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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13. 2020

고요속의 나 홀로 외침

 여러분, 혹시 [신서유기]라는 예능을 아십니까? [신서유기]는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송민호, 피오, 규현 등이 나오는 예능입니다. 출연진 모두 자신만의 매력으로 예능을 좀 더 재밌게 만들죠. 다양한 여행지에서 진행하는 미션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자주 만들어지기에 늘 웃음의 포인트가 달라지는 예능입니다. 지루할 틈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예능이라, 한 번 쯤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예능 [신서유기]에서 웃음을 많이 유발한 미션이 다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요 속의 외침’입니다. 스피드 퀴즈처럼 설명을 통해서 맞추는 게임이지만, 스피드 퀴즈와는 조금 다릅니다. 출제자와 맞추는 사람 모두 큰 소리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낍니다. 아무리 대화해도 음성 자체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죠. 그래서 출제자의 입모양을 보고, 답을 알아내야 하는 나름 고난이도(?) 게임입니다. 

 ‘고요 속의 외침’의 명장면을 만들어 낸 출연진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송민호와 피오입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라, 예능 속에서도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요 속의 외침’ 게임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죠. 

 시작은 좋았습니다. 분명히 입모양은 확실하게 표현을 해요. 그렇지만 입모양으로 유추하는 답들이 거의 다 틀렸습니다. 심지어 엉뚱해요. 이 광경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은 다 빵 터져서 웃고 있지만, 게임을 진행하는 당사자들은 점점 표정이 심각해집니다. 소통이 안 되는 나머지, 방송이라는 것도 잊은 채(?) 답답함과 짜증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그 명장면을 본방송으로 목격한 저는, 그날 밤 너무 웃어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글로 표현이 다 안 되네요. 직접 해당 영상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신서유기 6

 상당한 인기 덕분에, 많은 예능에서도 따라 하고 있는 ‘고요 속의 외침’! 그런데 ‘고요 속의 외침’은 예능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의사인 저 역시 ‘고요 속의 외침’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직접 겪고 나니, 예능처럼 마냥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놈이네!

     

 첫 번째 사례입니다. 한 할머니와의 대화입니다.      


나 :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A : A야.
나 : 오늘 어떤 것 때문에 오셨어요?
A : 그걸 왜 몰라? 
나 : 네?
A : 아니, 왜 모르냐고!!
나 : 어...... 제가 어떻게 알까요?
A : 나는 평소에 혈당검사 받고 그 후 물리치료를 해. 그런데 그걸 몰라?
나 : 어머니, 그날마다 다른 목적 때문에 오실 수도 있잖아요. 감기 때문에, 복통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 때문에 오신 것 일수도 있잖아요. 오신 이유에 따라서 제가 어머니와 대화하는 방향이 달라지니, 매번 어떤 것 때문에 오셨는지 여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A : 무슨 소리야?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그리고 문을 꽝 닫고 나가셨죠. 다음 중 제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은 걸까요? 저는 아직도 제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는데?     


 다음 사례는 감기 때문에 보건소 방문하신 할아버지였습니다. 감기는 증상이 다양합니다.  그 증상에 맞춰 약을 처방해야 하고요. 그래서 당연히 증상들을 여쭤봐야 했습니다.      


나 : 아버님, 많이 기다리셨죠? 감기라고 하셨는데, 혹시 콧물 있나요? 
B : 몰라. 
나 : 가래는 혹시 있나요? 
B : 몰라.
나 : 그러면 기침은 있어요? 
B :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답이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한 마디 했죠. “아버님! 아버님이 모르시면, 저도 몰라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밥 몇 시에 드셨어요!     


 이번에는 당뇨 환자 분이 보건소에 오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당뇨는 경과관찰을 위해서 매번 혈당을 체크하거나, 세 달에 한 번씩 당화혈색소 측정을 해야 합니다. 특히 혈당을 측정하기 전에 공복 상태인지, 아니면 식사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난 상태로 보건소에 방문하셨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질문했습니다.     


나 : 어머니, 밥 몇 시에 드셨어요?
C : 오늘 약 그대로 처방해준다고?
나 : (좀 더 크게) 어머니, 밥 몇 시에 드셨어요?
C : 오늘 약 더 많이 준다고?
나 : (더 크게) 어머니 밥!!!! 몇 시에!!! 드셨!!! 어요!!!”
C : 오늘 약 안준다고?
나 : (가장 큰 목소리로) 어머니, 밥 몇 시에 드셨어요!!!!!!!!!!!!!!!!!!!!!!!!”
C : 아! 7시에 먹었어.


 대답 한 번 얻으려다, 제 목소리는 이미 다 쉬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물리치료 된다고?     


 보건소 물리치료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치료사 선생님의 인원, 치료실의 인원 수용력으로 인해, 하루 이용할 수 있는 인원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물리치료실에서 감당할 수 있는 환자 수를 넘고 나서, 찾아오신 D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멀리서 걸어오셨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D 할머니께 상황을 설명해드렸습니다.     


나 : 어머니, 오늘 물리치료실에 사람이 꽉 차서 이용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다음에 오셔야겠어요.
D : 아, 그래?
나 : 네, 다음에는 오전 일찍 오세요. 그러면 물리치료 이용하실 수 있어요.
D : 알겠어. 그럼 지금 들어가도 된다는 거지?
나 : 네? 어머니, 오늘은 힘들어요. 
D : 저기 가서 기다리는 말이야?
나 : 어머니, 오늘은 집에 가셔야 되요. 진짜 죄송해요.     


 이해하실 때까지 설명했습니다. D 할머니가 이해했다고 판단했을 때, 남은 업무를 위해 진료실로 들어왔죠. 30분 뒤, 우리 D 할머니는 진료실로 들어오셔서 화내셨습니다. “왜 물리치료 안 해주는 거야?”     


고요 속에서 외칠 수밖에 없다. : 나 홀로 외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평소에 대화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대화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혹시 대화의 정의에 대해서 아십니까? [초등국어 개념사전]에서는 대화의 정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의사소통’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간단합니다.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때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살아온 방식, 성격, 컨디션, 감정적 문제, 의사소통 자체의 문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하죠.       

출처, 신서유기 6

 의사와 환자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과 사람의 대화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포기 여부입니다.

 일반적인 사람 간의 대화는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 가족, 연인끼리 대화하다 싸우면 서로 화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사이가 어색해져 대화를 안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죠. 

 하지만 의사는 대화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대화가 환자의 치료에 큰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 속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많은 단서가 숨어있습니다. 언제부터 아팠고, 어디가 아프며, 얼마나 심하며, 증상이 심해지고 괜찮아지는지 때는 각각 언제인지, 지속 여부 등등. 이 이외에도 환자 증상에 따른 질환 감별을 대화를 통해 할 수 있게 됩니다. 질병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만큼, 환자와의 대화는 의사에게 있어 중요합니다.

 대화를 해야 의사와 환자가 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진행된 상황에서 치료를 시작하면, 의사와 환자 각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은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그래서 대화를 잘 이끌어 내고자 노력합니다. 나아가 더 깊은 대화를 통해 환자의 속마음에 있는 이야기까지 파악하죠. 이를 바탕으로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도 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생시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의사가 되고 나니,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 별개로 저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대화가 참 힘들었습니다. 1년 넘게 환자와 대화를 나눠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노련미가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이야기들처럼 환자 분과 ‘고요 속의 외침’ 형태의 대화를 하면 정말 힘듭니다. 답답합니다. 큰 목소리로 말하면 목이 아프지만, 끝나고 나선 기운이 다 빠집니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가고자 노력하다보면, 결국에는 지쳐버리죠. 솔직히 울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출처, 신서유기6

 그때서야 송민호와 피오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요 속의 외침’을 하던 도중에 왜 그렇게 답답함과 짜증을 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남 일이라 생각하고 웃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고요 속의 외침’처럼 진료는 예능이 아닙니다. 소통이 안 된다고 대화 과정을 건너 뛸 수 없습니다. 답을 얻어낼 때까지 대화를 해야 합니다. 대화 안에 답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해야 하므로, 의사인 저는 계속 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고요 속에서 혼자 외치는 한이 있더라도 환자 분과 대화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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