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도쿄에서 홋카이도를 갈 생각을 했을까.
월에 제주항공이 도쿄 나리타 취항 1주년 이벤트로 편도 항공운임 500원짜리 표를 내놓은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취항 기념 이벤트로 왕복 500원짜리 이벤트를 했으니 그 연장이었죠. 유류세와 공항 이용료 등을 더해 왕복 10만 900원이라는 헐값에 도쿄표가 나왔습니다. 비행기마다 빼놓은 이벤트 용으로 빼놓은 좌석이 이벤트가 시작하자마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로그인하는 사이에 처음 봐 둔 표의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앞 뒤 안 가리고 자리가 나는 시간으로 무조건 예약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7월 10일 3시 5분에 출발해서 7월 16일 11시 50분에 돌아오는 표를 끊은 뒤였습니다. 이렇게 싸게 끊으면 왠지 돈 버는 것 같은 만족감이 드는데, 만족감이 사그러 들고 보니 도쿄에서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더군요....... 제가 워낙 도쿄 풋내기라서.
저도 첫 번째 일본 여행은 당연히 도쿄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일본에 몇 번을 다녀왔는지 셀 수도 없지만, 도쿄를 들린 것은 막상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행기 삯이 저렴한 오사카를 자주 가게 되니까 굳이 도쿄를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쿄 여행을 할까 했는데, 도쿄에서 일주일 씩이나 뭘 해야 할지 감이 안옵니다. 물론 도쿄에서 먹고 마시며 일주일 보내기에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런데 도쿄보다 훨씬 매력적인 곳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7월 초의 후라노입니다.
홋카이도 후라노는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후라노를 대표하는 라벤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후라노 하면 바로 떠오르는 라벤더는 꽃이 피는 기간이 워낙 짧아서 만개하는 7월 초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아쉬웠는데, 그걸 생각하고 7월 초순에 표를 끊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딱 후라노 라벤더 철이었습니다.
물론 도쿄에서 후라노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난관이 있지만, 혼슈로 들어가서 홋카이도를 찾는 것이 처음도 아닙니다.
2007년 여름에 도쿄로 들어가서 나고야로 돌아오는 표를 끊어서 JR패스를 이용해서 홋카이도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삿포로 직항 편이 적었던 시절이라 왕복 항공권이 가볍게 70만 원을 넘어가길래. 그럴 거면 차라리 제일 싼 표를 찾아 홋카이도까지 JR패스로 달리겠다고 마음먹고 강행군을 했지요. 추억이 가득한 여행이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여행은 안 한다고 다짐할 정도로 험난한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허리에 안 좋았습니다.
오사카에 비하면 도쿄가 홋카이도에 훨씬 가깝고, 그 때는 개통되지 않았던 토후쿠 신칸센도 개통해서 삿포로까지 한 번만 갈아타면 됩니다. 이 정도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결심한 시점에서 이번에도 허리를 부여잡고 엄살을 부리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요.
홋카이도 내에서도 어차피 열차로 이동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JR패스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홋카이도 JR패스 7 일권도 22,630엔이니 29,110엔의 JR 패스도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닙니다. 야간열차의 추억을 떠올리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지만 야간열차를 이용하면 숙박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야간 열차는 모두 사라졌지만 혼슈에서 출발하는 하마나스에는 아직 밤 늦게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일찍 도착하는 야간 열차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번 여행의 테마를 자전거+열차로 잡고 싶었습니다. 비록 오키나와에 스트라이다를 묻고 왔지만 요즘 자전거 여행이 끌립니다. 자전거만 이용해서 홋카이도를 한 바퀴 돌면 참 좋겠지만 그건 무리고, 오키나와에서 처럼 접는 자전거를 들고 가서 먼 거리는 JR패스를 이용해서 여행하는 이동하는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접는 자전거로 친구의 브롬톤을 빌리고 그걸 포장할 수 있는 비닐 가방을 수소문해서 구해서 자전거+열차 여행을 위한 만전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물론 자전거로 여행에 맞춰 짐도 최대한으로 줄였습니다. 브롬톤으로 수화물이 꽉 차기 때문이죠...
그렇게 일정을 맞추는데, 생각처럼 일정이 잡히지 않더군요. 일주일이라고 해도 앞 뒤로 하루씩 빠지는 게 큽니다. JR패스의 힘을 빌려도 넓은 홋카이도의 대지를 둘러보는데 5일은 너무 짧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전만 아니었어도 홋카이도에서 바로 공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멀리 떨어진 나리타 공항이 원망스럽군요.
그래서 목표를 후라노, 오비히로, 요이치로 잡고 아쉽게도 네무로는 내쳐버렸습니다. 꽁치롤... 게... 에스카롯프....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하면서도 네무로를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곘습니다.
여행박사에서 JR 패스 교환권도 구매하고 하나하나 여행 준비를 끝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 그 놈의 너구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