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의욕 넘치는 상태로 병원 실습도 돌고, 강연 생활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던 나였다.
그게 얼마 전이었다.
느닷없이 무기력해졌다.
쉬어도 쉰 거 같지 않다.
가득 찼던 에너지가 계속 바닥을 보였다.
충전하려고 해도 충전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따금 한 번씩 숨이 막혔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없으리란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쉬고 싶다.
내가 하던 모든 걸 잠시만 멈추고 싶다.
그래, 도망치자.
지금 늦지 않았어.
1년이라도 좋아.
그냥 내려놓고 잠깐이라도 떠나자.
그게 지금이야.
2018년 1월 초였다. 본과 4학년 시작 직전,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의대를 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와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해나갔다. 제대로 쉴 틈이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한순간이었다. 문제는 급작스럽게 터져 나오고 말았다. 참고 참았던 내 상태가 극심하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깨달았다. 지금이 쉴 타이밍이라는 걸. 그래서 선택하고자 했다. 휴학이란 길을. 최소 1년 동안은 가만히 쉬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본과 3학년 말에 신청했던, 그러나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해외 실습을 갈 수 있게 된 거다.
모교와 자매결연이 된 프랑스의 ‘릴’ 대학교 병원 실습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무려 한 달 동안.
그때 결정했다.
그래, 휴학은 나중에라도 선택할 수 있다.
단 한 달이라도, 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저곳으로 가보자.
유럽으로.
치이고 치여서 닳아버린 나 자신을 이끌고 일단 해보자.
그 이후에 결정하자.
잠시 멈출지. 아니면 계속 나아갈지.
그렇게, 나의 유럽 여행기는 결정되었다.
여행은 삶이 부과하는 문제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행은 회피를 통해 인생의 난제들과 맞설 에너지를 채우는 순간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 66, 67, 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