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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부신세실 Jun 04. 2024

도대체 나의 썬캡은 어디로 갔을까?

그럴 수 있어 vs 그러면 안 돼

 일주일에 삼일 수영장에서 아쿠아운동울 한다. 퇴근 후 집에 와 점심을 해먹고 잠시 다리 마사지를 하며 카톡을 확인하고 나면 수영장 갈 시간이다.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들고 부지런히 가도 늘 빠듯하게 도착한다. 

수영장에 일찍 오신 분들은 홀수 번호 열쇠를 배부 받고, 늦게 도착하면 짝수 번호를 받는다. 탈의장이 짝수이면 아래 칸이라 허리를 수그려야하고 어르신들이 바닥에 앉아서 옷을 벗고 입고 혼잡하고 불편해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늦게 온 탓을 해야지. 

그런데 오래 다니신 어르신들은 탈의장도 선호하는 번호대의 열쇠를 받으려고 한다. 허리가 아파서 절대 앉았다 일어섰다 할 수 없다며 탈의장 번호를 홀수로 달라는 분들이 있다.  

가끔은 엉뚱한 분도 있다. 하루는 샤워를 마치고 탈의장에 나와 옷을 입는데 한 회원이 들어와 내 옷장 두 칸 앞의 옷장을 열고는“누가 내 장에 옷을 벗어 놓았네.”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분이 남의 옷장을 열은 것 같아 지켜보았다. 

그분은 다시 옷장 문을 닫고 열쇠를 빼더니 “내 번호 맞는데.”하고는 다시 확인을 한다.

이내“어머 내 정신 좀 봐 옷장을 잠그지도 않고 헬스를 하고 왔네.”라며 계면쩍은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이렇게 정신이 없네요.” 하며 내게 싱긋 웃어 보인다. 나는 “그럴 수 있어요”하고는 같이 피식 웃었다. 

또 한 번은 어떤 분이 열쇠의 86번을 보고 옷장이 어느 쪽인지 찾아서, 알려드렸더니 열쇠가 안 들어간다며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열쇠를 보더니 “98 번인데요 이쪽입니다.”하며 친절히 안내해 준다. 그렇다. 열쇠의 번호를 거꾸로 본 것이다.

‘뭐야, 번호는 거꾸로 볼 수 있다지만 자기가 사용했던 옷장의 위치를 못 찾다니!’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하기 에는 그리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은데 건망증인가? 


  그런데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옷장이 제일 끝이었기에 아무생각 없이 열쇠를 끼우려는데 그냥 열린다. ‘뭐지? 내 옷이 아닌데.’누가 볼 새라 얼른 옷장 문을 닫고 열쇠 번호를 확인하니 다음 줄 끝이었다. 

‘이상하다. 어떻게 옷장 문이 열렸을까?’방금 전의 일을 되돌려 보았다. ‘열쇠를 깊숙이 넣고 돌려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거지?’아마 그 옷장 사용자가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열쇠를 깊숙이 넣지 않고 살짝 끼운 상태에서 문을 잡아당겨도 그냥 열린 것 같다. 도둑질하다 들킨 듯 뒤통수가 뜨거워 옷을 부지런히 입고 빨리 나왔다. 옷장을 헷갈리거나 번호를 잘 못 보는 것이 남 일이 아니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내게는 해당 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젠 더 이상‘남 이야기가 아니다.’아차 싶다. 끼고 있던 안경을 어디에 벗어 두었는지 찾고 있으면 남편이 나의 동선을 점검해 보라면서 서재 방 책꽂이에 있던 안경을 찾아준다. 

나는 멋쩍게“내가 그 방에 갈 때 안경을 끼고 있었나?”하고는 얼버무린다. 

그뿐인가. 핸드폰을 찾아 헤맬 때도 있다. 남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소리가 없다. 진동이나 무음으로 해놓고 풀지 않았으니 찾기가 정말 힘들다. 파우치에 갖고 다니던 립스틱 솔은 자동차에서 찾아오고, 자동차 열쇠는 며칠 째 주머니에서 잠자고.

‘그럴 수 있다’고 넘기기에는 나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다.

오랜 시간 나는 그럴 순 없어! 완벽하게!’를 붙들고 살았다. ‘그럴 수도 있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여겼다. 타인의 행동이 내 기준에 차지 않을 때는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 질을 하고, 뭐든 제자리에 놓아두라고 강조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꼴을 못 보고 무엇이든 내가 마무리해야 안심이 되는 강박적이고 완벽을 추종하고 살아왔다. 그동안  가족들이 나로 인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성격을 고치려고 무던히 노력해서 조금씩 느슨해지니, 오히려 이제는 2% 부족해 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허당이 된 것 같아 속상한 적도 있었다. 

오히려 너무 느슨해 진걸까? 아니면 나이 들어서 인가? 기억은 깜박하고, 행동은 느려졌다. 남편과 자녀들은 내게 말한다. “그럴 수 있다”고.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 혹시 치매 초기현상?  걱정이 되어 검사를 해보았다. 검사 결과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도 찾지 못한 썬캡은 어디에 있을까? 미장원에 쓰고 갔다가 벗어 놓고 왔을까? 되돌아 가보았지만 없고, 직장에 쓰고 갔다 그냥 퇴근했나 싶어 다음날 찾아봐도 없고, 며칠째 찾아도 없는 썬캡, ‘그럴 수 있어. 잃어버릴 수도 있어.’하며 넘겨 버려도 되는 걸까? 

‘그럴 수 있어.’를 되뇌며, 생각의 여유를 갖으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지만, 

그런데, 그렇다 해도

“도대체 나의 썬캡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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