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부신세실 Jun 04. 2024

오늘 나는 완벽한‘미스아이보리’

또 다른 나를 찾아서

지난해 10월 마지막 날에 낭독극 공연을 했다.

이름하여 ‘액시’ (액터브시니어).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공연중심 연극보다는 과정중심 연극을 통해 노년의 정서, 신체적 변화를 극복하고 행복한 성취감으로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영위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공연 팀이다,


 제목은 <끝내주는 극작가>(원작 The Pot Boiler 앨리스게르스텐버드 작/ 이정례 번역 연출 감독)

 낭독에 약간의 액션을 가미한 새로운 버전의 세미연극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자만심이 강한 극작가가 자신이 쓴 연극이 흥행 되서 대박나기를 바라며 공연 리허설을 하는 과정 중, 무리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장면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나는 순수하고 지적인 미스 아이보리’라는 여주인공을 맡았다.


 낭독극이기는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낭독하면서 감정이 몰입 되었다. 내가 정말 아이보리가된 듯 표정연기를 더한 대사에 충실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독한 근시와 노안으로 글자가 춤을 추고, 행이 헷갈리기도 해서 한 두 군데 조사를 빼먹거나 덧붙이기도 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이 연결 되었다. 틀린 걸 알았을 때는 등줄기가 후끈해오기도 했다.  대사 읽기를 많이 연습해서 외워진 내용이라 다행이었지만, 역시 연극은 어렵다. 또 아무리 아기씨처럼 금발의 가발을 쓰고 흰 드레스와 깃털의 부채를 들었다 해도 다초점 안경을 벗을 수 없고 목 줄기에 주름을 감출 수 없으니

극중 아이보리보다 노처녀처럼 보여서 조금은 멋쩍었다.


  연기에 몰입 하던 중, 아련히 객석 멀찍이 뒷좌석에서 연극을 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참

신하고 순수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고 살아온 내가 주인공인 아이보리를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예쁘지도 영악하지도 않았지만 눈치 빠르고 분위기 파악 잘하여 내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늘 저울질하며 참하고 성실하였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나에게 중매를 많이 권유했고, 대시하는 남자들도 많았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던 상황이라, 연애는 물론 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수녀님이 된다거나 신앙이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결혼을 고려해볼 생각은 있었다. 

주인공 아이보리가 좋아하는 사람‘룰러’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 ‘인큐엘’에게결혼을 승낙하는 장면에서 나의 결혼이 떠올랐다.

내 맘에 차지 않았지만 신앙이 같고 나의 사정을 잘 알았기에 도피성 결혼을 결심한 것이 생각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남동생을 위해 학업도 포기하고 생활비를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은 인사를 온 지금의 남편에게 우리 집안 형편이 필 때 까지 내가 생활비를 보태야 한다고 삼년을 기다리라했다.  

연극에 주인공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애라는 것은 나와는 먼 이야기 같았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한 남자가 나의 처지에서 구출해준 고마운 현재의 남편이었다.

약혼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하여 어려운 조건에서 적금을 들고 일 년을 모아서 결혼을 했다. 누구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어느 한쪽을 택해야하는 결심이 필요하고 아프고 힘든 고통을 참아야하는 숭고함이 있다.   

연극의 중인공이 아버지의 사업을 위한 선택을 했었다면 나는 동생들을 위한 희생에서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고 여동생의 중고등학교 등록금을 책임져야 했다. 

나의 젊은 이십대가 되살아나는 주인공역을 하면서 잠깐이지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가장 연장자인 내가 제일 어린 역에 캐스팅 되어, 처음에는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한 나 아니면 다른 배우는 어울리지 않았을 거라고 소위‘자뻑’해본 배역이었다. 역시 감독님의 캐스팅은 안목이 있으셨다.

내 인생에 주인공으로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를 찾은 연극 공연이었다.

내 나이 칠십 남은 생의 시간에 ‘액시’를 통해 더 충실하고 보람되게 노후를 즐겨보련다.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이렇게 글자를 입력하고 드래그하면 메뉴를 더 볼 수 있어요.

작가의 이전글 도대체 나의 썬캡은 어디로 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