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억 년 지구의 눈 깜빡임 속에서

by 고봉만


"나 보고 싶은 거 생겼어."


오랜만에 리모컨 주도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식탁 의자에 앉아 넷플릭스를 켰다. '뭐 재미있는 거 있어?' 엄마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한 채로 나에게 물었다. '공룡 다큐멘터리 볼 거야.' 단 한 마디로 호객 행위에 성공했고, 어느새 거실의 관람객은 둘로 늘어났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기나긴 시간여행이 시작되었다.


공룡을 주제로 다룬 이 다큐멘터리의 흐름은 트라이아스기, 약 2억 3천만 년 전부터 시작된다. 북극과 남극이 이어져있던 판게아 초대륙, 고대 파충류가 지구 생태계를 지배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도마뱀-이를테면 코모도왕도마뱀 같은 외형에 알을 낳아 번식했으며, 토끼만큼 작기도, 코끼리만큼 커다랗기도 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당시 공룡들은 고대 파충류의 텃새를 쉽게 이겨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수천 만 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지구의 변화는 공룡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 보다 더 영리하고 적응력이 좋았던 개체들이 생존의 키를 쥐게 된 것이다.


공룡은 파충류와 달리 두 발로 걸었다. 그 덕에 앞발의 사용이 자유로웠고, 보다 더 민첩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몸집을 키우거나 또는 아주 작게 줄이고, 하늘을 날거나 바닷속을 헤엄치며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알맞게 진화해 나갔고 그 신비로운 변화 덕분에 쥐라기를 지나 백악기를 맞으며 번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황금기를 맞았던 공룡의 시대도 6,600만 년 전, 피할 수 없는 대재앙과 함께 몰락하고 만다. 그것은 바로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이다. 그 충격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10억 개가 동시에 터진 것과 맞먹는 위력을 가졌다고 추측한다. 이 흉악한 재앙으로 인해 공룡들의 낙원이었던 푸른 숲과 바다는 순식간에 지옥 같은 불길에 휩싸인다.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며 지구의 변화무쌍한 변덕에도 번영에 성공했던 공룡들조차도, 1억 6천만 년의 기나긴 역사를 끝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유기체의 진화는 끝내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우리는 그 개체를 '새'라고 부른다.


현실감 넘치는 시각 효과와 영화 같은 연출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였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과몰입하면서 시청했다. 말 그대로 공룡을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 같았다. 알고 보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인 걸까. 다큐멘터리를 감상한 후 AI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생략된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기도 했다. 머나먼 과거로, 과거로, 과거로. 최초로 직립 보행을 한 종이 등장한 시기는 대략 600만~700만 년 전. 그리고 본격적인 호모 종이 등장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200만~300만 년 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은 30만 년 전, 농경의 시작으로 치면 겨우 1만 년 전, 기록된 역사로 따지면 겨우 5천 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1억 6천만 년이라는 공룡의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인간들은 두 발로 걷는 것을 시작으로 손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냈고,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뇌를 발달시켰다. 사실 인간들의 신체 조건은 야생에서 홀로 살아남기에는 지극히 취약했다. 그래서 인간은 협력이라는 방식으로 집단을 형성해 생존해 왔고, 그 결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딛고 최상위 포식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태양계가 형성되고 지구가 탄생한 것은 약 46억 년 전이라고 한다. 이 기나긴 우주의 시간표 위에서 인류의 기록은 겨우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지워버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혁신의 세계 위에 서있다. 개발이 문화를 선도하고, 때로는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 지구의 시각에선 눈 깜빡임조차 되지 않을 이 찰나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위대한 지구의 역사 가운데 가차 없이 흙먼지로 사라지게 될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좋을지.


사실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탐구는 결말에 도달할 수가 없다. 시작도 마찬가지. 그러나 눈앞의 갈등과 스트레스 속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정답 없는 질문이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곤 한다. 전쟁과 사회적 이슈, 하물며 내 주변을 에워싼 모든 소음이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표대로 생존을 위한 고민을 멈추지 못하는 이 현실에,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인생이란 도대체... 뭘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지. 글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도대체 무엇을 동력으로 삼고 나아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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