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미생’ 아시나요? 미생물 말고요. ‘미생’요! 아마 많은 분들이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때 만화 ‘미생’은 드라마로도 열풍이 불었거든요.
‘미생’은 완전한 삶의 상태가 아님을 의미하는 바둑 용어입니다. 이런 용어의 의미가 만화 및 드라마 ‘미생’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냉혹한 현대 사회에서 치이고 혼나고 욕먹으면서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미생’입니다. 못난 상사한테 당하는 한석율, 여자라는 이유로 더 고생을 하는 안영이, 일하면서 자꾸만 자존감이 떨어지는 장백기, 옳은 일과 이득이 되는 일이냐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오상식. 언젠가는 이루어질 완전한 삶 ‘완생’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인 장그래에게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장그래는 한평생 바둑만 두며 살다가 결국 바둑을 그만두게 된 주인공입니다. 그는 바둑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대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고, 스펙은 사실상 없었죠. 우연히 아는 지인을 통해 큰 기업의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봤을 땐 낙하산인 셈이죠. 사실 여기까지는 저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공정한 경쟁과 거리가 먼 낙하산을 좋아할 리 없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사실들도 까먹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는 장그래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죠. 부족하기에 모르는 것은 남들에게 물어봅니다. 그 동안 몰랐던 용어들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넣습니다. 회사 다니면서요. 부당함 앞에서도 어떻게든 버텼습니다. 노력이라도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증명했죠.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늘 생각하며 매일을 달렸던 장그래. 그를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때론 감정이입이 되어, 장그래가 화낼 때 같이 화내고, 울 땐 같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납니다.
저는 왜 감정이입이 되었을까요? ‘완생’을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던 장그래의 삶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이야기들이 단순히 만화에만 있는 것이 아닌, 곁에 있는 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요?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저 역시 회사라는 길을 걸었어야 했기 때문에? 지금의 저 또한 저만의 ‘미생’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감정이입이 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의사가 된지 겨우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초보의사죠. 저 나름대로도 숙련된 의사가 되고자 ‘미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선배님들이 걸어오신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요. ‘미생’의 길을 걸으면서 마주했던 많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혈당이 상당히 높았던 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오랫동안 당뇨 약을 드셨지만, 혈당이 높았습니다. 동시에 당뇨 진단에 중요한 당화혈색소 수치 역시 상당히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더 이상 보건소에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내과 전문의에게서 직접 관리 받아야 할 정도였어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할머니, 그동안은 저희가 관리해왔는데, 더 이상 힘들 거 같습니다. 할머니 건강 고려했을 때, 저 말고 내과 전문의 선생님과 상담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당뇨 조절이 지금보다 잘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께서는 화내셨습니다. “큰 병원 가도 소용없어! 보건소는 국가기관이니깐 더 잘해주는 곳인데, 왜 그래! 내 몸은 내가 알아서 관리할 테니깐 수치가 높은 거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다른데 가기 싫어요.”
어떻게든 할머니랑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타협조차 하지 않으셨죠. 그러다 섭섭하다, 약 줄때까지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선포하시고는 진료실에서 1시간 정도 버티셨습니다.
저는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할머니 다음 순서로 10명 정도의 환자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죠. 그 중엔 벌에 쏘인 환자가 2명이나 있었습니다. 벌 쏘임에 대해선 빨리 치료해야 하는데, 진짜 돌아버릴 뻔했습니다. 1시간 동안 대화를 한 후에야, 할머니께선 다른 병원에 가야할 필요성에 대해 납득하셨습니다. 그제야 급하게 다른 환자 분들을 진료하고 치료하기 시작했죠.
제가 의학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는 것은 개인적으론 썩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정해야죠. 그게 특히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면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야합니다. 그런 판단 하에 환자 분들에게 설명했을 때, 납득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꽤 됩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화내고, 진료실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며, 약만 주면 된다는 식으로 타협 보려고 하실 땐 참 힘들더라고요. 건강과 관련된 내용을 어떻게 타협할 수 있겠습니까?
보건소에서 진행했던 검사결과들을 전화로 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전화상으로 알려드릴 수 없었습니다. 본인이라는 걸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본인 휴대폰이라고 해도, 본인이라는 걸 어떻게 장담하나요? 안 된다고 저는 확실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법을 지키는 건 아니다. 선생님은 법을 완벽하게 지키시는가요? 그게 아니면 알려주시죠?”라고 우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독감 예방접종 기간이었습니다. 접종 기간이 75세 이상 무료, 65세 이상 무료, 전 연령 유료 등으로 세부적으로 나뉩니다. 기간이 정해져있는 만큼, 기간에 맞춰서 오지 않으면 행정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합니다. 컴퓨터에 입력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렇게 설정되어 있더라고요. 이 상황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오늘 접종 맞겠다고 찾아오셨습니다. 75세 이상 무료 접종 기간에 찾아온 할아버지께서는 65세 이상 무료 접종 기간에 해당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해당 접종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로 접수 자체가 안 됩니다. 며칠 뒤에 오셔야 됩니다.” 그랬더니 저를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하셨죠. “기분 좋게 맞고 가고 싶다. 그냥 좀 맞자” 하지만 제가 설득되지 않으니, 화내면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는데 무슨 소리하느냐! 어떻게든 처리를 해 봐!” 그러면서 보건소장님 어디 있느냐, 만나고 싶다고, 따져야겠다며 계속 항의하셨죠.
참 난감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 철저하게 하는 것일 뿐인데, 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로 설득하려는 걸 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행정적 처리가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든 해내라고 하는 경우를 마주하면 저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다른 환자와 대화 하고 있는 와중에 진료실로 뛰어 들어온 환자가 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였기에, 뛰어 들어온 환자에게 말할 틈도 주지 없이 바로 내보냈습니다. 그 후, 30분 정도 지났을까요? 드디어 내보냈던 환자 차례가 왔습니다. 약 봉지를 보여주면서 약을 달라고 하시네요. 약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어서, “원래 다니시던 병원 가서 약 드시는 게 좋을 듯해요”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아까 내 말만 들었으면 기다리지도 않았을 건데, 왜 쫓아냈냐!”고 불평불만을 다 쏟아내시면서 진료실을 나갔습니다.
누군가 진료실 문을 쾅쾅 두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가서 문을 여니깐, 씩씩 거리고 있는 환자 분이 계셨습니다. 급하다고 빨리 진료를 해달라고 하시네요. 순서를 확인해보니 5번째 순서인 환자 분이었습니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다른 환자 분들 진료 중이니 기다리셔야 되요. 순서대로 다 해드릴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보건소가 터져나가듯이 고함을 내지르셨습니다. “나는 바쁜 사람이야!” 동시에 해선 안 될 다른 말까지 해버리셨죠.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넘치는 사람들이야, 나는 시간이 없는 사람이니 진료를 당장 해.” 기적의 논리 앞에서, 기다리던 4명의 환자 분들과 저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타인이 진료를 보고 있을 때 기다리는 건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가 합니다. 나의 진료 시간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이 의사와 가지는 진료시간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요? 의사와 환자라는 관계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의부터 우선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20살이 되어 대학생활을 하고나서야 인간관계가 얼마나 힘든지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외동아들입니다. 형제들이 없었고, 고등학교 때까진 거의 반 친구들 말곤 아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보다 어린 후배들과는 어떻게 지내야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 이상으로 인간관계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많이 욕먹기도 했고, 혼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자신이 위축되기도 했죠.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욕먹을 만한 일들을 많이 하긴 했어요. 조금 부끄럽습니다.
대학교 생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배워나갔습니다. 부족한 점들을 채워나갔죠. 그러다 겨우 의사로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2년 정도 된 사회 초년생이네요. 그렇게 혼나면서 배웠음에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관계는 어렵습니다.
인간관계가 쉽지 않기에, [카네기 인간관계론] 같은 책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것 같아요. 비난하지 말기, 칭찬하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잘 듣기, 미소 짓기, 이름 기억하기, 잘못한 건 인정하기, 논쟁을 피하기 등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다양한 방법들이 나옵니다. 이런 방법들이 어려운 인간관계에 많은 도움을 선사하는 건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의 한 종류에 속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와는 좀 다릅니다. 또 다른 어려움들이 존재하거든요. 책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이용해서 무작정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습니다. 물론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온 다양한 방법들 중 이름 기억하기,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기, 칭찬하기 등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활용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칭찬을 할 수는 없습니다. 논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1시간 동안 진료실에서 버티는 경우, 개인정보를 전화로 알릴 수 없는데 알려달라는 상황, 할 수 없는 일을 무조건 해달라는 경우, 문을 쾅쾅 두드리거나 순서를 무시하는 기적의 논리 앞에서는 논쟁을 마냥 피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에서 이 말들이 참 와 닿았습니다.
치료 윤리에 있어 환자의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는 온정주의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치료자, 환자’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사람은 부모 같은 사람의 말은 듣지만,
자식 같은 사람의 말은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으로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통해,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선 어쩔 수 없이 적절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와 다르게 그 적절한 경계가 환자와 의사 둘 다를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래야 논쟁을 피할 수 없을 때도 반드시 해야 할 말은 할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경계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알겠다는 것과 별개로 ‘어디까지가 적절한 경계이냐’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상사로 나오는 김동식 대리가 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더라고요.
당신 실패하지 않았어.
합격하고 입사하고 나서 보니깐 말이야.
성공한 게 아니라 그냥 문을 한 개 더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리는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김동식 대리의 말처럼 저는 ‘미생’의 길을 걸어가는 와중에, 문들을 계속 마주했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대학교란 문이 나오고요. 대학교란 문을 통과하니 의학전문대학원이란 문이 나왔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고 의사가 되니, 의사로서 갖춰야 하는 또 다른 문들이 계속 나옵니다.
수많은 문들을 열어왔지만, 앞으로 열어야 될 문이 더 많을 것만 같습니다. 그 문들을 열어야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만큼, 문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나가야 하기에 경험이라는 문과 마주해야 합니다.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 지식이라는 문도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고요. 이번에는 의사와 환자 관계라는 문 앞에 서게 된 거죠.
드라마 ‘미생’의 처음과 끝 부분에서 장그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면 그건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그래의 말처럼 걷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걸으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의사의 삶 ‘완생’을 위해서 계속 걸어야 합니다. 그 와중에 만나는 수많은 문들을 어떻게든 열고 나아가야합니다. 문을 열어도 끝이 없는 문이 반복되겠지만, 그럼에도 또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문들을 피할 순 없습니다. 피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걸으면서 나아가야 언젠가는 ‘완생’에 도달하겠죠.
저는 이왕이면 ‘완생’에 도착해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최선을 다해서 ‘완생’에 도달할 때 쯤, 수많은 의문들에 대한 나만의 답을 내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의사와 환자 간 적절한 경계에 대한 답 등 말이죠.
[완생]에 도달하여 원하는 답들을 얻는 순간까지,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문을 열어가며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초보의사로서 [미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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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드라마 [미생] / 2014
- 1화, 9화, 20화
2. 만화 [미생] / 윤태호 /위즈덤 하우스 / 2013
3. 카네기 인간관계론 / 데일 카네기 / 씨앗을 뿌리는 사람 / 2010
4.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 양성우 / 허밍버드 / 2020
- 화가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