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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28. 2020

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글쓰기로 소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다.     


 “선배, 밥 사 주세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죠? 저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말에 대해 저는 대답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빨랐습니다. “그래, 그러자!” 거의 빛의 속도였죠.      


 저는 소위 호구(?) 선배였습니다. 후배들의 밥 사달란 연락을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때로는 제가 먼저 연락해서 같이 밥 먹자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후배가 말했어요. “선배, 소고기 사 주세요.” 

 이 때, 솔직히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학생일 때 받은 요청이라, 현실적으로 소고기 사주기는 힘들었습니다. 한번 샀다가는 그 달 생활비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처음으로 정중하게 거절했었죠.     

 시간이 지나고, 다른 후배에게서 똑같은 요청을 받았습니다. “선배, 소고기 사 주세요.” 

 역시 학생 때라, 소고기를 사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후배는 훗날 월급을 받게 되면 꼭 사주고 싶어요.      

출처, Pixabay

 같은 소고기를 사달라는 두 이야기에 저는 왜 다른 생각을 가졌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도 고려해야 해요. 첫 번째 후배는 말로, 두 번째 후배는 글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죠. 그리고 두 번째 후배가 저랑 좀 더 친했습니다. 이런 요인들을 다 제외하더라도, 두 번째 후배에게 소고기를 사주고 싶었을 거예요.      


 무엇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소고기를 사달라는 말을 ‘다르게’ 했거든요.     


 의사 국가고시를 100일 정도 남겨두었을 때였습니다.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의사 면허증이 주어지는 만큼, 잘 쳐야했죠. 특히 1년에 1번의 기회가 있으니 정말 열심히 응시해야했습니다. 중요한 시험인 만큼, 힘내라고 후배들이 응원해주는데요. 응원 중 하나가 바로 롤링 페이퍼였습니다.      


 우리 두 번째 후배는 롤링페이퍼를 통해서 소고기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본인만의 알찬(?) 논리로 소고기를 사달라는 장편의 글을 썼더라고요. 여기에 적어볼게요.            

 형, 접니다. 

 신입생 때부터 밥, 커피를 막론하고 많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2년 동안 너무 많이 사주셔서 그런지, 그 이후 2년 가까이 형께 많이 얻어먹지는 못한 것은 바로 제 불찰입니다. 

 어차피 국가고시는 제가 응원해도 형은 힘도 안날 겁니다. 그리고 힘든 건 금방 지나갈 겁니다. 그래서 관점을 살짝 바꿔서 저는 형의 첫 월급을 응원해보려고 합니다.

 용광로가 떠오르는 시뻘건 숯불 위에, 아름다운 불판, 녹아내리는 소고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입니까?

 1년 = 12달 = 12번의 월급! 저는 형의 월급 덕분에 1년 동안 12번 설렐 예정입니다.

 미국 소나 호주 소는 자주 만나봐서 신토불이 코리아 카우(Cow)의 맛을 보고 싶습니다.

 형과 소고기 집에서 보는 걸 기대하겠습니다.

 시험공부로 머리를 쥐어 싸매던 도중, 잠시 머리 식힐 겸 이 글을 봤어요. 그 순간, 정말 빵 터졌습니다. 정말 웃겼거든요.     


 다른 후배들은 “국가고시, 파이팅!”이라고 외칠 때, 어차피 응원해도 힘 안 날거라니……. 조금 당황했습니다. 월급을 상상하게 만들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지요. 단지, 제 월급인데 본인이 더 기대한다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동시에 12번 정도 설렐 거라고 하니깐……. 얼마나 고기를 사줘야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고기를 사달라고 그냥 말하는 후배보단 왜 사줘야 하는지를 납득(?)할 수 있었죠.     

출처, Pixabay

 아쉽게도, 월급 탄 이후에 소고기를 사 주지 못했습니다.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결되고 사주고 싶네요.      


보험 하나 가입하시겠어요?     


 의대 수업을 듣다 보면 모르는 게 생깁니다. 동기들에게 물어봐도, 책을 찾아봐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친한 선배들에게 물어보면서 해결하기도 해요. 1-2년 먼저 앞서서 공부한 선배들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던 만큼, 후배들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시죠.      


 한 선배님도 그런 마음으로 후배님이 모른다고 한 걸 차근차근 알려주셨어요. 알려주고, 또 계속 설명했지만 후배님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문제만 반복해서 이야기를 나눴죠. 꽤 오랜 시간 쉽게 풀어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후배님은 선배님이 바란 것만큼 빠른 속도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선배님이 답답해서 가슴을 치면서 말했죠.      


 “하……. 암 걸릴 거 같아. 으아아아아!”     

출처, Pixabay

 그런 선배님의 모습을 보면서, 눈치 없는 후배님은 씩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암 걸리실 거 같아요? 요새 좋은 암보험이 나와 있더라고요. OO화재라고…….”     


 결국 후배님은 끝까지 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선배님의 손이 후배님의 등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거든요. 1초 뒤에 무슨 소리가 났는지, 모두 다 아시겠죠? 지금쯤 여러분 귀에도 그 소리가 들릴 겁니다.     


    짝     

 그 장면을 목격했던 제 등도 아파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경쾌했던 그 소리가 여전히 제 귀에서 들리는 듯해요.     


28일 동안 유럽에서 살아남기      


 여러분, 질문 하나만 드려볼게요. 혹시 해외 나가시면 어떻게 소통하세요? 어렵지 않게 객관식으로 제시해볼게요.     

다음 중 해외 나가면 소통하는 방법은?

1번, 자신 있게 해당 나라의 언어를 쓴다. 

2번, 영어로 원활하게 소통을 한다.

3번, 사전이나 책 찾아가면서 대화를 한다.

4번, 다 필요 없다.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면 충분하다.     

 각자 답이 다르시죠? 저는 일단 1번과 2번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3번과 4번에 가깝죠. 물론, ‘원활하게’를 빼면 2번도 고를 수 있긴 해요.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제가 해외에 나가본 적 있거든요. 무려 한 달 동안요. 여행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병원 실습하러 한 달 동안 해외에서 지내다왔어요. 바로 프랑스에서 말입니다.     


 프랑스 릴이란 도시의 병원에서 실습 했습니다. 저는 reamination이란 과에서 한 달 동안 지냈습니다. 한국의 중환자실과 같은 곳이죠. 프랑스에서의 실습 기간 동안 참 많이 배웠습니다. 저의 담당 교수님, Professor Vanderlinden을 비롯하여, 다른 선생님들 덕분에 많은 환자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신체 진찰, 심초음파 등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줄 뿐만 아니라(물론 한국에서도 배워요.), 환자 분들의 병력을 공유해주며 질환에 대한 치료도 제시해주셨죠. 단, 한국어로 대화하진 않았겠죠? ‘영어’로 소통했습니다.      


 어떻게든 알아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대답이 조금 서툴렀지만, 선생님들이 잘 알아들어주시더라고요. 생각해보면, reamination 과 선생님들이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 평소에는 프랑스어를 주로 쓰시던 분들이, 저 때문에 영어를 계속 사용해야 했으니 얼마나 피곤하셨겠습니까? 덕분에 많이 배워갔습니다.   

  

 정말 친절하셨고, 영어도 많이 써주셨지만, 그럼에도 외롭더라고요. 사실 소통이 쉽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말할 때도,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지 않았다면 알아듣기 힘들 때도 꽤 있었죠. 

 환자 관련 이외의 대화에선 거의 다 프랑스어를 쓰시더라고요. 2시간 동안 회의 할 때도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하니, 저는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요. 점심도 같이 먹자고 챙겨주셨지만, 점심식사하며 영어로 대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죠. 때론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데 끼어서 고개만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프랑스 실습을 가는데,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워가지 않은 제 잘못이 크긴 해요. 실습 담당 선생님들은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소통도 열심히 해주셨고요. 단지, 제가 좀 부족했던 게 문제였지요.    

  

 이렇게 혼자 한 달을 해외에서 지냈다면, 엄청 외로웠을 거 같아요. 하지만 저 혼자 유럽에서 지낸 게 아니었습니다. 동기 5명과 같이 숙소를 공유하면서 한 달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다 같이 5분 거리의 빵집에 방문해 쇼콜라, 크로와상 등의 빵을 사서 커피와 함께 먹던 기억이 나네요. 퇴근하고 나선 마트, 화장품 가게 등 숙소 근처 장소들을 동기들과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어요. 카페에 앉아서 수다 떨기도 했고요. 한국의 소주가격 만큼 싼 와인과 함께 연어, 파스타로 저녁식사 하며 밤새 대화 나누기도 했죠.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실습 갔던 때, 휴일이 참 많았거든요. 파리지앵의 기분으로 프랑스 파리 거리를 걸으며, 서로 사진 찍어줄 때가 생각납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카롱 등의 간식을 먹고, 몽마르뜨 언덕에서 같이 여유를 부렸던 때도 그립네요. 같이 박물관 관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생각납니다. 네덜란드 튤립 축제에 같이 방문해, 가지각색의 튤립들을 사진에 담기도 했어요. 벨기에에 가서 와플, 초콜릿, 홍합,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며 먹방 투어도 했어요. 덕분에 살이 많이 쪘어요. 이외에도 다양한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한 번은 갈 거다’라고 막연하게만 여기던 유럽을 다녀와서 좋았습니다. 그것도 5월에 말입니다. 유럽에서의 한 달은 저에게 있어 꿈과 같은 일이었어요.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이 갔던 동기들 덕분이에요. 그들이 없었다면 즐겁기보다는 외로움이 더 컸을 겁니다. 해외에서 동기들 덕분에 외로움이란 감정을 덜 느꼈습니다. 그 때 그 동기들이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나 혼자 만으로 부족하다. : 선후배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다양한 사건사고가 참 많았습니다. 울고 웃고, 지지고 볶고 …….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사했는데, 첫 인사가 “저기, 술 한 잔 할래요?”라고 말하던 동기, 힘든 일이 있거나 기쁠 때나 가리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내던 동기들,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러 가는 저에게 어디 가서 굶지 말라고 에어프라이기 선물해주던 후배들, 학습 관련 대회에서 상을 타기 위해 같이 노력했던 후배들, 늘 저만 보면 밥 사주던 선배님들(이제 제가 보은할 차례죠?), 까부는 저를 봐도 혼내기는커녕 예쁘다고 해준 선배들(많이 까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이젠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셀 수 없이 추억들이 쌓였습니다. 

     

 많고 다양한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환경 때문입니다. 가깝게 지내야만 하는 그런 환경이었죠. 일반 대학교 수업과 달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한 가득입니다. 한 강의실에서 모든 동기들이 다 같이 수업을 듣죠. 고등학생들이 수업 듣는 모습이라고 상상하셔도 좋습니다. 이론 수업이 끝나고 실습을 돌 때도, 동기들과 같이 조를 이루어서 진행합니다. 졸업 후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만약 자신이 졸업한 학교의 병원에 남게 되면, 많은 동기와 선후배들과 같이 병원생활을 하게 되죠. 

 강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선후배, 동기들과 유대를 깊게 쌓을 수 있었죠.       

출처, Pixabay

 유대를 쌓아 가다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선배님들이 먼저 의사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 고군분투 하시더군요. 좀 더 시간이 흘러, 저 역시 의사가 되어 군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동기들은 인턴을 거쳐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하고 있고요. 조만간, 후배님들도 의사가 되겠죠. 생각해보니, 저보다 먼저 병원에 들어가는 후배 분들도 있겠네요? 후배님들이 병원 선배라니……. 그 동안 전 착하게(?) 살아왔으니, 우리 선배님들이 미래의 병원 후배에게 잘 대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학생에서 벗어나 하나 둘 의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밴드를 하며 추억을 쌓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동료들과 병원 생활을 통해 또 다른 유대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힘든 일도 같이 이겨내면서, 서로의 하소연도 들어주면서, 때론 소소한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말이죠.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어요. 이전부터 유대들이 깊게 쌓였으니까요. 지금도 가까이 지내고 있기도 하고요.      


 저 혼자만으로는 늘 부족합니다. 수많은 동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제 곁에 있어서 늘 다행입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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