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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Sep 29. 2022

그때 알았어야 했다. 질긴 악연이 될 거라는 걸 - 1

 

"이놈 불러와!!!!!!"


 담임선생님의 분노를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이다. 중학교 2학년, 15살이었던 그때의 추억은 지금까지도 새록새록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왜냐고? 우리 반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기에! 목소리가 너무 커서 조금만 입을 열어도 시끄러웠던 놈, 에너지가 넘쳐서 복도를 그렇게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는 녀석, 선생님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는 친구, 수다쟁이는 꽤 있었던 건 당연하고, 남이 하는 이야기는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자식까지…….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에 아이스크림, 치킨 등등 패스트푸드 식당에 있는 모든 메뉴를 합친 종합세트라고나 할까? 그 세트, 진짜 비싸긴 하겠다. 하여튼, 개개인의 특성이 그만큼 강렬했던 반이다. 거기다 혈기 왕성한 나이의 아이들을 한 반에다 몰아넣었으니! 매일매일 뜨거운 열기가 넘쳐흘렀다. 그 뜨거움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던 건 우리 선생님이었고.     

교실, 그리고 아이들 / 출처, Pixabay

 그런데 이해가 잘 안 가는 상황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데리고 오라고 한 녀석은 사고 치거나 말썽 피우는 쪽에 속하는 녀석은 아니었던 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나 역시 궁금해지던 찰나였다.      


 반장이었던 내가 그 녀석을 선생님 앞으로 데려갔을 때,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외쳤기 때문에.     

 “야! 편지에 왜 이렇게 썼어?”     




 이 모든 걸 이해하려면 1시간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학교에서 어버이날 편지 쓰기를 진행하던 무렵이다. 한 시간을 통째로 투자하여 행사를 진행하였으나, 학생들이 편지에 손도 못 대는 갑갑함에 직면했다. 시간은 마냥 흐르는데, 편지는 써야 하고……. 지지부진한 지금을 타파하고자 담임선생님이 통 크게 제안했다.

 “애들아, 제발 좀 편지 쓰자. 선생님이 내용 절대 안 볼 거니깐, 뭐라도 편하게 좀 적어봐.”

 “나는 그냥 주소를 통해서 보내기만 할게. 알겠니?”   

편지 / 출처, Pixabay

 그 말과 함께, 다들 편지에 매달리더라. 어떻게든 써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단 한 명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바로 K다. 이 친구는 부모님께 할 말이 정말로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친구들이 편지를 마무리할 무렵에야, 편지지를 붙들어 매고 과감하게 써 내려갔다. 일필휘지 그 자체! 망설임 따윈 없었다. 옆에서 봤을 땐, 한석봉 선생님보다 더 명필가(?)처럼 보였으니까. 어떤 내용을 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모든 게 어떻게든 잘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 선생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담임선생님은 늘 걱정이 많으셨다. 온갖 특징을 가진 아이들의 총 집합체였던 우리 반을 맡으면서, 주름살이 세 개 정도 더 늘어나셨던 걸 고려하면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여태까지의 전적(?)을 미루어보아, 선생님은 마냥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아이들이 쓴 편지들을 하나둘 보기 시작했다. 본인이 했던 말을 어기면서까지 말이다. 그러다 딱 걸린 거다! K의 편지가!    

 

 반장이라는 권력을 남용한(?) 덕분에 알게 된 편지의 내용을 여기다 밝혀보도록 하겠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머니라는 호칭이 어색한 걸 보니, 편지를 쓰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긴 한가 봐요.
선생님이 어버이날이라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니까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볼게요.     

우리 담임선생님은 정말 화려해요. 옷이랑 목걸이가 다른 담임선생님들이랑은 차원이 달라요. 화장도 정말 진하세요. 손톱으로 긁어보면 그 두께가 1cm는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분이세요.     

(중략)     

그래도 어버이날이니 감사해요.
이 정도면 많이 채운 것 같으니 이만 줄일게요.     


 선생님께서 왜 분노(?)하셨는지 그 답을 알았으리라 판단하겠다.    

 

 하여튼, 이 K라는 놈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이전부터 알고 있긴 했다. 과학 탐구반이라는 동아리를 같이하던 당시, 개구리 해부, 상어 해부하면서 눈이 돌아갈 정도로 신나게 해부하고, 그 구조까지 다 외울 때부터 남다르다고 여기긴 했다. 

 중학교 때 발사나무로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제출함으로써 개최 2년 만에 해당 대회를 없애기도 했다. 머리가 정말 비상하지 않은가? 

 호기심이 많은 나머지, 굳이 하지 말라는 건 다 했는데, 그 모든 게 과하게 넘쳐 터지는 열정 탓이다. 학교 축제하는 동안, 과학 탐구반에서 솜사탕 만들기를 담당했다. 축제 전부터 밤새 학교에 남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일지 눈에 불을 켜고 방법을 분석하던 녀석이다. 실제로 그걸 해내기도 했고!

 물론 좀 특이하기도 하다. 수학여행 때 으슥한 밤에 숨바꼭질할 당시, 다들 철저하게 숨어있어서 못 찾았다. 근데 K 이놈만은 예외였다. 혼자서 욕조에 들어가서 숨어있던 거다. 못 찾는 척하기도 힘들었다. 친구야…….     

특이했던 내 친구, 14살 때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 가장 왼쪽!


 사실, 선생님이 잘했다고 보긴 어렵다. 편지 안 보겠다고 엄포하셔놓곤, 결국 확인하셨으니깐! 편지 내용 때문에 분노(?)하는 웃픈 상황을 만드셨지만, 담임선생님의 편에 서서 변호하기는 어렵다. 아쉽게도 말이다. 

 뭐 물론, 그렇다고 이놈이 잘했다는 건 또 아니다. 옹호할 생각조차 없다. 하지만, 난 이 녀석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말이다. 학교에 대한 반항심이 컸던 나로서는, 이렇게 과감하게 들이박는(?) K가 너무나도 좋았다.     


 그때였다. K와 제대로 친구 하고 싶다고 결심했던 시점이.

 그리고 그땐 몰랐다. 질기고 질겨서 절대 끊어지지 않는 악연의 시작이 이때부터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만약 누군가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그의 진정한 친구임을 확신시켜라.     

If you would win a man to your cause, first convince him that you are his sincere friend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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