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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Apr 07. 2024

영화의 원작 소설 흥망성쇠

대결 애니메이션에서 존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까지.

얼마 전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본 영화 '대결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좋아하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 영화화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개봉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개봉관은 적었지만 한국에서도 개봉해서 재밌게 봤다. 원작 소설의 팬으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기대를 만족시켜 주는 작품이었다.


대결 애니메이션이 개봉으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 개봉으로 인해서 원작 소설인 패권 애니가 재판되지 않을까 했었다. 나오키상 수상작가인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소설로 한국에 패권 애니!라는 제목으로 2018년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는데, 진작에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워졌다. 중고로 프리미엄이 붙어서 5만 원에 팔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개봉을 기회로 재판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다.

영화가 개봉하면 원작 소설은 어떤 영화의 원작이라는 띠지를 달고 새로 나오기 마련인데, 패권 애니! 는 대결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되지 않았다. 원작은 좋은 소설이고 영화도 좋았기 때문에 원작이 재조명받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이런 내용의 일본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고 실제로 흥행하지 못했다. 출판사의 선택이 옳기는 했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결국 어떤 영화의 원작인가 중요한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원작인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의 경우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이라는 띠지를 달고 나왔다. 아마 영화의 흥행이 원작 소설의 매상을 의미 있게 올려 줬을 것이 분명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원작을 일제강점기로 옮기면서 원작자도 감탄할 정도로 각색을 잘한 작품이기도 하고, 시대와 배경을 바꾸는 대범한 각색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줄기는 잘 따라간 작품이기도 하다.

여담인데 같은 감독의 올드보이는 원작 만화와 전개와 결말이 완전히 다르다.

톰 크루즈 배우와 에밀리 블런트 배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일본 작가인 사쿠라자카 히로시 작가의 라이트 노블인 올 유 니드 이즈 킬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라이트 노블치고는 하드 SF에 가까운 작품이긴 하지만 일본 라이트 노블 원작으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만드는 경우는 유래가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원작의 맥을 잘 살리면서도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엣지 오브 투모로우' 제목을 붙인 어나더 표지를 내고 대대적으로 새로 찍어냈다. 헐리우드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 소설이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최근에 개봉한 브래드 피트 배우의 블릿 트레인이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마리아 비틀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작품은 일본에서는 굉장히 많이 만화나 영화로 만들어지지만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된 것은 확실히 충격이었는데.

영화는 원작을 잘 살린 것인지 못 살린 것인지 모르겠다. 배경은 원작과 같이 일본 신칸센인데 등장하는 배우들과 캐릭터가 원작과는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애매했다. 왜 배경을 미국으로 바꾸지 않았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미국은 일본의 신칸센 같은 고속열차가 없기도 하는 데다. 종착역에 가까워지며 데드라인에 다가서는 긴박감을 묘사하기 어려웠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영화화되었는데 강동원 배우 주연의 '골든 슬럼버'.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종말의 바보'도 이사카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2008년에 화성의 공주와 화성의 프린세스라는 타잔으로 유명한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작가의 같은 작품이 각각 따로 나온 적이 있었다. Princess of Mars는 1912년에 나온 고전으로 스페이스 오페라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당시에는 약 100여 년 전의 작품인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품이 동시에 나온 이유는 1998년 제정된 '소니 보노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 때문이다.

1978년 1월 1일 이전에 창작된 저작물은 최초로 저작권을 취득한 날로부터 95년간 존속되는데, 1912년에 나온 화성의 공주는 2008년 시점에서 저작권이 풀리기 때문이다. 화성의 공주 시리즈는 11편의 장편이고 한국에서는 중역이나 아동용 축약판으로 1편만 여러 번 소개되었을 뿐이라 두 출판사 모두 완결까지 시리즈로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1권을 출판했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출판사가 하나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작품의 동시 출판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화성의 프린세스'의 승리였다. 왜냐하면

화성의 프린세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존 카터:바숨 전쟁의 서막(2012)'를 개봉하면서 마케팅 파트너로 '화성의 프린세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포스터에 나와있는 '아바타', '스타워즈'를 탄생시킨 불멸의 원작이라는 구절처럼 디즈니는 이 작품을 스타워즈 같은 프랜차이즈로 키우고 싶었던 모양인지 제작비 2억 5천만 달러를 들인 대작으로 만든다. 마케팅 비용 1억 달러를 포함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화성의 프린세스가 재판되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재편되었다. 1,2권을 묶어서 '존 카터'라는 이름의 합본을 낸 것이다. 1권 산 사람은 어쩌라고?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을 팔아먹을 생각이긴 했겠지만 이미 몇 년 전에 1권을 출간하고 2권을 따로 출간하지 않고 합본으로 묶어서 비싸게 팔아먹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출판사 블로그에 따르면 "이번 영화 개봉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 많은 고민 끝에 합본 출간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는데, 1권을 샀던 사람으로서는 배신감 밖에 느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렇게 1,2권을 합본으로 내고 후속작을 어떻게 낼 것인지 걱정했는데, 존 카터:바숨 전쟁의 서막이 디즈니 영화 사상, 아니 미국 영화 역사 사상 유래 없는 흥행 실패를 한 덕분에 속편 제작은 모두 취소되고 출판사에서도 3권 이후의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충실하게 후속권을 내지 않고 한탕하려고 했던 출판사의 선택은 옳았던 것이다.


여담으로 원래 제목은 '화성의 존 카터'였는데 2011년에 나온 디즈니 애니인 '화성은 엄마가 필요 해'가 흥행을 실패하면서 '화성'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을 것을 우려해서 제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디즈니가 존 카터 시리즈를 스타워즈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로 키우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아예 루카스 필름을 사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루카스 필름의 인수가 그렇게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루카스 필름의 인수가 2012년 10월에 결정되었으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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