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백단
딸이 며칠 전에 작은 손녀 정기검진으로 병원에 다녀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작은 손녀는 같은 또래 아이들의 평균치보다 하위권이라 딸은 고민하며 인터넷이나,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들에게 정보를 얻어 정확한 진단을 위해 유명하다는 대학병원 소아과에서 성장 클리닉센터에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았었다. 검사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애 죽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단다. 24시간을 굶기고 잠도 자지 못하게 하면서 링거로 약을 투여해서 몸 한 바퀴를 돌게 하고 혈액을 체취 해 나온 것을 가지고 검사를 했나보다. 핸드폰으로 보내준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나도 마음이 저리고 불쌍했다. 지켜보는 딸은 더 했을 것이다. 금식으로 배가 고픈 손녀는
“ 배고파. 배고프다고”하며 처음에는 악을 쓰다가 지쳐서 소리가 작아지고 잠이 오는가 보다. 지켜보던 딸은 애를 깨우며 “잠자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잠자면 안돼”하면서 아이를 쓰다듬고 톡톡 건드린다.
“졸립다고, 자고 싶어!” “안 돼! 참아, 검사 다 끝나면 주스 줄게”반쯤 감기던 눈으로 힘없이“진짜.” “그래, 눈 떠”게슴츠레했던 눈을 뜨려고 애쓰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보는 내내 나는 안절부절했다. 입원 반나절 만에 아이가 반쪽이 된 것 같다.
이렇게 검사를 받은 결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정도의 수치가 나와 성장 클리닉 치료를 위해 매일 주사를 맞고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한다.
딸은 손녀에게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엄마하고 갈 때처럼 피 뽑을 때 크게 울면서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되고, 학교도 들어갔으니 언니답게 잘하고 오면 선물을 준비해 줄게’약속을 했나보다.
나에겐 클리닉센터에 가장 가까운 주차장을 캡처해서 핸드폰으로 보내주면서 건물에 들어가면 접수 후 대기하고 있으면 순서대로 피 뽑고, 한층 올라가 진료 받으면 된다고 자세하게 문자를 보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서 만나 손녀를 차에 태우고 가면서 오늘 안 울고 잘 하면 엄마가 무슨 선물 주기로 했는지 물으니“티니핑 시리즈”라며 신나해 한다.
그래도 혹시 너무 울면 할머니 챙피해서 그냥 집에 오겠다고 엄포를 주었다. 손녀는
“ 나, 혼자 집에 못가”
“ 엄마한테 전화하면 되지”
“ 엄마 집에 없거든요. 회의하고 있어서 못 와요.”
“ 그래서 할머니하고 가는 거잖아요”
말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조리있게 너무 잘한다.
“안내해주시는 분께 부탁해서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지,”
“ 안돼, 아무에게나 집 주소 가르쳐 주면 안 된다고 엄마가 말했거든요.”
“ 그러면 경찰 아저씨 불러 달라고 해서 경찰차 타고 오면 되찮아”
“ 그냥 할머니하고 가고 싶어, 조금만 울고 참을게요.”
“ 그래 너 매일 주사 맞지? 요즘도 아파?”
“ 아니, 처음엔 맞을 땐 아팠는데, 지금은 안 아프고 따끔해 ”
“ 그런데 따끔 할 때 움직이면 주사바늘이 휘어지니까 움직이지 말고 팔에 힘 빼야해”
“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 주사 다시 꽂아야지. 집에서 주사 맞는 것처럼 한 번에 할 수 있겠지? ”
“ 응, 엄마가 주문한 선물 언제 올까? 집에 가면 택배가 왔을까?”
이야기 하는 동안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고 건물로 들어갔다.
소아 클리닉 2층, 담당 교수님께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손녀가 편식이 심해요.”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데 손녀는 눈을 아래로 하며 내 손을 톡 친다. 자기의 잘못을 할머니가 고자질하는 것으로 보였나보다.
“그래도 잘 크고 있어요. 키 1.25cm 컷구요, 몸무게도 별로 늘지 않아서 좋은 예 입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 피 검사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다음번에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수납을 하고 약 처방을 받아 약국으로 갔는데 약이 없단다. 손녀는 그동안 진열된 건강식품 코너에 주스를 가리키며 먹고 싶다고 한다. 자두 주스를 사주었다.
딸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자기가 단골 약국에 가서 구입한다고 그냥 오라한다.
“오늘 피 잘 뽑았어요?”
“으응” 얼른 전화를 끓었다. 본의 아니게 둘러댔다. 손녀에게 물었다 “피를 안 뽑았는데 선물을 받으려면 울지 않고 피 뽑았다고 할까?”
손녀도 망설인다. “엄마가 다 알 텐데 할머니가 잘 말할 수 있어”
“그래, 아주 조금 울었다고 하자”손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주스를 마시고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손녀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한다.
“할머니 피 뽑으면 테이프 붙여주는데 없잖아”
아뿔사, 중요한 증거물이 없구나. 순진한 손녀에게 구정물에 끼었는 기분이다.
이렇게 순진한 손녀에게 선물에 눈이 어두워 거짓말로 포장하게 하려 했으니 부끄럽다.
딸은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바쁘고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또 신경쓰게 해서 미안했다.
딸에게 이실직고하니“이상하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하며
“아이에게 그런 거짓말 시키지 마세요 ”당부한다.
“애가 피 안 뽑으면 선물 못 받는다고 해서 달래 주느라고 그랬어.”
“에구 못 말리는 손녀 바라기 할머니, 이미 선물은 택배 왔어요.”
손녀는 쑥스러운 듯 몸을 비비 꼬다가 제 엄마 품에 폭 안긴다.
이래저래 나는 자칭 나쁜 할머니가 되고 딸에게 손녀만 감싸는 바라직하지 않은 뻔뻔한 에미가 되었다. 눈치가 빤한 애들 편에서 말도 안 되는 하얀 거짓말 하는 나쁜 할머니가 아닌 제 어미에게 야단맞거나 하면 위로해주고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 같은 할머니가 되어 너희들 곁에서 지켜주기 위해 건강 유지 잘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