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를 읽고
책을 읽을수록 나의 인생이 통째로 해킹당한 게 분명하다고 여겨졌다. 이 책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인구의 약 16%에 속한다는 매우 예민한 사람, HSP(Highly Sensitive Person, 초예민자)에 대한 설명과, 하루에도 수십 번 내면에서 전쟁을 치르는 그들을 위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 전문가로, 현재 마음숲길 심리코칭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추천 도서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의 저자이기도 하다. 「남들은 내가 예민하다는 걸 모른다」, 「예민한 사람에게 인간관계가 지옥인 이유」, 「불필요한 인풋을 차단하면서 나를 지키는 법」,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제는 내가 나의 편이 되어야 할 때」 목차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격심리학에서 말하는 '예민한 사람'은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민한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민함이란, 어떠한 상황이나 기질적 요소로 인해 드러나는 결과적 측면에 가깝다면 책에서 설명하는 HSP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질적인 측면에서 예민함이 타고났으며, 이들은 갈등을 싫어해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과 의견을 맞춰주고, 기를 쓰고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며,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살펴 편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내가 ISFP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MBTI 성격유형 중 ISFP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여겨졌다. 이들이 이토록 타인을 위해 힘쓰는 이유는 스트레스와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서는 이와 같은 HSP의 예민함을 '슈퍼 안테나'로 비유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고 민감성 슈퍼 안테나. 하지만 이 성능 좋은 안테나는 필터링 없이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전부 캐치해 내기 때문에 쉽게 과부하게 걸릴 수 있다. 저자는 예민한 기질의 특징을 초감각과 초감정, 그리고 심미안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초감각은 감각 기관의 높은 민감도를 말한다. 이들의 감각은 선천적으로 굉장히 민감하게 발달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육아 난이도가 높았던 사람(사소한 불편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주 칭얼거렸을 것이라는 설명)일수록, HSP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에 따라 보통 사람들보다 청각, 후각, 미각 등의 오감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깊은 수준의 정보를 처리한다고 한다. 나 역시 남들보다 청각과 촉각이 예민한 편이다. 비염이 아니었더라면 후각과 미각도 예민했으려나. HSP의 감각 처리 기관은 스펀지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자극을 흡수하려는 습성이 있으며 부정적인 에너지까지 모두 받아들이기 때문에 번아웃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
초감정은 예민한 민감성 때문에 감정의 몰입에 더욱 강하게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HSP들은 타고난 기질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도 쉽게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은 고 공감자인 '엠패스'와 흡사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엠페스의 경우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역지사지적 인지 과정으로 인해 '그래, 나 같아도 짜증 났을 것 같아'와 같은 공감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HSP들이 겪는 초감정은 보통 사람보다 그 속도와 강도가 훨씬 강력하며 감정만 전이된 상태, 즉 감정만 복사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에 영향을 받기는 하나, 이때 뒤따르는 감정에는 기승전결이 없으며 자신의 기준에서 '별것 아닌 일로 왜 저래'와 같은 주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지막 특성은 심미안으로 이는 그림이나 음악, 영화, 책 등을 감상하거나 스스로 창작하는 과정에서 감동을 느끼고 영감을 얻는 HSP들의 내적 활동을 말한다. 이들은 문화나 예술 등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은 초감각으로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식별이 가능해지고, 초감정으로 내면의 깊숙한 부분까지 건드려지게 되는 것에서 드러난 특징이라고 한다. 심미안은 유사 예민자들과 구분되는 HSP만의 가장 명확한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정확하게 초예민자로 진단받은 것은 아니지만, 공감 가는 문장이 많았다. 소제목을 읽을 때마다 용한 무당에게 모든 과거가 탄로 난 사람처럼 강하게 수긍했다. '예민한 사람이 반드시 은혜를 되갚는 이유', '예민한 사람이 무던해 보이는 이유', '폭력적인 장면을 보는 게 유독 힘든 사람들', '눈치가 빠른 걸까, 눈치를 많이 보는 걸까?', '나는 왜 할 일을 자꾸 미루는 걸까', '참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등등. 미처 깨닫지 못했던 기질에 대한 비밀스러운 호소가 눈앞에 문장들로 펼쳐져 있던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기질에 대해 무감하게 살아왔다. 소음에 취약하고(귀가 점점 예민해지는 중...), 잘 놀라며, 눈물이 많고, 잠자리를 가리는 등. 누구나 겪고 있는 신체 반응이라고 여겼고, 그에 따르는 고통은 내가 이상한 탓이라고 여겼다. 체력이 부족한 것도, 게으른 것도, 갈등이 싫은 것도, 전부 회피하는 것도.
그래서 없는 체력을 쥐어짜서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어쩌면 일상이란 늘 혼돈이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다.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타인보다 곱절로 흘러들어오는 감각들을 수용하느라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의 희생이 이미 큰데, 이 고갈된 정신력을 바탕으로 사람들 틈에 섞이기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보며 기력을 초과 소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강요한 적이 없는데, 나 스스로 나에게 가장 불편한 세상을 창조해 냈다. 나의 본질적인 기질을 외면한 채 타인의, 그룹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읽어야만 했던 것. 원치 않아도 그랬고, 조절이 불가능했다.
아직까지도 나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혼란에 대해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라 판단하고 외면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저자는 초예민자는 초예민자끼리, 혹은 아주 둔한 사람과 함께 하길 권한다. 초예민자끼리라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가 가능할 것이며, 아주 둔한 사람이라면 초예민자가 눈치를 덜 수 있는 편안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결과적 측면에서 예민함을 드러내는 사람과 깊게 사귀는 것이 힘들다. 나는 그들의 섬세함을 따라갈 센스가 부족하다. 더불어 그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갈등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눈치를 보게 되고, 여기에 감정의 복사가 더해져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는 있지만 공감이 어렵다.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더라도, 입장의 차이에 따라 불쾌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나 또한 상대방의 의미 없는 행동이나 표현에 추측성 의미를 부여하며 불편함을 겪곤 했으므로. 그러나 기질의 차이란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HSP는 부정적 감정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감정 또한 강력하게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특히나 초예민자라면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했을 때 인생이 보다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주변에 부정적인 감각만이 넘쳐난다면 회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이럴 경우 회피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에너지를 회복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여기면 좋겠다. 아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공감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내면에 불어닥친 감각의 소용돌이를 고요히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고요 속의 외침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