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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22. 2020

아직까지 많이 두렵습니다

 친구들과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잘 자고 잘 놀아서, 휴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내내 기분이 들떠 있던 상태였습니다. 전날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목이 슬슬 아파왔습니다. 커피 한 잔으로 목을 달래고자 휴게소에 들렸습니다. 

 휴게소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어요. 그 순간, 저 먼 곳에 서 있는 아저씨 한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마주치자마자 아저씨는 급하게 저에게 한 마디 외쳤습니다. “저기요! 여기 와서 심폐소생술 좀 해주세요!” 

출처, Pixabay

 저는 철렁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은 심장 정지 환자에게 주로 실시합니다. 심장 정지라고 하면 아주 위급한 상황입니다. 반드시 지금 살려내야 하는 순간인거죠. 요청 받자마자 저는 바로 뛰어갔습니다. 몸 뿐 만 아니라, 마음도 급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그동안 모형에만 해봤지, 실제 사람에게 해보지 않았습니다. 급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마음 한 가득 채워졌습니다. 실제 사람에게 제대로 심폐소생술을 못할까봐 두려웠습니다. 혹시나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한 생명이 죽음을 마주할까봐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에 몰입하면서, 두려움은 잠시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두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하던 나의 연습 과정들을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급하게 떠올리며, 더 빠르게 뛰었습니다.

 저를 부른 아저씨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를 향해 심폐소생술을 해달라고 말한 아저씨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숨을 가다듬으며, 아저씨에게 물어봤죠.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지금 어디 있죠?”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내가 필요해!” 그러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리시더라고요. “혈압이 떨어진 거 같으니 빨리 심폐소생술을 해줘!” 그 순간, 머리가 정지했습니다. ‘위급한 환자가 있는 게 아니다? 본인에게 해달라고? 이게 무슨 말이지?’     

출처, 국가정보포털 의학정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심장 정지는 보통 2가지로 판단합니다. 첫 번째는 반응입니다. 환자와 대화 가능 여부로 의식이 있는가를 살핍니다. 두 번째는 호흡과 맥박입니다. 비정상적이거나 호흡이 아예 없는지, 맥박의 유무를 확인합니다. 이 때, 의료인이 아닌 이상 맥박까지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호흡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저를 부른 아저씨는 의식이 너무 멀쩡하셨습니다. 호흡이나 맥박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솔직히 욕이 나올 뻔 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심폐소생술 필요 없으실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친구들 곁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돌아가는 와중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분 좋게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가, 뛰지도 않아도 될 상황에 열심히 뛰고, 긴장하지 않아도 될 때 혼자 속으로 불안하게 만든 아저씨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함이 계속 남았습니다. ‘혹시 내가 무엇인가를 놓친 것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휴게소 직원이 심장 정지 상태에서 쓰는 응급기구인 자동 심장 충격기(AED, Automatic External Defibrillator)를 가지고 아저씨를 향해 뛰어가더라고요. 자동 심장 충격기는 심장 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술과 더불어 많이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그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곧바로 자동 심장 충격기를 가지고 뛰어가는 휴게소 직원을 뒤따라 아저씨를 향해 뛰어갔죠.      

출처, 국가정보포털 의학정보

 가서 확인해보니 아저씨 상태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괜찮았습니다. 아무리 지켜봐도 심장 정지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불안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사태를 고려해 멀리서 아저씨를 지켜보며,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개입할 준비를 했습니다. 다행히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응급차가 와서야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응급차가 오기 전까지 여러 고민을 하다 문득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혹시 과거에 심장 정지 경험이 있었기에, 심폐소생술을 요청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방금은 분명히 심장 정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물어보는 순간부터, 휴가를 즐기러 온 한 사람이 아닌, 의료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료인이란 걸 밝힐 수 없었고, 의료인으로서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 한다 착한 사마리안인 법     


 응급의료법 제5조 2항에서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 대해 일반인 또는 업무 중이 아닌 응급 의료 종사자가 실시한 응급 의료 또는 응급 처치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사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책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명 ‘착한 사마리안인 법’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해당 법률이 의사 등 응급 의료 종사자가 업무 중이 아닐 때 발생하는 응급상황 참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처, Pixabay

 여기서 말하는 ‘중대한 과실’ 유무는 결국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휴가 등으로 업무 중이 아닌 응급 의료 종사자가 환자를 살리고자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사망한 경우에는 형사 책임에 대해 면책이 아닌 감면, 즉 형사 책임을 어느 정도 져야 합니다. 2018년 5월 15일, 한의사의 봉침으로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는 응급상황에 빠진 환자분을 살리는 걸 돕던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해당 환자를 진료를 통해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단지, 응급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해당 환자를 도우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결국 의료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법원 쪽에서는 결국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응급 상황을 돕겠다는 좋은 의도로 환자를 살리고자 했던 한 의사는 의도와 상관없이 의료 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료인으로서 많이 부족한 제가 중대한 과실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분명히 심장 정지 상황이 아니었는데, 아저씨의 말대로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심폐소생술 자체가 많은 힘을 요구하다 보니 갈비뼈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쩡한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가 갈비뼈가 부러졌다면? 그것이야 말로 중대한 과실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현재 심장 정지 상태가 아니라고 마냥 무시했다면요? 이전에 심장 정지를 경험하여 심폐소생술을 미리 요청한 것일 수도 있는데, 요청을 흘려들은 사이 사망과 같은 큰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역시 중대한 과실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중대한 과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료인이라는 걸 밝히고 상황을 주도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회피하진 않았습니다.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요청했을 때도 먼저 뛰어갔고, 만일을 대비해 구급차가 올 때까지 지켜봤습니다. 의사로서 언제든지 개입하고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겼다면 그 때는 두렵더라도 상황에 개입했을 겁니다. 의료인으로서 눈앞에서 환자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요.      


수많은 두려움들이들을 이겨내려면?       

출처, Pixabay

 이론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론에서는 모의 환자를 상대로 다양한 판단을 해보고, 그에 따라서 진단, 치료, 교육 등을 실시합니다. 만약에 틀렸다 하더라도 다시 배우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판단이 틀렸을 때, 틀렸다는 걸로 끝날 문제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고민했습니다. 학생 때 배웠던 내용들, 의사가 되어 찾아보며 공부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머릿속에서 생각한 후,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오로지 저의 판단에 근거해야 하는 만큼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기를 하기 직전에도, 다시 한 번 심폐소생술 해야 하는지를 속으로 빠르게 곱씹어보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 심폐소생술을 안 해도 된다고 판단했지만, 판단이 혹시라도 틀리진 않았을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틀린 판단으로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까봐 두려웠습니다. 환자에게 피해가 생길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놓친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출처, Pixabay

 판단으로 인한 두려움 말고도 수많은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할까봐, 진료 도중 육체적 폭행이나 언어적 폭행을 당할까봐, 의사로서 정말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진짜로 공감 하고 있는 건지, 상대방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등 두려움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런 두려움들, 어떻게 해야 이겨낼 수 있을까요?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게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입니다. 뻔한 이야기죠?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고려하고 따져야 하며, 내가 하는 행동이 맞는지 틀린지 생각하다보니 두려움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저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이 더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물론 선의의 응급의료로 인해 발생하는 형사책임 면제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의료인들을 배려하는 법이 생겨날수록 두려움이 사라질 순 있지만 완전히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없어지는 게 불가능하다면,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두려움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수많은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겁먹고 걱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조금 더 빨리 이성적으로 행동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답이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답을 알아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겠다는 뻔한 답! 저부터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출처, Pixabay

 저는 아직까지도 많은 것들이 너무 두렵습니다. 어쩌면 계속 두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두려움을 영원히, 완벽하게 없애지는 못할 듯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두려움을 조금 더 빨리 이겨내고 제가 해야 할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더 배우고, 더 익히고, 더 경험하며 나와 마주한 두려움들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kc2495/222123666161


참고자료

1. '선한 사마리아인' 봉침 사건…법원 "가정의학과 의사 책임 없다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7346

2. 봉침 사망 여교사, 그날 한의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8079

3. 반딧불 의원 - 기내에 응급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닥터 콜, 204-206쪽

4, 한국의 착한 사마리아인법 :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적용과 해석, 배현아, 사법2014 vol.1, no.28, 통권 28호, 사법발전재단, 2014

5. 청년의사 : 선의의 응급의료 형사책임 면제 범위 확대에 醫 “환영”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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