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9년전 추억
집에서와는 달리 여행지 에서는 항상 일찍 잠이 깬다.
잠자리가 불편해서일지도 여행의 설렘 일지 몰라도.
간단히 과일과 빵을 우유에 찍어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간단히 씻고 숙소를 나와 길을 나섰다. 델리 역으로 향했다. 다음 장소로 떠나기 위해 열차 예약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빠하르간지(이하 빠간)는 활기가 넘친다. 길거리 식당은 어제도 늦게까지 영업을 했음에도 또 일찍 문을 열었다. 만두랑 난을 튀기고 카레를 만들기 위해 야채를 볶고 과일을 짜내고 노숙자는 길거리 개와 함께 아직까지 한밤이다.
역은 걸어서 십 분 정도 먼 거리는 아닌데 친절한 인도인이 다가왔다.
한참을 나의 신상을 물어보더니 갑자기 델리 역이 폐쇄했단다. 다른 대행사를 알려줄 테니 자기가 아는 오토릭샤를 타고 가잔다. 예전이었으면 믿었으려나. 멀쩡하게 생긴 놈이 나에게 사기를 친다. 화는 내지 않는다. 익숙한
델리의 사기꾼 9년 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9년 전 첫 배낭여행으로 인도로 온 나 ㅡ 그날은 지금과는 다른 여행의 시작이었다.
앞에서 언급을 잠깐 했지만 공포의 밤을 보내고 거의 뜬눈으로 하루를 보내고 새벽 일찍 짐을 챙겨 나왔다.
그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아침이 되니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보이고 이왕 온 거 유적지는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인도 와서 처음 펼쳤다. 메트로를 타고 붉은성으로 향했다.
궁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궁을 보고 있는데 어떤 인도인이 다가왔다. 살짝 쫄았는데 자기 아들이랑 같이 사진 찍어도 되냐는 말이었다.
그렇게 한 부자랑 찍고 나니 줄줄이 사진을 요청했다.
내가 어렸을 때 외국인을 만나면 이야기하고 싶고 사진 찍고 싶어 했던 그런 이유랑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갑자기 한국을 돌아가는 건 어리석은 생각일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략 붉은성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국어가 들려왔다.
후다닥 달려갔다. 어느 여성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아녔으면 9년 전에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분을 붙잡고 뜬금없이 어제 이야기부터 겪은 공포 스토리를 이야기했더니 껄껄 웃으며 걱정하지 말고 다시 빠간으로 돌아가자고 하신다. 친구들을 소개해 주시겠다고.
>>>>TMI 2: 수술 이야기에 이어 왜 자꾸 헷갈리게 9년 이야기랑 이번 인도 이야기가 나와서 혼동을 주나 하실지 모르겠지만 9년 전 인도 이야기와 그때 겪은 경험은 나에게 있어서 첫사랑 같은 추억이다.
배낭여행도 처음이었고 이 여행으로 내 삶을 바뀌었고, 많은 경험이 나의 그릇을 넓혔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인도 홀릭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6. 9년 전 추억 2
명희누나의 도움으로 나는 인도 여행을 다시 잘해보기로 했다.
연락을 잘 못하지만 항상 그때를 생각하면 고맙다.
누나는 선생님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뭘 하시나 궁금하다.
누나가 소개해준 두 친구 영수와 진주
영수는 군대를 제대하고 그때 모은 돈으로 인도를 장기간 여행한.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이 친구는 영어를 잘못해 여행을 걱정하는 내게 자신감만 있으면 뭐든 문제없음을 보여준 친구다. 막 예비군이 되어 군인정신으로 3개월 넘게 한국어와 바디랭귀지로 여행을 했단다. 정말 동생이지만 대단해 보였다. 지금도 아주가끔이지만 연락하는데 멋진 청년이 되어 좋은 직장에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잘 지낸다. 오랫동안 못 봤지만 가끔씩 연락해도 전혀 어색함 없이 안부를 물어주는 정말 의리 깊은 동생이다.
두 번째 소개받은 친구는 진주다.
첫인상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꽤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짧은 기간 만났는데도 헤어질 때 엽서까지 써주며 내 여행을 걱정해주던 정 많은 친구였다. 인도를 갔다 와서 몇 번 봤으나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가끔 문자로만 이야기하다 보니 9년이 흐른 지금 아이도 순풍순풍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산다.
명희 누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가 남았고 영수와 진주도 3-4일 뒤에 한국으로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모두
가족처럼 오랜 친구처럼 내가 여행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들과 매일 술자리를 거하게 만들었다.
당시엔 술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걸어서 30분은 가야 술집에서 술을 살 수가 있었는데 그 길이 심심하지 않았음은 두말할 것 없다. 영수는 정말 최고였다.( 보고 있나 둘 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땐 정말 섭섭했다.
아마 인도 여행에서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여행의 시작이 이렇게 즐겁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