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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Apr 14. 2024

고교얄개(1976)에 비친 서울

70년대 영화로 보는 70년대.

석래명 감독의 1976년 작품 고교 얄개. 조흔파 선생의 유명한 소설인 '얄개전'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1970년대를 풍미한 '하이틴 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고교얄개를 시작으로 70년대 고교 우량아, 얄개 행진곡, 여고 얄개 등등의 하이틴 영화가 반짝 인기를 끌고 사라졌다.

당시 이런 하이틴 영화가 반짝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정부의 우수 영화 선정 기준에 하이틴 영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수영화에 뽑히면 정부에서 외화 수입 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다. 1973년 개정된 제4차 개정 영화법을 보면 우수영화는 '10월 유신을 구현하는 영화'로서 1) 애국애족의 국민성 고무 진작, 2) 진취적 국민정신의 배양, 3) 새마을 운동의 적극 참여, 4) 농어민 계몽, 5) 성실, 근면, 검소한 자세의 인간상, 6) 조국근대화의 산업전사 소재, 7) 국민의 총화단결, 8) 국민의 각성 촉구 등 17가지 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한마디로 법으로 유신정부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온 상황이었고, 고교얄개는 바로 그런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개구쟁이 주인공 나두수의 장난으로 시작하는 영화. 교실에 50명 넘게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이 지금은 낯설다.

학교 건물에 선명한 '오늘의 안보 없이 내일의 번영 없다.' 지금 와서는 낯설겠지만, 80년대 까지 이런 슬로건은 익숙했다.

옛날 교복하면 바로 떠오르는 빵집, 단팥빵에 우유에서 시대가 느껴진다. 뒤에 보이는 포스터는 영화 벤지(1974)로 한국에서는 1976년에 개봉했다. 촬영 시기를 보면 당시에 주변 극장에서 광고용으로 붙여 놓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이제 담벼락에 포스터를 붙이지 않게 되었구나....

벤지는 미국에서 '개 나오는 영화는 안된다'라는 통념을 깬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대히트했다. 국도, 대한극장에 걸렸을 정도니...

두수의 집은 2층 양옥집, 뒤에 호철의 아파트 옥탑방하고 비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전형적인 부잣집.

영화의 또 하나의 무대는 조연인 선생님이 하숙하는 근대화 연쇄점, 이름에서 시대가 느껴진다. 연쇄점은 체인 스토어를 뜻하는데... 요즘은 체인 스토어라는 말도 안 쓰네.

7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보석 같은 공간. 서울 분유, 전지분유 캔, 넥타 캔과 샘표 꽁치 통조림, 써니텐, 펩시 콜라 칠성 사이다 등과 당시의 상품 디스플레이를 알 수 있다. 특히 껌 디스플레이.

빨래집게에 물려 디스플레이어 되어 있는 이태리 타월과 목장갑 등. 이태리 타월은 정말 이태리 타월이었구나 싶은 장면. 당시에는 저렇게 빨래집게에 매달아 디스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원, 미풍 같은 조미료 봉투가 전용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슈퍼 마켙'의 풍경. 연탄을 사용한 호빵 기계는 그때부터 건재했다. 빈 상자에 농심라면, 하이타이가 보인다. 농심은 아직 '롯데 라면'이었던 시절인데 농심 라면의 히트로 사명을 농심을 바꾼다.

달걀을 사면 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담아 주던 시절. 달걀이 아직 고급품이라 한판씩 사가는 사람도 드물었을 듯.

대나무로 만든 파란색 비닐우산, 나무 상자에 담긴 됫병. 친환경이 아니라 플라스틱이 나무보다 고급이었던 시절의 흔적.

장난으로 호철의 안경을 부러뜨린 두수는 사과를 하러 호철의 집을 찾는다. 호철의 집은 달동네 시민 아파트 단지의 옥탑방.


시민 아파트는 판자촌을 밀어내고 그 거주민들을 밀어 넣기 위해지었기 때문에 대부분 달동네를 밀어낸 산자락에 지어졌다. 그것도 1970년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로 인해 달동네 재개발 목적의 시민 아파트는 사라지고 여의도 시범 아파트로 대표되는 중산층 이상을 노린 '번듯한' 아파트가 늘어나게 된다.

시민 아파트에서도 옥탑방에 사는 호철이네 집. 지금이라면 아파트가 빈곤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김장독을 묻을 마당이 없는' 아파트는 김치의 비중이 지금보다도 훨씬 컸던 당시에는 굉장히 부정적인 요소였다.

"저 장관을 이룬 즐비한 고층건물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겠니? 모두가 피와 땀이 이루어 놓은 기적이야." 유신 프로파간다 영화 '고교 얄개'는 호철의 입을 통해 유신 체제와 근대화를 찬양한다. 

낙산의 동숭 시범 아파트, 시범 아파트라는 이름대로 1969년~1970년의 시민 아파트 사업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로 1976년 영화 속에 벌써 노후화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시절에 지어진 시민 아파트 들은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다지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철거되어 90년대 중반에 이미 흔적도 남지 않았다.

당시에도 건재했던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 우유, 플라스틱 병이 '고급'이었던 시절.

여주인공의 등 뒤로 보이는 왼쪽의 미원 디스플레이와 미풍 디스플레이의 선명한 대비. 해태 제과와 롯데 제과의 디스플레이의 대비.

두수는 자기 때문에 다리를 다친 호철 대신 우유배달을 시작한다. 우유는 기본이 병이었던 시절이 디테일. 배달을 하면서 빈병도 수거해야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유리병 보다 플라스틱 항아리 병에 담긴 바나나 우유가 더 고급이던 70년대다.


개구쟁이 두수가 호철을 비롯한 친구와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착실한 '유신의 일꾼'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우수영화로 뽑혀 외화 수입 쿼터를 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영화로는 대성공을 했고, 이승현 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고교얄개는 얼마나 히트를 했는지, 고교 얄개 후속 편을 두고 석래명 감독하고 원작자인 조흔파 선생 사이에서 저작권 분쟁이 일어났을 정도.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은 1965년에 이미 영화화가 되었는데, 여기서 주인공 역을 맡은 것은 안성기 배우로 1952년 생이지만 1957년 '황혼 열차'로 데뷔한 안성기 배우는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아역배우였지만, 대부분의 아역 배우가 그렇듯 대부분 '누구누구 아들'이나 '누구누구 아역'으로 출연하다 얄개전으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포스터를 보면 말겠지만 안성기 배우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이승현 배우도 얄개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서 결국 성인 연기자로 올라가지 못했던 것처럼 안성기 배우는 얄개전을 마지막으로 충무로에서 발을 빼고 대학 입학과 군생활을 거치고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78년 작품인 '병사와 아가씨'들로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다. 우리가 아는 안성기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병사와 아가씨들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병사와 아가씨들도 방향성은 고교 얄개처럼 '우수영화'를 노린 작품인데. 터널을 지키는 군인들과 터널을 오가는 고속버스 안내양 아가씨들의 사랑 이야기 뒤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에 대한 은근한 유신 정권 프로파간다가 깔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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