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글쓸러 Oct 29. 2020

나쁜 소식 전하기 그리고 받기

“결과가 나왔는데요. CT 상 혹이 보여서 촬영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악성 가능성이 있어서 조직검사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신경외과 전문의 채송화 교수(전미도 배우가 해당 역을 맡았죠.)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당사자의 표정은 멍해지고, 딸은 뒤에서 울음을 터트립니다. 

 드라마에 나온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렇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기란 늘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습 도중, 진료실에 한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왔어요. 5-6살 쯤 되어보였죠. 아이가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들과 놀지 않는 점이 걱정되어서 왔다고 합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저는 이 아이와 관련된 질환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자폐 장애라고 추측했습니다. 아이의 행동이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에 불과했던 제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교수님의 판단을 기다렸죠. 교수님도 고심하시더니 자폐 장애로 진단을 내리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멍해진 부모님……. 멍한 표정의 어머니가 먼저 말하셨습니다.
   
 “뭐라고 하셨죠? 자폐장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이내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왜, 왜 자폐장애란 말입니까? 왜!”  
  
 모든 진료가 끝난 후, 학생 실습실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아까 진료를 봤던 가족을 우연히 봤습니다. 아버지는 어딘가를 멍하게 쳐다보며 가만히 서 계셨죠. 어머니는 옆에서 울고 있으셨고요. 그 주위로 아이는 신나게 웃으면서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습니다. 부모님과 아이의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려왔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활발하게 인사를 하며 한 여성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웃으면서 여성분은 말했습니다. “네, 잘 지냈습니다.”란 선생님의 답과 동시에 이런 저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암을 이전에 진단받으셨으나 치료 후 결과가 괜찮았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재검 결과를 들으러 오신 거였어요. 재검 결과를 받은 교수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습니다. 

“뼈로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암이 전이되었지만,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약이었습니다. 약을 쓰면 뼈로 전이된 암에 효과적이나, 부작용으로 폐경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분이었습니다. 이 여성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가혹했습니다. 암을 치료하고 아이 가지는 걸 포기하느냐, 아이를 가지고 암 치료를 포기할 것이냐……. 
 가만히 듣고 있던 여성분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에이, 선생님. 장난이 심하시다. 아니죠? 저 놀라게 하려고 하는 말이죠?” 믿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순간만큼, 아까까지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던 선생님조차 진지하게 말을 꺼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입니다.”

 여성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이내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진료실에서 그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숨소리조차 사라졌습니다.     


 위의 두 이야기는 학생 때 겪었던 사례입니다. 환자 정보를 누출하면 안 되기에, 완전히 각색했습니다. 학생 때 이 상황을 겪으면서,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자폐 장애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암과 폐경 사이 양자택일의 선택 과정을 어떻게 말해야하는 걸까? 나라면 어떻게 환자를 대했을까?  

   

 고민해봤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의사가 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네요.    


‘나쁜 소식 전하기’ 배우기 :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학생 때부터 ‘나쁜 소식 전하기’를 배웁니다. 환자 분이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느끼게 될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을 자세하게 배우죠. 환자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들을 보호자가 있는지 체크한 후, 검사 결과, 치료과정, 추가 검사 등에 대해서 말해야 함을 깨닫게 되죠. 그 과정 속에서 환자 분이 느낄 감정에 대해 배려해야 합니다. 궁금한 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치료과정으로 차분하게 이끌어야 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안 배운 것보단 배운 게 낫겠죠? 그러나, 배워도 어렵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단순히 아는 것, 아는 걸 행하는 것! 이 두 가지의 차이에 대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식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공감하고 동정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외과 전공의 훈련을 거쳐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한 나는 점점 쇠락해 가다가 죽음이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내게 그들을 도울 준비가 얼마나 안 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환자가 그 현실에 대처하도록 돕는 일은 우리 능력 밖의 일로 느껴졌다.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지도, 환자를 위로하지도, 적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환자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치료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다. 어쩌면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면서 말이다.    

 물론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이 비록 우리의 적일지는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이 진실을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진실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뿐 아니라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 내가 책임져야 할 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쁜 소식도 종류별로 다양합니다. 천차만별의 나쁜 소식 중에서도, 저는 암처럼 생명에 치명적인 소식을 전해본 적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보통은 고혈압, 당뇨 등의 질환에 대해서 진단하고 알려드리죠.     


 “혈압이 좋지 않습니다. 고혈압일 가능성이 큽니다.”, “혈당 조절이 잘 안 되시네요. 당뇨를 의심해봐야 할 듯합니다.”    

출처, Pixabay

 나쁜 소식을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의사 입장에선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게 어떤 종류의 나쁜 소식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입니다.      


나쁜 소식 ‘받기’ :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암입니다.” 이 말을 듣는 기분은 어떨까요? 제가 그 말을 듣는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네요. 하물며 0.0012퍼센트의 확률로 발생하는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때의 마음이 상상되나요? 

 서른여섯 살에 폐암에 걸릴 확률은 0.001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폴 칼라니티. 유망한 신경외과 의사였습니다. 나쁜 소식을 전달하던 그가, 이젠 받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폐암이란 이야기를 들은 후, 폴은 환자들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통해 그 때 느낀 바를 이야기 하죠.    


 의사는 병에 걸리는 느낌이 어떤지 추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11년 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도 나는 고통의 구체적인 느낌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의사였을 땐 행위의 주체이자 원인이었으나, 환자인 나는 그저 어떤 일을 당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일이란 두 개의 선로를 잘 연결해서 환자가 순조로운 기차 여행을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경외과 채송화 교수에게도 좋지 않은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밤에 일하다 찾아온 가슴 통증, 갑자기 잡히는 멍울로 병원에 내원한 채송화 교수. 그녀는 담당 의사로부터 악성이 의심되어 유방 조직 검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채송화 교수는 친구들 앞에선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떨었습니다. 두려워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친구 이익준은 “무조건 고쳐줄게”라며 다독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채송화 교수는 환자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죠.     


“무슨 병이든 낫게 해줄 거 같은 ‘무조건 고쳐줄게’. 이 말을 더더욱 하면 안 되겠다. 혹시나 결과가 안 좋으면, 정말 너무너무 절망할 거 같아.”    

 저는 아직까지 제 자신을 향한 직접적인 나쁜 소식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가끔 가족과 관련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죠.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듣게 되면 철렁합니다. 혈압이 조금이라도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온갖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19가 유행하고 있을 때, 감기 기운 있다는 말만 들어도 저도 모르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소식을 듣는 입장이 되니, 저 역시 냉정함을 유지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 어떤 종류의 나쁜 소식이던,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익숙해지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해야하는 의사 역시 나쁜 소식을 피할 순 없습니다. 환자처럼, 의사도 눈앞에 마주한 나쁜 소식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고요. 의사도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받아들이고 나서야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나쁜 소식 전하기, 그리고 받기 :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길 바랍니다.    


 나쁜 소식을 전하고, 때론 받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야 환자 분에게 덜 충격 가도록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고민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야 될 고민인 만큼, 지금으로선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딱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결심했습니다. 제가 나쁜 소식 직접 받았을 때의 상황을 계속 떠올리고 상상하면서, 환자와 대화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출처, Pixabay

 환자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하게 되면, 그 소식으로 인해 화내고, 울고, 현실을 부정하는 등 감정적 변화가 크게 일어날 겁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저 역시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렸을 테니까요. 

 대화를 통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같이 그 결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군가는 곁에 같이 있어주며 절 도와주기만을 바랄 테니까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습니다. 저 역시 힘든 일을 겪으면, 누군가 이해해주기만 해도 조금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의 양성우 내과 선생님처럼, 제가 아는 그 모든 것을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여, 앞으로 환자 분이 걸어야 할 길을 조금이라도 상세하게 그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단, 내가 환자 분들의 입장이면 어떤 기분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들지 늘 상기하면서 말입니다.       

출처, Pixabay

 저는 초보의사입니다. 심지어 사회생활이 한참 부족한 사회초년생이기도 하고요. 그런 저에게 있어,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일은 여전히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계속 말해보고자합니다.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제 자신을 그리면서 말이죠.  

  

 나쁜 소식 받았을 때의 제 자신을 떠올리며, 오늘도 환자 분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네이버 주소 : https://blog.naver.com/kc2495/222130013657

                

참고 자료

1.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 2020
- 1화, 5화, 6화 -

2.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 부키 / 2015

3. 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니티 / 흐름출판 / 2016

4.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 양성우 / 허밍버드 / 2020
작가의 이전글 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