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재학 때,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던 수업이 있다. 제목만 들어도 감이 확 오리라.
수강 신청하기 너무 어려운 과목들이다. 나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던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 그대로 ‘과학’이었고, ‘철학’이었다. 20대 초가 원했던 내용은 성관계에 대한 적나라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궁금했으니까.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종의 성교육, 즉 성관계에 대한 조언이었으리라.
예능 [마녀사냥]에선 이런 단어를 언급한다. 선섹후사. 먼저 섹스하고 그 후에 사귄다. 그게 요새 트렌드란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긴 어렵다. 성관계를 가지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하다 하다 먼저 해보고 만나는구나 싶더라. 존중한다. 속궁합을 확인하고 만나야 한다는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으나, 나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대학생이었던 시절에서 지금까지, 겨우 12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이 바뀐 듯하다. 매우 진보적인 성문화는 다소 충격적이었고, 성에 대한 교육이 그런 변화를 잘 따라잡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0대 시절의 성교육 수준은 딱 이렇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어떨까요?” 이 정도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지만, 그땐 딱 그랬다. 콘돔을 써야 하는 이유 등 필요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이는 대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 와중에 접하게 된 책이 바로 배정원 교수님의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이다.
더도 말고 목차를 보여드리겠다.
와우. 이거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제대로 된 성교육이 아닐까?
첫 관계 및 스킨십에 대한 조언
남자와 여자의 성기에 대한 진실
안전한 섹스를 위해 갖춰야 할 마음가짐
피임법, 성병에 대한 자세한 정보 제공
읽으면서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여겨졌던 내용들이다.
그중에서도 섹스 자체에 대해선 좀 더 진보적이면서도, 동시에 저출산으로 문제가 되는 현 세태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이 와닿았다.
사랑과 섹스가 없어진다는 것은 저출산의 문제 이전에 누군가의 존재를 깊이 받아들이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오래 견디고, 연민하는 경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휴머니티’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건 문명의 성취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이다.
무작정 운명의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지 말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안정이 생기면 사람을 찾겠노라고 미루지도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은 힘들어도 같이 가야 하는 게 있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다. 사랑도 행복도 종합선물세트처럼 한 상자에 넣어서 완벽하게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요기를 내어 말을 걸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가라. 요즘은 취미가 맞는 사람들끼리 소동아리 모임을 많이 하니 그런 모임에 들어가 함께 취미를 나누다 보면 가치관과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도 없이 성공할 수 없고, 실패가 쌓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하면 용기를 내어 말을 걸고, 솔직하고 정중하게 마음을 전하자. 그리고 짝이 있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하지 말고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하자. 애정을 주고 돌보고 뜨겁게 사랑하자.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 - 363, 364쪽 -
남의 이야기가 아니더라.
이게 나의 이야기고, 우리의 현실이다.
친한 여 후배와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안전하게 좋은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이야기를 왜 나누는 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피하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살아가면서 중요한 이야기고, 이걸 잘 챙겨야 좋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라 나는 믿는다.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을 읽어보길 권하며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책 광고를 위한 지원을 받거나 이런 건 전혀 없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내용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때, 정말 아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좋겠다. 나도 그러고자 한다.
우리는 날 때부터 성적인 존재이다. 인간이 사랑을 원하고, 번성하고자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자 욕구이다. 때문에 숨기고, 말 못하게 하고, 저급하게 취급하면 곰팡이처럼 썩어 번성하게 된다. 금기를 어기려는 본능을 자극하는 가장 1순위가 성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성담론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여기저시서 펼쳐지길 소망한다.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 - 32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