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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Dec 07. 2022

컵누들을 알린 역사적 사건

56/100

다큐 '프로젝트 X 컵누들 편'을 보면 우열곡절 끝에 개발한 컵누들을 1971년에 발매한 뒤 긴자 보행자 천국에서 하루에 2만개 씩 팔면서 홍보에 성공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컵누들이 당시에 화제였던 긴자 보행자 천국의 시범 판매대에서 불티나게 팔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판매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봉지 라멘이 25엔인데 100엔씩이나 하는 가격도 문제였지만, 70년대 초는 아직 인스턴트 요리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가 없었던 시절이었고, 컵누들은 소비자의 요구로 탄생한 상품이 아니라 안도 모모후쿠 회장의 '이런 것이 앞으로 팔릴 것이다'라는 비전으로 탄생한 상품이었다.

소매점에서 찾지 않는 컵누들을 팔기 위해 닛신 식품들의 영업사원들이 판로를 뚫기 위해 동분서주 했고, 그 결과 야근과 당직이 많은 자위대, 경찰서, 소방서 등 뜨거운 물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컵누들을 직접 유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말로 컵누들이 전국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바로 1972년의 아사마 산장 사건이었다.

1972년 2월 19일부터 28일까지 일본 나가노현 카루이자와의 아사마 산장에서 벌어진 일본 극좌 단체 연합적군이 일으킨 인질극으로 3천명의 경찰을 동원하고 경찰 측에서만 2명의 사망자와 26명의 중경상자가 나온 사건이었다. 이사건이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사건의 전말이 TV 중계 방송을 통해 중계되었으며 89%의 시청률이 나온 일본 전국민의 눈이 집중된 매스미디어의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매스미디어의 중심에 컵누들이 있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열흘 동안 인질극이 벌어졌고 3천명의 경찰 병력이 동원되었는데, 아사마 산장이 위치한 카루이자와는 그 3천명의 경찰을 먹일 수 있는 인프라는 거의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때는 2월, 영화 15도의 나가노 산속은 근처 산장이나 산막에서 준비한 도시락이 얼어붙기 충분한 날씨였다. 게다가 돌입을 위한 루트를 뚫기 위해 고압 살수차가 동원되었기 때문에 한 겨울에 홀딱 젖어 얼어 붙을 것 같았다.

그런 경찰에게 그나마 온기를 준 것이 바로 얼마 전부터 경찰에 공급된 컵누들이었다. 원래 야근 당직자를 위한 야식 목적으로 구매했는데, 뜨거운 물만 부우면 다른 준비 없이 먹을 수 있는 컵누들은 아사마 산장에 배치된 경찰 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모든 미디어는 아사마 산장의 대시 상황을 실황 중계 중이었고, 그 일본인의 전국민의 눈이 몰린 대치 현장에서 경찰들이 먹는 뜨거운 김이 펄펄 피어오르는 국수는 사람들의 눈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인스턴트 컵 라멘의 '편리함'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긴자 보행자 천국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지만 매출로는 이어지지 않은 컵누들이었지만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인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어 컵누들의 편리함에 눈 뜬 사람들이 찾기시작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일본 경찰의 관료제 병폐가 폭발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건인데, 영화 '돌입하라 아사마 산장 사건'(2002)의 경우에는 그런 일본 경찰의 삽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정도였다. 특히 현지의 나가노 현경과 도쿄에서 지원으로 내려온 도쿄 경시청과의 알력 다툼으로 인한 혼란은 사건 해결에 열흘인 걸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심지어 이 알력 다툼은 컵누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도쿄의 경시청이 현장에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컵누들을 증식용으로 정가인 100엔보다 저렴한 50엔에 도쿄 경시청 소속들에게 파는 것을 본 나가노 현경에서도 구매를 요청했지만. 같은 경찰이지만 지휘 라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팔지 않은 것. 결국 우열곡절 끝에 나가노 현경에게도 팔기 시작했지만 경시청 소속에게 파는 가격보다 비싼 70엔을 받아서 다시 구설수에 올랐고, 물을 끓일 수 있는 키친카 때문에도 또 경시청과 나가노 현경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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