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오래하는 친구가 있나요? 그냥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통화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저에겐 그런 친구 한 명 있어요. 이 친구를 K라고 할게요. K와 짧게는 30분, 평균적으로 1시간, 길게는 2~3시간도 통화해본 적이 있어요. 그것도 일주일에 1번 이상은요. 생각보다 자주, 길게 통화하죠?
상당히 긴 통화시간 때문에, 사과해야 할 사람이 생기기도 했어요. 바로 K의 여자 친구였어요. K의 여자 친구는 저를 많이 질투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과 K의 통화 시간보다 저와 K가 통화한 시간이 몇 배는 더 많았던 게 질투의 원인이었습니다.
동성 친구 때문에 이성에게 질투를 당해본 것은 제 인생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생각보다 신선(?)했죠.
오해 하시면 안 됩니다. 저도 이성을 좋아하는 건장한 남자입니다. 정말입니다. 진짜예요! 그러면 왜 이렇게 오랫동안 통화를 했던 걸까요? 저랑 제 친구가 수다쟁이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제 친구와 저는 가만히 두면 하루 종일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긴 해요. 하고 싶은 말이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는 한 팀의 공동대표였거든요. 대표로서 관련 내용으로 통화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팀 이름은 [이야기 한 잔]입니다. 강연 팀이에요.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이야기를 커피 마시듯 편안하고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현재 저와 제 친구 K, 단 두 명입니다. 서로가 팀원이자 공동 대표입니다. 가끔은 게스트를 초대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선 두 명이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가 팀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6년 10월입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각자 개인 강연을 6~7번 정도 한 상태였어요. 어느 정도 경험이 있으니, ‘팀으로 활동하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알고 보니 허상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오히려 냉정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말이죠.
저희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해본 적이 없었죠. 학교 선생님들께 홍보 전화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아는 누군가에게 전화했던 게 아닙니다. 온갖 학교에 전화해서 홍보를 했었어요. 생각해보면 민폐이긴 했습니다. 첫 통화에서 홍보를 듣는다는 게 상대방 입장에선 기분 좋지 않았을 거 같아요.
그 와중에 모 학교 진로 선생님과 통화 했습니다. 선생님께 팀에 대한 설명 및 콘텐츠를 설명했어요. 갑자기 선생님이 웃으셨죠. 좋은 웃음소리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대화 내용이 웃음 뒤로 이어졌습니다.
모 학교 진로 선생님 : “이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하러 가세요.”
나 : “선생님, 저 말이 좀 심하신 거 아닌가요?”
모 학교 진로 선생님 : “아니, 의사나 할 것이지. 왜 쓸데없는 짓 하나요? 공부나 하세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요. 통화 할 때 저는 예의에 어긋나게 하진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상대방 역시 최소한의 예의로서 저를 대해 주리라 기대했죠. 그 기대가 어긋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통화한 사람에게 ‘공부나 하러 가세요.’라니.……. 제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지 아직도 의구심이 듭니다. 선생님 입장에선, 막무가내로 전화해서 홍보하는 사람이 황당했을 거예요. 이해됩니다. 그러나 예의라는 측면에선 이해되지 않았죠.
덕분에 현실이 얼마나 냉정한지 깨달았습니다. ‘마냥 잘 될 거다’라고 믿은 것은 저희만의 착각이었어요. 강연 경험이 부족한 저희를 부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활동을 4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2년입니다. 제 개인 사정으로 1년 쉬었어요. 현재는 코로나 19로 강연을 할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희가 강연하러 갔던 학교에서 재방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연락 오기 시작했어요. 쉬고 있을 때도 연락을 주신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코로나 19가 심해지기 전인 2020년 초, 학교보다 더 큰 기관에서 강연 제안이 왔었죠.
시간이 흐를수록, 저희의 사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졌어요.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제 남자(인)친구 덕분입니다.
2017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히트 영화 <라라 랜드>를 아시나요?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라라 랜드> 삽입곡에 가사를 쓴 팀이 있습니다. 바로 파섹 앤 폴 듀오입니다.
듀오로 활동했다고 하면 서로가 성향이 비슷할 거라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정반대의 스타일이었습니다. 벤제이 파섹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화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열정이 전달될 정도였다고 하네요. 저스틴 폴은 너무 조용하고 신중한 편이었습니다. 파섹과는 완전히 다르죠?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던 이 둘은 듀오로서 활동했고, 어느 새 뮤지컬 극장의 유망주로 급부상했습니다.
성향이 달랐던 그들은 어떻게 같이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들의 활동을 성공으로 만들어 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앨런 가넷이 쓴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 ‘상충하는 협업자’란 용어가 나옵니다. 각자 다른 관점을 가졌으며, 그 관점을 통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사람! 이런 파트너를 ‘상충하는 협업자’라고 합니다.
파섹과 폴은 서로에게 있어 ‘상충하는 협업자’였던 겁니다. 협업자로서 그들은 서로를 보완했습니다. 벤제이 파섹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생각을 제시했다면, 이를 구체화시켜서 실현 가능하게 만들었던 이는 바로 폴이었습니다.
성향이 달랐던 만큼 그들은 부딪혔습니다. 서로의 관점을 부딪치며 마찰을 일으키고 서로 상충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나갔죠. 적당히 타협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결함을 찾아내고, 그 약점을 보완해주면서, 계속 발전해나갔습니다. 그랬기에 유망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바로 저와 K가 서로에게 ‘상충하는 협업자’였거든요.
K와 저는 살아왔던 길 자체가 아예 달랐습니다. 저는 평범하게 살아왔죠. 일반 사람들처럼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 후 대학원에 갔어요. 반면에 K는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단 이유로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막상 나오고 나서, 스스로의 음악 실력에 실망한 K는 방황했어요. 그러다 전국 무전여행을 1년 동안 떠나게 되었습니다. 무전여행비용 마련 차, K는 더운 여름에 밖에서 농촌 일을 한 적이 있어요. 하루 내내 일하고 수당으로 총 2만원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 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공부가 가장 쉬운 거였구나!’ 그래서 공부를 하고 대학교로 진학했어요.
K는 저와 성격도 완전히 달랐어요. 덕분에 서로 많이 부딪혔죠. 저는 정말 꼼꼼합니다. 사전에 계획을 세워서 일을 진행하는 편입니다. 계획을 진행하기 전에 다양한 요소들을 다 고려해요. 그러다보니 일할 때 시간이 많이 걸려요. 또, 하나에 깊게 몰두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K는 꽂히는 대로 하는 편이였어요. 계획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죠. 고등학교 때, 음악, 베이커리 등에 빠졌다가, 어느 날 연락해보니 롤,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에 푹 빠졌더라고요. 그러다 여행 가고 싶다고 1년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했죠. 공부에 꽂혔을 땐,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한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현재는 생선에 시선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회 써는 법, 생선을 고르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생선은 직접 잡는 게 제 맛이라면서 이젠 낚시하러 떠났습니다. 가끔 연락도 안 되네요. 제 친구지만 참 특이해요.
저희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살아온 방식도 달랐고, 성격도 반대였습니다. 다르다보니 많이 부딪혔어요.
앞에서 저희가 통화를 많이 한다고 했죠?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K는 경기도 일산에서 지냈고, 저는 부산에서 살았거든요. 직접 만나기 힘든 만큼 통화로 대화를 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의견이 안 맞으면 어떻게든 맞춰보고자 통화를 오래 할 수밖에 없었죠. 2~3시간을 통화해도 단 한 가지의 콘텐츠조차 타협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정말 많이 싸웠어요. 여기에 치고 박고 싸우기까지 했다면, 정말 피터지게 부딪쳤을 거예요. 대화로 너무 심하게 싸우다보니, 때론 서로에게 실망한 적도 있어요.
달랐던 만큼, 서로를 치밀하게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엔 파섹과 폴 듀오 보다 더 말이죠.
저는 글 읽는 것을 좋아해요. 학생 때, 공부가 안 되다는 핑계로 책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진료하다 시간 빌 때도 책 읽어요. 진지한 독서만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때론 [전지적 독자 시점], [달빛 조각사] 같은 소설에 빠져서 밤새 읽기도 했죠. 반면에 K는 영상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유튜브요. K는 숨을 쉬듯 영상만 보는 것 같아요. 잠은 자면서 영상을 보는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네요. 그만큼 영상을 많이 봐요. 각자의 관심분야를 이야기하다보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공유해볼 수 있었습니다.
K는 정말 아이디어 뱅크입니다. 온갖 아이디어를 떠올려, 저에게 제시합니다. 때론 정말 색달라 감탄할 때도 있었죠. 반면에 저는 그런 K의 아이디어를 냉철하게 분석했습니다. 실현 가능한 부분을 모색하고 실제로 현실화시켰죠.
저는 대체로 진지한 이야기를 강연에서 많이 하는 편입니다. 친구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많이 다뤘죠. K가 청자들의 흥미를 확 유도했다면, 저는 유도된 흥미에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맡았죠. 콘텐츠 자체의 색깔이 달랐기에 서로를 보완했고, 그렇게 팀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할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거 같아요.
서로의 다른 관점에서 각자의 강연을 피드백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강점을 더욱 부각시켜나갔습니다.
치고 박고 싸우며 4년을 보내다보니,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싸우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죠. 너무 달랐던 우리는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만 보시면 다르기만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맞아요. 확실히 다르긴 달라요. 그래서 사실은 아직까지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요. 흑과 백 같은 저희에게도 사실은 공통점 하나가 존재합니다. 그 공통점이 있었기에, 4년 동안 일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맞춰 나가보고자 노력할 수 있었죠. 그 공통점은 바로 열정입니다.
저희 둘 다 의료 분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으로서 관련 전문 지식을 배워나갈 때,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물며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 분들은 어떠실까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보단 거리감 때문에 의료가 더 어렵게 느껴지실 거예요. 의료 쪽을 공부하며,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목표를 가지게 되었어요. 의료라는 분야에 대해 누구나 이해할 만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제 친구도 같은 꿈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의료로 한정했지만, 나중엔 그 이상으로 강연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뤄보고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들은 이들과 나눈 이들 모두 즐겁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저희들의 꿈입니다.
어쩌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실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희는 증명해내고 싶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걸 현실적으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고 싶단 열정으로, 저희는 강연 팀 [이야기 한 잔]을 만들었습니다.
저희만의 열정을 증명해내기 위해, 단 하나의 강연 기회라도 만들고자 했습니다. 막무가내였지만, 부산에 있는 전 고등학교에 빠짐없이 전화를 돌렸습니다. 관심 없거나, 무시하는 전화 통화에 상처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기죽지 않고 더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회를 잡고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기획서도 만들었습니다. 기획서와 동봉할 편지 역시 작성했죠. 손으로 일일이 써내려 나갔습니다. 50장 쯤 썼을 때는 손이 아려왔죠. 정성껏 만든 자료들을 부산을 비롯하여 전라도, 충청도 등 대한민국 전역으로 보냈습니다.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기회들이 찾아왔습니다. 단 하나의 기회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강연 제안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저희는 부산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새벽에 무궁화호 8시간을 타고 가서 강연을 했습니다.
제 친구 학교는 일산에 있었습니다. 일산에서 부산까지 기차, 버스로 왕복 6시간은 걸립니다. 보통 강연이 잡히는 것은 학교가 개강했을 때였습니다. 수업도 챙기면서 강연도 하려면 저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한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 비행기로 왕복하는 선택지 하나였습니다. K는 당일치기 비행기 왕복을 하며 학교생활과 팀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비행기 값만 얼마가 깨졌는지 기억하기도 싫네요.
국가고시를 준비할 때 강연을 잠시 쉬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쉰 것은 아니었어요. 국가고시 대비 중에, 저는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언젠가 강연 기회가 다시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요. 심지어 군대 훈련소 가기 일주일 전까지도 콘텐츠를 개발해나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미친놈이긴 하네요.
치열하게 달려 온 [이야기 한 잔]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습니다. 2017년에는 26개 학교, 약 1500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피드백 점수를 받았을 때 나쁘지 않았어요. 2019년에 다시 시작했을 땐, 2017년에 비해 피드백 점수가 더 높아졌습니다. 2020년에는 학교보다 더 큰 기관에서 같이 해보자고 연락 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강연이 미뤄졌지만, 기회가 다시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종결된 이후, 수많은 학교를 대상으로 강연을 다시 진행할 예정이에요. 학생이 아닌 분들을 대상으로도 강연을 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팀이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콘텐츠를 위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연구 역시 해야겠죠. 트렌드도 꾸준히 분석해야 할 겁니다. 스피치 능력도 성장시켜야겠죠? 우리 이외에 새로운 팀원들을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해요. 점점 팀을 키워나가며 꿈을 향해 다가갈수록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겁니다. 험난할 미래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들을 떠올리면, 미래가 마냥 힘들기만 하지 않을 거 같아요.
4년 동안 즐거웠던 추억들이 한 가득입니다. 첫 강연 때, EBS에 우연히 짧게 출현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게스트들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고, 뒤풀이 하던 기억도 나네요. 그 뿐만 아닙니다. 강릉에 강연과 더불어 투어 여행을 했을 때, 아이들과 옹기종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같은 학교에 두 번째로 방문하여 예전에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봤을 때, 시간이 흘러 강연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술 한 잔 했을 때, 강연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꿈을 이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고에서 우렁찬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을 때 등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한 추억들이 많습니다.
[이야기 한 잔]의 길을 걸어오며, 수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화 한 통 후 직접 대면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며 강연의 기회를 매 해마다 주셨던 선생님, “내 아들도 특이하지만, 너도 참 특이한 녀석이야!”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늘 학교에 불러주셨던 선생님, 전혀 연고가 없던 저희들에게 강연해보라고 제안하셨던 강원도 강릉 선생님들, 강연보다 강연 이후에 수다를 더 많이 떨었던 선생님들, 저희에게 늘 기회를 많이 주셨던 중학교 은사님! 지겨웠을지도 모르는 저희의 강연을 들어줬던 수많은 친구들까지!
이 책을 빌려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친구 K에게도 여러모로 고마워요. 고마운 만큼 미울 때도 많았어요. 국가고시 치기 3일 전, K가 저한테 전화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콘텐츠 관련 중요 약속을 깨야한다고 통보하더라고요. 그 때, 제 뒤통수가 참 얼얼했지요. 다시 떠올리니, 얼얼한 느낌이 되살아나네요. K한테 전화해서 욕 한바가지 해야겠어요.
말은 이렇지만, 고마운 일이 더 많아요. 저랑 친구 K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중학교 때, 회장 선거를 나간 제 옆에서 찬조 연설을 해주며 지지해 준 친구였죠. 원래부터 엄청 친한 친구였지만, 일을 같이 하는 것은 친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저흰 서로 정반대였습니다. 완전히 달랐지만 믿음 하나만큼 서로 같았습니다. K는 저를 믿어주었고요. 저 역시 K를 믿었습니다. 서로를 믿어왔기 때문에, 저희는 지금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2016년 한 여름, 카페에서 나눈 서로의 믿음에 대한 시작을 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K야 정말 고맙다! 우리의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할거야!
K : 안철수, 박경철 선생님이 진행하는 청춘 콘서트 정말 멋지더라. 저런 분들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둘이서 같이 강연을 했으면 좋겠어.
나 : 흠... 꼭 ‘언젠가’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지금’부터 하면 어때?
K : '지금‘ ? 맞네 ! 그럼 지금부터 우리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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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 앨런 가넷 / 알에이치코리아 / 2018
- Part 2 돈이 되는 크리에이티브의 법칙 / 03. 제3법칙 : 창의적 공동체 / 상충하는 협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