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에서 한참 유행하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술꾼 도시 여자들]이다. 보지 않은 분들 위해 한 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늘 먹을 술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하루 끝의 술 한 잔이 인생의 신념인
세 여자의 일상과 과거를 코믹하게 그려낸 본격 기승전술 드라마”
방송국 예능작가 안소희 (배우 이선빈), 종이접기 유튜브 운영하는 강지구 (배우 정은지), 운동 강사 한지연 (배우 한선화)가 그려내는 이 드라마는, 술에 취하면 남자의 불쌍한 모습에 사랑에 빠지거나, 술만 먹으면 개집에서 자거나, 술을 잘 마시나 백치미의 매력으로 남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세 사람의 이야기다. 너무나도 다르다. 그렇기에 친구로서 지내는 세 여자의 에피소드를 담아내는 이 드라마, 꽤 볼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다시 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나 역시 술꾼 도시 ‘남자’가 아닐까? 술 먹다가 필름 끊겨서 종점까지 자기도 했다. 때론 지하철을 탔는데 눈뜨니 지하철 앞 대기 의자에서 자고 있던 시절도 있었고. 술 먹다가 눈 뜨니 기숙사인데, 수업이 시작한 지 2시간이 된 적도……. 걱정된 동기들이 걸어준 수많은 전화 덕분에, 오히려 휴대폰이 꺼져서 시간이 지난 걸 전혀 몰랐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언젠가는 술 먹다가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제정신을 차리니 교실이다? 그리고 오전 수업이 끝났다? 내가 어떻게 교실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무서운 상황도 있더라.
앞의 이야기는 20대의 이야기다. 요새는 그렇게 술도 못 먹는다. 마실 자신도 없고, 그렇게 마셔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고.
나의 술은 정말 딱 20살 1월이었다. 대학교 진학 직전, 삼촌과 아버지께 배웠다. 고등학교 때는 단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20대 초반, 막걸리 2통과 소주 1병을 섞어서 마시는, 소위 이통일반을 그렇게 좋아했다. 파전과 함께 먹는 걸 즐겼다. 어느 순간부턴 맥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 끝나고 난 뒤에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가 그렇게 행복하더라. 그게 20대 중반이다. 그 시점이었나? 기억이 애매한데, 과일소주가 생맥주를 좋아하던 시기와 겹쳤던 거 같다. 순하리가 기억난다. 순하리가 맛있다고 엄청나게 먹다가 머리가 깨지는 불상사를 겪어보기도 했는데, 그 경험과 함께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주의 맛도 좀 알게 되었다. 20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한 달을 보냈다. 그때 한국의 소주 가격과 같은 와인을 매일 마셨다. 와인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가격은 괜찮은 게 아니지만. 그러나 내 진짜 취향은 시원한 맥주, 그리고 하이볼 딱 이 두 개더라. 물론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위스키도 먹고.
하지만 술꾼 도시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이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술꾼이다. 술에 진심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고, 그러다 책 제목에서부터 강호의 고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 책 제목이 바로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이다.
여러분도 느껴지지 않는가?
이름에서부터 고수의 향기가 풀풀 난다.
이 책엔 와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본적으론 와인을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이 나온다.
1) 일정량을 잔에 따른 후 브리딩을 진행하면서 15-20분 단위로 맛과 향의 변화를 점검한다. 어느 순간 마시기 좋게 부드러워졌다 싶으면 그때부터 안주를 곁들여 ‘천천히’ 마시면 된다. ‘천천히’를 강조한 이유는 마시는 과정에서도 풍미가 다채롭게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와인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2) 와인은 오래 묵힌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대부분 품질이 저하된다. 숙성잠재력이 없기 때문이다. 숙성 잠재력이 뛰어난 고급 와인도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면 와인이 갈색으로 변하고 맛과 향이 쇠락한다.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29-31쪽
- 브리딩 : 와인이 공기와 만나 숨을 쉰다는 의미. 와인을 일정량 잔에 따라내어 와인이 공기와 만나는 지점을 병목 아래 어깨 부분까지 낮출 것이다. 그러면 병 속에 접촉면이 넓어지며 산화 속도가 빨라진다. 잔에 담긴 와인도 공기와의 접촉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산화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이런 상태로 두 시간 정도면 거친 타닌이 부드러워지면서 풍미가 개선됨을 알 수 있다.
- 산화 : 브리딩을 하면 와인이 마시기 좋게 부드러워진다고 해서 마냥 방치하면 지나치게산화가 진행되어 오히려 풍미가 꺾이고 심지어 식초가 되기도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연말연시에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최강 와인 TOP 5를 소개하기도 하는가 하면, 2만 원대 최강 와인 TOP 5를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저자의 기준이다.
그리고 와인 매장에서 초짜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질문들 2가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1) 장터 할인가로 나온 와인 위주로 추천해주세요.
2) 와인 추천 감사합니다. 잠깐 와인서쳐로 가격을 볼게요.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37-41쪽
여기서 끝나면 고수가 아니다. 와인을 맛있게 먹기 위해, 각 와인과 어울리는 안주를, 저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떤 와인이 과일, 케이크, 초콜릿과 어울리고, 저 와인은 재즈가 어울리기도 하며, 또 어떤 건 매운 소스의 아시아 음식이나 간이 강한 중식, 베트남식, 한식과 어울린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걸 직접 겪어보고 알려주니 어느 정도 믿음이 가지 않는가?
가을에 어울리는 와인, 비가 올 때 먹으면 좋은 와인을 소개하기도 하는 등, 이 책을 읽으면서 와인에 관심이 절로 가더라. 나는 이 책을 쓴 저자를 정말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돈 받고 홍보하는 게 아니다. 정말 이 책이 매력 있어서, 소개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읽다 보면, 이 책의 저자처럼 와인을 따라서 마셔보고 싶다. 저자만의 방식을 따라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지 찾아가고 싶은 욕망이 들게 한다.
읽기 전부터 알았다.
책 제목에서부터 이 사람은 은둔한 강호의 고수라는 사실을.
읽으면서 알았다.
드라마 [술집 도시 여자들]과는 결이 다른 고수라는 걸.
그녀들은 강호에서 이름난 고수들이라면,
이 책을 쓴 작가는 이름이 나진 않았지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강호를 나와 제패할 수 있는 이라는 걸.
그만큼 와인에 대해 몹시 진심이다.
그 진심이 얼마인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고.
읽다 보니 와인을 안 먹으면 큰일 날 거 같다.
다음에 참고하게 될 거 같은 이 책, 이 책으로 와인을 알아가면 어떨까?
마무리로 이 책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을 남기고자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책에 나오는 10계명으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대신한다.
이걸 읽으면, 이 저자의 책이 궁금해지리라.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10계명
1. 한국은 가격 거품이 심하니 신중하게 구입하자.
2. 온도에 따른 맛과 향의 차이가 크니 적정온도에서 마시자.
3. 개봉해서 바로 마시지 말고 적절한 시간 브리딩을 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
4. 스월링하고 향기를 충분히 맡은 후 입 안에 잠시 머금어 맛을 음미하자.
5. 와인의 진가를 느끼려면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마시자.
6. 가능하면 전용 잔에 따라 마신다.
7. 장기 숙성이 가능한 중고가 와인 외에는 오래 묵히지 말고 그때그때 마시자.
8. 두루두루 마시며 내 입맛에 맞는 포도품종과 와인을 찾자.
9. 생산지와 빈티지에 따른 품질의 차이를 이해하자.
10. 서늘한 곳에서 코르크가 마르지 않도록 눕혀서 보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