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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Sep 12. 2022

누아르 영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 프롤로그     


 2019년 8월 17일 월요일,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광화문 집회 직후, 코로나19 확진이 많이 나오던 때라, 코로나19 선별검사를 수없이 반복했다. 코와 입을 찌르는 업무를 얼마나 했는지 세는 것조차 포기할 정도로,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모를 만큼(?) 계속 같은 일을 하고, 또다시 했을 뿐이다. 동시에 자가 격리의 필요성을 목이 쉬도록 말하였고.     


 코로나19 관련 정책이 매번 바뀌던 걸 고려하면, 당시 코로나19 자가 격리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확진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만큼, 검사는 필수다. 그리고 확진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했는지 여부 또한 중요하다. 확진된 이와 접촉하였는데 검사 결과가 양성이다? 2주 자가 격리가 필수였던 때다. 아무리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왔다 하더라도, 확진된 사람과 밀접 접촉을 했다면, 그 역시 2주간 자가 격리다. 직접 접촉자가 아닌데 결과가 음성이 나왔을 때만 자가 격리에서 곧바로 벗어나게 된다. 현재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게 느껴지지 않는가?

격리 / 출처, Pixabay

 그때 찾아온 X씨 역시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였던 이다. 그곳에 다녀온 이들 중 수많은 확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점차 퍼져나갔고, 그 소식을 접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X의 지인이었다. X가 확진되었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지인은 그를 설득하여 선별진료소까지 같이 오게 되었던 거다.       


2. 내부자들      


 8월의 뜨거운 열기를 가득 품은 컨테이너 안에서 방호복을 입고 수없이 땀 흘리던 나는 X와 마주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자가 격리에 관련된 설명을 기본적으로 한 후, 물어봤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X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아무 말도 없었다. 이윽고, 서류로 향해 있던 나의 눈은 X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웃는 것도 아니었고, 슬퍼 보이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X가 컨테이너에 들어온 과정을 상기했다. 그는 지인과 함께 왔다. 어떻게 왔냐고 묻는 나의 말에, 광화문 집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던 건 X의 지인이었다. 설명을 다 한 지인이 이곳을 나간 후, X에게 격리 설명과 함께 성함을 물어본 상태였다. 돌이켜보니, X는 이곳에 온 이후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직감했다. 뭔 일이 생겨도 생기리라.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마조마하면서도, X를 줄곧 기다렸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지만, 흐르는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느리고 또 느렸다. 더위 때문일까? 단 1분도 10분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1시간과도 같았던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나? X의 입이 열리며,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때, 그가 던진 말을 지금까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너 같은 개, 돼지에겐”

 “내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   

 그 말과 동시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X!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하여 달려갔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백윤식 배우가 말한 대사가 떠올랐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출처, 영화 [내부자들]

 영화에서 쓸 줄 알았던 대사를 직접적으로 때려 맞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신적인 타격을 생각보다 크게 입었기에, 그가 사라졌든 말든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3. 추격자     


 당황했던 시간이 꽤 길었다. 이성이 돌아왔을 때쯤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19 확진 가능성도 있는데, 검사받지 않고 도망을? 그로 인해 일이 더 커진다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더라. 이후, 선별진료소 옆에 위치한 보건소 사무실에 긴급하게 연락하여, 이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장르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영화 [추격자]로.     

출처, 영화 [추격자]

 그때의 날씨는 지금이야 뜨겁다고 압축해서 말한다만, 사실은 폭염 수준의 열기를 푹푹 뿜어내던 날이었다. 그런 날은 밖에서 숨 쉬는 것조차 고역이지 않은가? 거기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불쾌 지수는 배로 커질 거다. 심지어 뛴다면? 폭염 아래, 밖에서 뛰는 건 사실상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진짜 쓰러질 수도 있으니깐.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X를 다시 선별진료소로 데리고 가야 했던 만큼, 그 미친 선택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면?     


 달리면서 X를 추격하던 이들, 도망칠 방향을 예측하는 브레인들. 차를 타고 앞질러 가 매복하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잡으려고 오는 공무원들을 피해 도망치는 X.     


 누군가는 쓰러질지도 모를 덥디 더운 8월의 낮에 영화 [추격자]가 전라남도 순천에서 벌어졌다.      

출처, 영화 [추격자]


4.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 미친 짓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잡았을까? 아니면 놓쳤을까?     

 다행히도, X는 선별진료소로 다시 왔다. 물론 자발적인 게 아니라, 강제로. 그런 X를 향해, 나는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고 검사하고 싶겠습니까. 상황이 상황이니깐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자가 격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하고 싶다고 안 하면, 앞으로 누가 지킵니까?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아도 따라야 합니다.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이지만, 그런데도 현 상황에선 이런 강제성이 부여될 수밖에 없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출처,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그렇게 설득을 반복한 끝에, X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인마 느그 소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으!”

“같이 밥 묵고 으!”

“싸우나도 같이 가고 으!” 

“마 개O꺄”

     “마 다했으!”     

출처,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아마 그 자리 즉시 112를 눌렀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드디어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 성함조차도 거짓이라는 걸 같이 온 지인을 통해 확인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게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나서, 드디어 검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땐 컨테이너가 떠나가듯 진짜 크게 소리를 지르시더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직전에 검사했던 7살 아이들보다도 더 큰 데시벨로, 고함을 외쳐댔다. 

     

 당시 X의 비명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을 떠올리게 하더라. 주인공 최익현(배우 최민식)이 경찰들을 상대로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이라고 자신 있게, 당차게 외치던 그 목소리랑 데시벨이 같았다고나 할까? 비록 대사는 달랐지만, 그 느낌은 비슷했다. 분명히 말이다.     

출처,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5. 결말     


 X의 코로나19 선별검사 결과는? 결국 음성이었다. 심지어 직접 접촉자도 아니라는 게 나중에야 밝혀졌다. X는 자가 격리 대상자도 아니었던 셈이다.     


 온종일 진행되었던 명작 영화들의 허무한 마무리였다. 


 설명 5분, 신상정보 작성 5분, 검사 5분, 총 15분이었으면 끝났을 일이 하루 내내 이루어졌고, 그 결과마저도 허망하였기에, 손익분기점도 넘길 수 없는 영화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부디, 현실에서는 영화 같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길 바란다. 영화는 오직 영화로만 머무르자. 제발. 이렇게 의미 없는 영화가 될 바엔 말이다.

출처, Pixbay


참고 자료 : 순천시 보건소코로나19 검사 안받고 도주한 60대 남성 추격전 (tjne.kr)

http://tjne.kr/news/view.php?idx=14490&key_idx=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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