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통제

by 고봉만


책에서 '본능'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인간의 DNA에는 이성의 매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남성들은 대체로 번식 욕구 때문에 시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번식에 유리한 여성상'이 매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데, 이는 곧 여성들의 아름다운 외모를 말한다(깨끗한 피부나, 건강한 머릿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식 능력 등등). 남성들의 본능은 생존에 유리한 다양한 유전자를 남기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에 여성들은 남성을 선택할 때 외적인 것보다 남성성이나 가정적, 책임감 같은 태도에 매력을 더 느낀다고 한다. 유전자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부부가 함께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생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능이란, 무의식처럼 알아차리기 힘들고 원숭이는 원숭이에게, 사람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오래전부터 학습되어 DNA에 새겨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대 사회에서 본능들은 다양한 형태로 가면을 쓰고 있다. 우리는 번식 욕구를 사랑이라고 부르고, 탐욕을 행복이라 부른다. 우리는 유전자에 새겨진 교훈을 토대로 집단을 이루었는데, 그것이 생존 본능을 자양분 삼아 혐오와 배척의 형태로 발전했다.


전쟁과 살인, 폭력, 착취, 강간, 차별과 편견. 우리는 본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개개인의 본능적 행위가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와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피해갈 수 없다면 예방이 필요하다. 인간들은 고민 끝에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다수의 룰을 정하고 교육을 통해 준법정신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챗GPT에게 물어보니, 「인간의 불필요한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규범, 교육, 기술 변화)를 기반으로 행동 양식에 대한 변화를 발생시켜 유전적 소거 없이도 표현을 억제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서로 갈등하고, 착취하고, 폭행하고, 죽이며 본능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나는 본능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다소 극단적이긴 하나, 인류 문명 가운데 발생하는 다양한 혼란의 시발점이라 여겨진다. 책에선 사실만을 말하므로 본능이란 오래전 과거로부터 학습되어 남아있는, 의식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고, 원숭이가 원숭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러나 나에게 본능이란 현대 사회에 와서는 무엇보다도 의식적으로 통제되어야 할, 또는 통제 가능해야만 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배구공처럼 여겨진다.


본능은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성질이다. 아주 오랜 과거에는 도처에서 생존에 대한 위협이 발생했고, 인간인 내가 돼지를, 토끼를 사랑하면 번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번식을 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홀로 도태되기 때문에, 집단 사회를 이루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본능이 중요한 생존 수단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르다. 개개인의 재산을 보호받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가치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물론 전세계의 모든 인구가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이 과거와 달리 목적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본능의 역량으로 일정치는 삶이 순조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능이란 이제 더 이상 운명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고, 통제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본능을 무기로 휘두르고 싶을 때가 있다. 때때로 위협을 느끼면 '저 인간 처리하고 저도 지옥에 가겠습니다'는, 수신자가 불분명한 기도를 올리곤 한다. 그러나 내가 정말 오로지 나를 위해 본능대로 누군가의 삶을 끝장내버렸다면 나는 나의 권리를 되찾고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걸까? 우리는 '나'라는 개인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내면에 숨어있는 버튼을 조작할 줄 알아야 한다. 본능을 거스르는 것. 이 작은 통제 하나하나가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본능에 지배당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서 무엇을 포기하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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