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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Mar 09. 2023

프롤로그 - 제2의 DNA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 nucleic acid). 이걸 줄이면 바로 DNA다. 이중 나선 구조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이 화학 물질은 아주 오랜 시절부터 생명체에서 또 다른 생명체로 전달되었다. 그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유전 정보들이 도달하게 되었고, 각자 지니고 있던 화학 물질 결합으로 인해 나라는 한 개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DNA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녀석 덕분에 지금의 나는 30년 살짝 넘는 인생을 잘 살아오고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전달될 예정인 DNA 말고도, 나는 제2의 DNA를 지니고 있다. 무슨 헛소리지? 그렇게 여기고서 글 읽는 걸 중단하는 사태가 없길 바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말하자면, 방탄소년단의 [DNA]는 절대 아니다. 썩은 개그 역시 사죄드린다. 하여튼 그건 정답이 아니고! 유전 정보만큼 내 몸에 깊게 새겨진 또 다른 디옥시리보핵산은 바로 야구다. 좀 더 정확히는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DNA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수없이 말씀하셨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의 분투 덕분에 4승 1패라는 결과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했다고. 그 시절의 자이언츠 이야기를 반복하며, 지금의 롯데와 비교한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엄청 못하지!” 


 그 당시엔, 인터넷 예약 따윈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줄 서서 야구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랬기에 온갖 사람들을 마주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자 밤새 줄 서 있거나, 심지어 텐트를 치고 야구장 앞에서 잠을 이루는 이들까지 말이다. 참고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혹독하고도 어려운 기다림을 묵묵히 이겨내고 경기 보기 좋은 관람석을 차지하여 롯데의 첫 우승을 직접 보셨다고 하니, 두 분의 야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알겠는가?      

   


 1992년 부산 출신으로, 롯데 자이언츠 골수팬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했다. 시작은 분명히 타의였다.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야구장에 자주 갔으며. TV로도 경기를 많이 보기도 했으니깐. 기억도 안 나는 나의 어린 시절엔, 마트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 선수에게 사인까지 받았다고 하니, 야구에 대한 조기 교육이 매우 강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대치동 교육 열기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 덕분에, 시작은 미비했지만, 끝은 창대한 야구 골수팬으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 어머니가 마주했다는 우승을 나 역시 목격했다고 한다. 진짜일까? 나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정말로 봤을지도 모른다. 1992년생이고, 심지어 4월생이기에, 그해에 이루어진 두 번째 우승을 부모님과 함께 TV로 시청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그 부분에 대해선 기억나는 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정말 어쩌면, 나 역시 직접 두 눈(?)으로 최종 우승을 목격했기에 나의 제2의 DNA인 야구 유전자가 더욱더 견고해졌을지도.     



 1992년 이후로 롯데 자이언츠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긴 했지만, 우승 경력은 더 이상 없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의 야구 구단은 나에게 있어 여러 의미를 가진다.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 싫어하나 사랑하는, 혈압을 오르게 만드나, 도파민마저 분비해 실컷 웃게 만든다고나 할까?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야구장의 분위기가 나를 설레게 만든다. 야구장 위가 확 뚫려 있으니 맑은 하늘을 구경하기도 좋고, 관중들이 모여서 다 같이 응원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사랑한다. 상대 팀을 향해 “마!”라고 외치며 대동단결하는 그 순간도 나름 신난다. 물론 그렇게 하고 나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건 조금의 양심이 있긴 하다는 뜻이겠지? 그러다가도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해버리거나, 수비 실수를 하는 등의 기운 빠지는 순간을 목격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정말 죽도록 미워하게 되며, 다시는 야구 따윈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가득해진다. 가끔은 젊은 나이에 혈압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도 있을 정도로 목덜미를 부여잡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홈런을 때리고,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승리를 거두면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때는 이전의 부정적 감정이 싹 사라져버린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곤 하나, 이렇게까지 금방 잊어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선천적 환경으로 인해 단단해진 야구 DNA는, 경기장에서 두 눈으로 마주하는 관람이라는 후천적인 요소 덕분에 더욱 확고해져만 가는 듯하다.     


 이 글은 주식의 빨간 곡선과 파란 곡선을 오가듯 감정의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하는 롯데 자이언츠 DNA를 가진, 부산 야구에 뼈를 묻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골수팬의 아들이 쓰는, 어릴 때 아마도 롯데의 우승을 목격했으나 죽기 전까지 과연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소원을 하나 빌 수 있다면 로또 1등보다도 롯데 자이언츠 우승을 바라는 한 팬이 쓰는 이야기다.    

 

 읽기 전, 주의할 점이 있다.   

  

1. 롯데를 사랑하는 사람이 쓰는 글이다. 기억하자.

2. 사랑에는 예뻐하는 것만 포함되진 않는다. 미워하기도 하고, 가끔은 싫어하기도 하는, 격한 사랑 때문에 분노도 생길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하고 봐야 한다.

3. 경기에 관해서 이야기할 땐, 직관 때의 기억과 KBO 홈페이지의 하이라이트 및 경기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점 감안해주길 바란다.     


 위의 내용들을 참고하고, 봐준다면 감사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 진짜 엄청 미워하지만, 억수로 사랑한디!     

 그러니깐 우승 한 번 가즈아!!! 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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