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간을 이식 받았던 환자가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간의 상태가 다시 나빠졌기 때문이죠. 원인은 환자 분이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CT, 초음파, 이식으로 인한 거부 반응 검사 등 모든 검사들까지 다 거부합니다. 이렇게 모든 걸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식 받았던 간의 주인이 바로 남편이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남편이 바람났거든요.
주치의 선생님은 환자분에게 검사받은 후, 약 먹자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환자 분은 완강히 거절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선생님은 세상이 다 아름답고 착하죠?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교육 받고 자란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할 겁니다. 아, 이해하실 필요도 없고 이해하면 또 뭐하겠어요?”
그날 이후, 주치의 선생님은 환자분에게 조용히 찾아갑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환자 분 앞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저도 와이프, 바람나서 이혼했어요.”, “밤새워 병원 일하고 혼자 애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와이프가 자기 친구 남편이랑 바람이 났어요.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그리고 남들 보기도 너무 창피하고 ‘아, 인생 왜 이렇게 꼬이나’ 싶어서 죽겠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어요. 걔 때문에 내 인생 이렇게 보내는 게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어느 새, 환자 분이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약 먹고 악착같이 건강 회복해서 인생 살라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환자 분은 마음의 문을 열고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나왔던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주치의는 바로 이익준 외과 교수입니다. 배우 조정석님이 맡았던 역할이었죠.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거였습니다.
‘결혼하지도 않은 내가 이혼이란 이야기를 꺼내며
환자 분을 설득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의사가 된 이후, 의학 드라마를 보며 이런 비슷한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의학 드라마에 나오는 다양한 상황들이 마치 제 실제 상황이라고 여기며 상상했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 교수의 상황도, 이전이었다면 막연하게 생각하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젠 저라면 어떻게 대처할지 깊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드라마를 편하게 즐기지 못했습니다.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여기지 못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슬프네요.
왜 드라마를 통해서 깊은 고민들을 하게 되었을까요? 의사가 되고 나서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이해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요. 어떻게든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늘 다양한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해서 생각 하다 보니, 드라마 보는 순간에도 고민들이 계속된 거죠.
의대를 졸업한다고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건의료인국가시험 칠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의대 졸업이구요.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의사가 됩니다. 보건의료인국가시험 중 의사국가고시는 실기와 필기로 나뉩니다.
실기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환자와 면담하는 CPX입니다. 주사 놓기, 수혈하기, X-ray 판독, 부목고정 등 술기를 직접 시행하는 OSCE가 바로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에 관련된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합니다.
실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 할 때는 엄청 막막합니다. 막막했던 감정이 가장 강했던, 1학년일 때가 떠오르네요.
1학년 당시, 처음으로 CPX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면담을 비롯하여 신체진찰을 하고, 그에 따라 정확한 질환 감별 및 진단을 내리며, 마무리로 환자 교육까지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걸 10분 안에 진행해야 했죠. 1학년 때의 저는 할 줄 아는 것이 진짜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시험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의 환자 분과 대화를 했죠. 물어볼 거 다 물어보니, 5분이나 남았네요. 그 때부터 잔머리(?) 굴린 내용을 실행해나갔습니다. 환자분한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진료를 해보니, 저희 과에서 담당하는 파트가 아닌 거 같습니다. 일단 영상의학과에서 X-ray 좀 찍어보시고, 다른 과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손이 전화기인 것처럼 행동하며.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영상의학과죠?”
전화하는(?) 저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교수님, 모의 환자 분 둘 다 냉정함을 잃고, 빵 터지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미친 짓 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할 말이 없어서 영상의학과에 보내겠다고 말하다니……. 시험장을 나오고 나서,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그 날 한숨도 못 잤어요. 그 이후론 절대 이와 같은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모의 환자 분을 진료했습니다. 그래서 무사히 실기를 통과할 수 있었죠.
학생 때, 실기 연습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의 환자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군대 가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모의 환자도 만났었죠. 환자 분 이야기 듣다가 아직 군대 가지 않은 제 자신이 떠올라 “저 역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그 마음 이해합니다.”라고 말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 말이 생각보다 진심을 많이 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환자 분이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셨죠.
위에선 말한 상황들은 사실 정말 드뭅니다. 오히려 진지한 상황들을 많이 마주했어요. 기절한 모의 환자의 보호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폭행을 당했던 환자를 모의 환자로 만나기도 했죠. 우울증 환자를 만나 달래가며 치료 방법을 모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암에 걸려 희망을 잃은 환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학생 시절 내내 정말 다양한 케이스의 모의 환자를 만나며 연습에, 또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학생시절부터 모의 환자 분들을 대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연습을 수없이 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환자 분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돕고자 하는 일들이 학생 때와 다르게 너무 어려웠어요. 모의 환자와의 만남은 연극이잖아요. 진짜 환자와의 대화는 실제이고 삶이 걸린 문제이니까요.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책임감 때문에, 이해와 공감보단 치료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어요.
코로나 19 사태로 대구 파견 갔을 때입니다. 확진자 분들이 지내던 생활치료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 중 하나가 전화 상담이었어요. 매일 아침, 저녁 두 번 전화해서 환자 분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 일을 하며, 환자 분들의 다양한 마음과 마주했죠.
오랫동안 치료소 내부에서 지내다 보니, 화가 쌓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한테 화내며, 속에 쌓인 걸 풀기도 하셨죠.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요?”, “선생님, 같이 온 제 동생은 괜찮아요?”
너무 지쳐서 괴로워하는 환자 분들도 계셨죠.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요? 무슨 잘못을 했기에 계속 여기 있어야 할까요?”, “선생님, 너무 고생하시죠? 죄송해요. 그런데 저 너무 힘들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제가 울컥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한테 화낼까? 얼마나 지쳤기에 나한테 하소연할까?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열심히 듣고, 환자 분들을 친절하게 대해드렸어요.
“저한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털어놓으세요.”, “환자 분께서 잘못 한 거 전혀 없습니다.”, “괜찮아. 동생 괜찮으니깐, 너무 걱정 마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하고 돌아와서 제가 잘한 게 맞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은 내가 확진자분들을 위로할 자격이 있긴 할까? 나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하는 걸까?
내 위로가 그들에겐 가식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을까?
그들의 상황, 마음 등을 제대로 공감하고 있긴 한 건가?’
이 이외에도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났습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찾아와서 걱정을 하는 부모님들,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까 두려워서 찾아 온 할아버지, 남편을 잃어 슬픔에 빠진 부인, 죽고 싶다고 하는 할머니…….
삶의 문제가 걸린 환자 분들을 상대로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때론, 스스로 제대로 된 공감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었죠.
저만 이런 고민에 빠진 게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선생님들도 마주하는 문제 중 하나였어요. 그러다 어설프게 공감하며 실수하는 일도 발생했고요.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의 저자, 양성우 내과 선생님도 이런 문제에 직면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인턴 당시, 한 환자의 가족에게 ‘예전보다 화목해지셨으니, 그 병이 복된 병이 아닐까요.’라고 말한 사실을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후회하며 자책하셨죠.
‘복되다’고 재단했던 그녀의 병. 그 환자는 잘 살고 있을까? 그 환자의 부모는 지금 괜찮은 삶을 누리고 있을까? 세상에 복된 병이 얼마나 될까? 듣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 자식이 앞으로 수십 년의 긴 세월을 멍청한 눈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수개월을 눈물로 지새웠는데, 내가 죽으면 이 녀석이 혼자 잘 살 수 있을지 너무 걱정되는데……. 거기에 대고 복된 병이라니!’ 하지는 않았을까?
여러 생각으로 복잡한 내 곁으로, 누런 논두렁이 길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창밖을 보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여 혼자 말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다시 만나면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환자분들에게 공감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원하지만, 제 공감이 어설퍼서 오히려 상처를 드릴까봐 걱정됩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진정한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장 적출하는 거 10분만 미뤄도 될까요?”
5월 5일의 늦은 밤, 교통사고로 뇌사자가 된 환자가 있었습니다.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던 터라, 장기 적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적출된 장기 중 심장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팀이 도착했습니다. 적출을 맡게 된 주치의 선생님이 이송 팀에게 10분만 미뤄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던 겁니다. 이송 팀 선생님 중 한 명이 말합니다. “지금 바로 하면 안 되나요? 저희 이틀 밤을 새서…….”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은 답했습니다.
“오늘 어린이날이라 그래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야기입니다. 교통사고로 뇌사자가 된 환자는 5월 4일에 퇴원했습니다. 수술을 끝내고 무사히 퇴원하던 날, 아이와 어린이 날 자장면 먹기로 약속했다는 걸 말하던 환자였습니다. 그런 환자가 어린이날에 사고를 당할 거란 걸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환자의 생전에 주치의였던 이익준 교수는 알았습니다. 환자의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와 자장면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 이젠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사실이 슬픈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것도 알았고요.
이익준 교수는 선택했습니다. 슬픈 기억이 최소한 어린이날과 겹쳐지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그래서 5월 5일 11시 50분에, 이송 팀에게 양해를 구한 거죠.
10분 뒤인 5월 6일, 장기 적출 수술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익준 교수의 마지막 배려를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배려는 그냥 나온 게 아닐 거란 걸요. 이익준 교수는 환자 분의 관점에서 늘 고민 했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했겠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배려를 받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아이의 관점에서도 많이 고민했기에, 10분 뒤에 적출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의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된 마지막 배려가 없었다면, 아이는 5월 5일을 어린이날이 아닌 아버지의 기일로 기억했을 겁니다.
공감은 타인의 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저도 압니다. 알지만, 혹시 어설프게 공감해서 환자 분에게 실수할까봐 두려워한 겁니다. 단, 그런 두려움조차 이겨내고 공감하려고 하는 노력을 끝없이 해야 한다는 걸,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 교수가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고자 ‘노력’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설픈 공감이 아닌 진실 된 공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믿어봅니다. 믿고 계속 노력해보고자 해요.
의사로서 생활할수록 더욱 정신없이 바쁘게 보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와중에 제가 지칠 수도 있고요. 때론 감정적으로 상처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상대방의 관점에서부터 늘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다양한 경험을 갖춘 의사가 되겠죠. 수많은 경험 덕분에 공감 능력이 한 층 더 성장할 겁니다. 동시에 타인의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저의 공감 능력은 그 누구보다 탄탄해지겠죠? 그런 의사가 빨리 되고 싶습니다.
공감,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있는 순간까지 노력해보겠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kc2495/222127948757
참고자료
1.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 2020
- 3화, 7화 -
2.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 양성우 / 허밍버드 / 2020
- 복된 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