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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Jul 01. 2015

도쿄 거쳐 홋카이도 2014 7월 (2)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홋카이도 여행에서 태풍을 걱정한다는 것은 오키나와 여행에 폭설을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있을 수 없지요. 남쪽 바다에서 태어난 태풍은 홋카이도까지 올라오기 전에 우리나라나 태평양으로 진로를 틀거나 막상 홋카이도까지 올라와도 위력은 많이 사그라들기 마련입니다. 장마와 태풍 걱정이 없다는 것이 홋카이도 여름 여행의 제일 큰 매력일 정도이지요.


그런데 7월 4일에 괌 인근에서 발생한 8호 태풍 너구리가 제 출발이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으로 접근합니다. 여러 나라가 제출한 140개의 태풍 이름 중에 마침 한국이 제출한 너구리라는 이름이 붙은 8호 태풍은 라면이 생각나는 이름과는 달리 중심기압 925헥토파스칼 최대 풍속 초속 70미터의 강력한 태풍으로 올라오는 경로도 마치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규슈로 타고 올라오는 일본 직격 코스였습니다. 태풍이 너무 자주 올라와서 태풍 경보를 울리지 않는다는 오키나와에 대피 권고가 내려졌을 정도니 그 규모를 알만 하지요.

한국 이름 붙은 태풍이 독하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피해가 너무 큰 태풍 이름을 퇴출시키는데 한국에서 붙인 이름 중에 수달하고 나비가  퇴출됐습니다. 몇 년전 필리핀을 강타한 메기는 북한이 붙인 이름이었는데 역시 퇴출되었죠. 너구리도 이대로 위력을 유지하다 보면  퇴출될 정도로 강력한 태풍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강력한 태풍도 홋카이도까지 올라올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홋카이도가 아니라 도쿄와 홋카이도까지의 열차 운행이었습니다. 도쿄에서 열차를 타고 홋카이도로 출발하려는 시간이 딱 너구리가 도쿄에 상륙하는 11일 오전이더군요. 너구리가 빠른가 신칸센이 빠른가 경주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신칸센이 불리합니다. 거기다 일본 있는 친구가 아키타 쪽에서 측풍 때문에 신칸센이 멈춰 고립된 경험담을 이야기를 해주는데, 4시간 동안 통화권 이탈이었다는 이야기에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문제는 이것 뿐이 아니라, 너구리를 피해 다행히 홋카이도까지 올라갔다고 해도 너구리가 철로를 끊어 놓으면 홋카이도에서 발이 묶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출발하기 전날까지 너구리의 진로가 여행 일정을 비껴 가기를 간절히 기원했지만, 그런 기원을 비웃듯이 오키나와에 큰 피해를 입히고 기세 등등하게 큐슈로 상륙하더군요. 한국은 제주도에 큰 비가 내린 정도로 끝이었지만 너구리의 진로를 살피기 위해 틀어 놓은 일본 방송에서는 태풍 관련 속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붕이 아니라 건물이 날아간 오키나와 뉴스를 보고  홋카이도행을 포기했습니다.

태풍 때문에 아슬아슬한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닌데, 하나만 삐끗해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도쿄에서 태풍과 놀기로 마음먹고 일단 자전거부터 포기했습니다. 도쿄에서도 자전거가 있는면 좋겠지만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역시 무리겠죠. 숙소도 다시 예약했는데 오사카라면 싱글에서 잘 수 있는 요금으로는 도쿄에선 캡슐 호텔도 어렵더군요. 6박 모두 캡슐 호텔인데도 숙박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쿄에서만 돌아다닌다고 하면 이미 끊어 놓은 JR패스 교환권도 문제입니다. JR패스는 한국에서 교환권을 구매해서 일본에 가서 JR패스로 바꿔야 하는데, 바꿀 수 있는 기한이 구입 후 3개월로 정해져 있습니다. 3개월 안에 일본을 다시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일주일이나 일정을 빼서 JR패스로 어딜 돌아다녀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요. 어쨌든 JR패스는 킵 해놓을 수 있으니까 넘어가고.

따로 포장해 놓은 자전거 대신 캐리어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채워 넣기 시작합니다. 원래 자전거 여행을 위해 최대한 짐을 줄였다가 갑자기 캐리어로 바꾸니 뭘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빼놓은  노트북부터 넣고,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니 슬리퍼도 하나 넣고, 이것 저것 넣기 시작하는데 너구리가 원망스러워지고 그렇습니다.

너구리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은, 이번 여행에 너구리는 예정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홋카이도행을 접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출발 이틀 전에 삿포로 근처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진이 무섭다기 보다는 지진 때문에 철로가 점검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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