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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15. 2020

자네 장가가보지 않겠나?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에게 정말 소중한 선생님 한 분 계셨습니다. 학생들에게 지식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하셨던 분입니다. 항상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소통하려고 하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셨습니다. 학생들을 위하려는 진솔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의 모습에 전 반했고, 어느덧 친해졌습니다. 그러다 저에게 있어 제2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교무실로 부르셨습니다. 교무실로 찾아가니, 선생님께서 여태껏 보지 못한 진지한 표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표정으로 저를 유심히 보셨습니다. 그 순간 잘못한 게 없는데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이상하다. 최근에 사고 친 거 없는데....... 무슨 일이지?’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던 와중에, 진지하셨던 선생님께서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셨습니다. “혹시 너 내 딸하고 진지하게 만나보지 않을래?”

 그 순간, 멍해졌습니다. 이런 제안을 제가 받을 줄 몰랐습니다. 당황한 저의 표정을 보시곤, 선생님께서 말을 이어가셨죠. “정말 네가 사위여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이야기 해봤어.” 그리고 따님 자랑을 하셨죠.

 이야기를 듣고, 저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대답을 듣고 상당히 아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아하는 친구가 실제로 있었기에 아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그래, 이런 건 확실하게 해야 되는 게 맞아’라고 다독이며 교무실을 나왔습니다. 

 며칠 뒤 저는 좋아하던 친구에게 고백했고, 시원하게 차였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저는 주기적으로 제2의 어머니(?)인 선생님을 자주 찾아뵈었습니다. 사실 저는 선생님의 진지한 제안을 어느 순간 까먹어버렸습니다. 좋아했던 친구에게 차였던 충격으로 인해 그 때 당시의 기억을 통째로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때의 제안이 문뜩 떠오른 겁니다. 떠오르자마자 선생님께 찾아가서 여쭤봤죠. “선생님, 그 때 하셨던 제안 기억하시나요? 혹시 지금도 유효합니까?”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하셨죠. “딸의 의견도 물어봐야하고, 또 이미 기회는 한참 전에 지나갔어.”      


 그 때 깨달았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의 제안을 자신 있게 거절했던 과거의 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딱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자신감 접고, 제안을 받아야 해!”      


생각보다(?) 인기 있는 나 왠지 모르는 자신감이 생기다     


 이렇게 인생에서 중요했던 기회를 한 번 놓쳤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회는 자주 찾아왔습니다. 강연을 통해 알게 된 선생님들이 가끔 물어보시더라고요. “혹시 연애해요? 내 딸하고 만나보지 않을래요?”, “소개시켜줄까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주위에서 자꾸 소개시켜준다고 하고, 심지어 딸과 만나보라고 하다니! ‘생각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에 점점 자신감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Pixabay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 우주로까지 향하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 말입니다. 의사가 된 것 자체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은 아니니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시간이 닿는 한 최대한 환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왕이면 대답도 부드럽게 하려고 했죠. 궁금하신 의학적인 내용도 좀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자주 오는 환자 분들의 근황도 물어보며, 이웃 같은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노력했죠.

 노력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환자분들이 다양하게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젊고 이쁜 의사 선생님,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 너무 귀여워요” 심지어, 저와 상담한 후 다른 직원 분들에게 저를 칭찬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진료실에 있는 선생님, 참 친절하던데요?”     


 칭찬까지 듣고 자신감이 끝도 없이 상승한 저에게 약간의 허언증(?)이 생겼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한 환자 분의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를 보고 웃으시면서 말하셨죠. “와, 잘 생겼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저는 뇌를 통해서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버린 겁니다. “저 잘 생긴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환자 분이 빵 터져서 한참 웃으셨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양심적으로 조금은 생각하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28살에 장가를 가다? : 과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철철 흐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환자 분과 진료를 보던 와중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느닷없이 환자 분이 꺼낸 이야기에 저는 머리에 망치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사 양반, 혹시 장가 가보지 않겠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딱 한 마디 말했습니다. “네?” 심지어 더 충격적인 말을 꺼내셨습니다. “내 딸이랑 중매시켜줄게. 만나봐.”


출처, Pixabay


 왜 충격을 받았냐고요? 장가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서 놀랐던 걸까요? 물론 그 부분에도 어느 정도 놀랐습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환자 분 바로 옆에 따님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는 겁니다. 따님 표정은 딱 이랬습니다. ‘???????’ 정말 예상치도 못한 말에 따님도 머리가 잠시 멈춘 것 같았습니다. 

 진료실에 어색한 분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막고자, 나름 재치 있게 말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그런데 따님 분 의견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따님을 쳐다봤죠. 물론 ‘만나봐요.’라는 대답을 기대한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 상황을 유쾌하게 넘길 수 있는 대답을 해주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저는 진료실에 고요함이 찾아오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저마저도 침울해졌거든요. 환자분이 나가고 나서는 살짝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자신감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단 한 마디 말이 더 중요하다.     


 이번에 제가 조금 편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감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그 여부를 떠나서 저는 좋은 말을 들었다는 거 자체가 더 소중했고 감사했습니다. 

 “예뻐요. 귀여워요. 잘생겼다.”, “소개시켜줄까요?, 딸 한 번 만나볼래요? 장가가보지 않을래?”

 그냥 하신 말이란 것도 압니다. 진심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에 담겨 있는 의미보단, 그런 말을 건네주셨다는 자체가 저에겐 뜻 깊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칭찬을 듣게 되면 그날 그 어떤 힘든 일이 발생하더라도 평소보다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저의 마음은 든든해질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듯 하시는 말이더라도, 좋은 말을 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칭찬 해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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