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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06. 2022

그때 알았어야 했다. 질긴 악연이 될 거라는 걸 - 2


 춘추전국시대에 대해 아는가? 중국의 역사와 관련 있는 내용으로, 중국의 큰 땅이 7개의 나라로 나눠진 시절이 존재했다. 진, 위, 조, 연, 제, 한, 초. 그 당시 이들을 전국 7웅이라고 칭했다. 치열한 싸움 끝에, 7웅 중에서의 승자는 진나라였고, 전국 통일을 이루어낸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진시황이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 중학교 때였다. 반항심과 불만이 그 누구보다 가득했던 나는 늘 많은 불평을 했다.       


 아니, 머리 좀 기르는 게 뭐가 문제야? 

 왜 이렇게 학칙에 구애받아야 해?

 뭘 이리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도대체 왜?     


 불평불만의 덩어리로 똘똘 뭉쳤던 나는 진심으로 결심했다. 학교를 바꾸고 싶다고. 그리고 부모님께 찾아가 말했다.       


 “저 회장 선거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간 중학교 회장 선거! 아니 그런데, 그 해 하필이면 나를 포함하여 7명의 회장 후보가 나왔다. 어땠겠는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전국 7웅의 싸움과도 같지 않았을까?

 아침 일찍 교문 앞에 서서 홍보하고, 쉬는 시간마다 모든 반을 돌며 (당시에 학생이 많아 모든 학년을 합해서 36개의 반이 존재했다) 회장 공약을 언급했다.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였고. 급식실 앞에서 밥 먹고자 기다리는 학생들을 향해 뽑아달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선거 / 출처, Pixabay

 시간이 흘러, 회장 선거의 꽃이었던 연설 시간이 다가왔다. 두근두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네? 학교의 규정상, 찬조 연설자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즉, 나를 지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내가 말하는 건 물론이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 중 한 명 역시 연설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찬조 연설자로 누구를 할까 고민하던 와중,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


 누구냐고? 매우 솔직했던 그 녀석! 편지를 너무 진솔하게 쓴 나머지, 선생님께 혼났던 그놈 말이다. 바로 K다.


https://brunch.co.kr/@kc2495/67


 이 녀석이라면 바로 합격이다. 나의 혁명적(?)인 생각과 잘 맞고. 또, 말도 잘하니깐 찬조 연설도 분명 잘하겠지. 통과의 의미로 목걸이라도 걸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줄이야.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거 못해……. 겁나. 안 할 거야!”     


 그렇다고 이 녀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만약을 대비해서 마련했던 비장(?)의 카드를 제시했다.      


 “찬조 연설하면, 내가 바람의 나라 캐시 2만 원어치 충전해줄게”

 “OK."      

협상 완료 / 출처, Pixabay

 생각보다 순진(?)했던 내 친구는, 이 제안을 곧바로 수용했다. 그렇게 나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말았으니! 참고로 오해하면 안 된다. 그 당시는 2007년이다. 김영란 법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글을 읽고 신고하는 불상사가 생기질 않길 바란다.     


 하지만 그때까지 몰랐다. 나도, 그리고 K도. 찬조 연설자가 연설한 후에, 후보자가 연설한다는 걸. 회장 후보 1번부터 7번 중에 내가 1번이었기에, 14명 중 가장 먼저 무대에 서야 하는 이가 바로 K라는 사실 말이다. 바람의 나라 캐시 2만 원에 나를 지지하겠다고 했던 친구는, 덕분에 엄청난 무게감을 견디는 극한 경험을 체험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조금은 미안하다. 매우 조금 말이다. 한, 물방울 하나보다 더 작은 정도로? 다시 생각해보니, 미안하긴 했던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네!     

흐릿하지만, 그 때 당시의 모습들

 하여튼, K는 멋진 연설을 해줬고, 그 덕에 당선의 길로 들어섰다. 근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후에 주기로 했던 2만 원에 대해 아예 까먹었다. 준다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둘 다 말이다. 친구는 첫 번째로 연설했던 충격 때문에 일시적인 기억 상실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걸 떠올리게 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이제야 이걸 기억하다니, 정말 놀랍다. 놀라워! 평생 까먹고 있어야 했는데…….     


 우리의 질기고 질긴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땐, 친구는 고등학교 들어갔다가 음악을 위해 자퇴했다. 대학교에 들어갔던 무렵, K는 음악을 포기하고 방황하다가, 유랑 여행 버스를 타고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대학원을 준비하는 동안, 여행비용 마련을 위해 농사 아르바이트를 했던 K! 하루 일당 시급 2만 원(바람의 나라 캐시도 2만 원이었는데, 이쯤 되면 2만 원과 큰 인연이?) 받고 나서야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윽고 수능 공부에 돌입했다. 공부가 가장 쉬웠던 거 같다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의사, 친구는 한의사가 되었다. 의대생, 한의대생 시절에 강연팀 [이야기 한 잔]을 같이 시작했고, 어느덧 6년 차다. 1년 전, K의 결혼 사회를 내가 맡기도 했으니!     

지금까지도 질긴 악연은 계속 된다!!!

 서로의 삶이 달라 멀어질 법도 한데, 찬조 연설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어느 것보다도 단단한 악연이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각자의 길이 달랐음에도, 우리의 연을 이어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때 주지 않았던 바람의 나라 캐시 2만 원 때문이라 여긴다. 안 주길 잘했다.     


 회장 선거 때 알았어야 했다. 질기고 질긴 악연이 될 거라는 걸.

 그래도 이 인연, 이왕이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100살 먹었을 때도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뭐 대략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 : 그때 기억나냐?

K : 뭐?

나 : 그거 있잖냐!

K : 뭐 말하냐. 하도 많아서 모르겠다.

나 : 회장 선거!

K : 아! 바람의 나라 캐시? 그거 도대체 언제 줄 거냐?

나 : 음……. 다음 생에도 친구 하면 줄게.

K : ??? 이눔이 ???                         


친구란 무엇인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What is a friend? A single soul dwelling in two bodies.

아리스토텔레스


ps. 친구에게 그때 까먹었던 2만 원을 주겠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친구가 말했다.

“이왕 받을 거 이자 50%로 해서, 복리 70년으로 해서 받을게. 70년 뒤에 주면 됨!”

연설 한 번 시켰다가 연금 주게 생겼다. 이놈의 질긴 악연!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계산해서 저한테 좀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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