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제 하나 바꿨을 뿐인데

by 고봉만


15여 년 만에 온 가족이 대형 통신사로부터 독립을 했다. 알뜰 요금제로 갈아탄 것. 오랜 기간 동안 이 계약 관계를 끈끈하게 고착시킨 원인은 단 하나. 바로 가족 결합. 그 마법 같은 단어 하나가 우리 네 식구를 변화와 혁신으로부터 가로막고 있었다.


최근 우리 가족이 묶여있던 대형 통신사에서 「소액결제 및 침해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취지로 특정 기간 내에 해지 시 위약금을 면제해 주는 고객 보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상 유지만으로도 특별히 큰 문제가 없었던 나는 남동생이 앞선 혜택을 언급해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남자는 이번 위약금 면제 찬스를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 '할 거야, 말 거야.' 때마침 챗GPT와 함께 알뜰 요금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가던 중에 카톡이 왔다. 나는 내가 느긋하게 찾아본 바를 동생에게 전달했다. '알뜰 요금제도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아.', '6개월이 지나면 할인 혜택이 사라져서.' 지금 내 요금제와 묶여 저렴하게 이용 중이던 각종 부가서비스를 포기하기도 싫었다. 그러자 그는 여상스럽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원래 6개월마다 갈아타야 하는 거임.'


생각하지 않는다(결론과는 무관한 짤입니다) / 출처:트위터X


올 스탑.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알고 있었으면 나한테 미리 언질을 해줬어야지. 나는 고민을 멈췄다. 내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 수고스러운 과정에 대한 책임이 전부 내 몫이 되기 때문이다. 아우야. 나는 낡고 지쳐서 자신이 없다. 부모님이 내 대답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그래서 빠른 손절을 선택했다. '엄빠 요금제까지 관리 가능? 난 불가능. 네가 한다면 나도 바꾸고.' 본인이 원하는 일이니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의 노력으로 나의 마음을 돌려봐라. 그렇게 응원 아닌 응원의 말을 들은 그는 요금제를 직접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휴대전화 사용 패턴을 분석해 다행히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적절한 요금제들을 찾아냈다. 결합 상품을 해지하면서 TV 요금제와 셋톱박스도 변경해야만 했고, 그 참에 인터넷 선도 전체적으로 점검했다. 나는 그를 믿고 참견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가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그저 고생했다는 말을 한마디 건넸다. 사실 아직까지도 기존의 것과 새로운 통신 서비스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6개월간 요금이 저렴해진 정도? 저마다 장단점이라는 것이 있는 거겠지.


어쨌든. 덕분에 결합 상품으로 이용 중이었던 음악 어플을 바꿔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골치가 아팠다. 지난 몇 년간 정성스럽게 쌓아온 플레이리스트를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저장해 놓은 곡은 모두 천 곡이 넘는다). 그러나 기존 어플을 비싼 요금제와 함께 계속 이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하릴없이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 웹상을 부랑자처럼 떠돌았다. 유튜브 뮤직, 애플 뮤직, 멜론 등. 이용자수가 많은 구독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았으나 무엇 하나 마음에 와닿지 않던 그때, 나는 네이버 멤버십 구독 혜택에 스포티파이 할인권이 추가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옳다구나. 이거다. 나도 요즘 거(?) 한번 써보자.

그리곤 결론적으로 이 신문물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스포티파이는 프리미엄 요금제의 경우 첫 한 달은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역시나 모든 것이 낯설었다. 겨우 어플 하나 바꾸는 건데,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새 친구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음악 어플은 내 일상에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출퇴근길은 물론, 집에서나 밖에서나 수시로 음악을 틀어놓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길이 든 습관이다. 그러나 첫 며칠은 새로운 UI·UX와 씨름을 하느라 끙끙대야만 했다. 이건 왜 안돼? 이런 기능은 없나? 꼭 이렇게 해야만 해? 기성의 파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천 곡을 일일이 검색하고 저장하던 나는 결국 뒷일은 모두 미래의 나에게 전가해 버린 채 중도 포기하고 만다. 그 대신 스포티파이에서 내 취향을 토대로 생성해 준 큐레이션 리스트를 통해 라디오처럼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아아. 그리고 그것은 아주 성공적인 시도였다.


그들은 나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제공했고, 덕분에 취향에 맞는 음악이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더... 더 듣고 싶어. 신곡을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새로운 곡은 그것대로 신선하고, 낯익은 곡은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흥미롭고. 이어폰을 뽑고 싶지 않았다. 나의 청취 스타일을 분석하여 기존에 좋아했던 음악까지 리스트업 해주는 분석력에 감탄했다. 그 밖에도 새로운 기능들이 많았으나, 은둔형 외톨이에게 이 이상 필요한 기능을 아직 발견하진 못했다.


물론 알고리즘 서비스는 이미 많은 플랫폼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플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내가 조직한 플레이리스트 밖으로 벗어난 것이 뜻밖에도 감격스러웠다. 귀에 익숙한 맛만 좇던 내 좁은 식탁의 메뉴가 확장된 것이. 귀찮음이 앞서 그동안 새로운 문화를 많이 외면하고 지나쳤다. 밀레니얼 세대로 태어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어지는 혁신적인 변화를 모두 경험해 왔건만. 내 안에는 나도 모르는 기묘한 고집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이 성행할 때도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죄다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서비스에 맛들려 문자메시지를 잊어갈 즈음 2G 폰과 작별했다. 두바이 쫀득 쿠키, 일명 두쫀쿠도. 유행의 물살이 거세게 일자 거부감이 들어 도리어 멀리했다. 그러나 한 입 먹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 맛있는걸 왜 안먹었어...? 그러나 여전히 세월이 흐를수록 빈 방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여유는 점점 허름해지는데, 장기 입주자들만을 지키느라 방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달까. 눈 감았다 뜨면 코 베어갈 정도로 유행과 문화가 빠르게 변하는 이 시점에 더더욱. 옛것들로 가득 찬 마음의 재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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