럼 여겨진다. 별을 포기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우주를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인간이 그어놓은 과학 안의 '질서'라는 편리한 경계선을 넘으면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우주적 유한의 존재에서 벗어나 복잡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가능성의 파도를 유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범주를 잃었을 때 균열을 파고든 새로운 혈액이 역류하지 않고 심장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저자가 묻는다. 내가 짓궂게 밟고 서 있는 발 밑에 무엇이 깔려 허덕이고 있는지, 내가 호흡하고 숨을 내뱉는 동안 무엇을 지나쳐왔는지. 내 생각과 관념들이 어느 지점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더 의심해 보자.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기회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