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빨리 죽어!!!” 문밖에서 들으면 웬 난리 날 소리인가 싶다. 안으로 들여다보면 환갑이 다 된 딸들이 80넘은 아버지와 고스톱 중이다. 이런저런 계산을 자주 해야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부모님께 올 때마다 효녀 딸은 고스톱 판을 펼친다.
“아빠! 빨리 내놔.” 화투를 내놓으라고 막말을 던지고, 광 팔아야 하니 “아빠! 빨리 죽어” 이렇듯 험한 조언을 던진다. 딸들의 앙탈에 어이없어진 여든넷의 아버지는 그저 허허 웃으신다.
며칠 전 동생이 심각하게 전화를 했다.
"언니~"
동생의 심각한 목소리에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왜? 무슨 일이야?" 놀란 내 목소리에 동생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엄마한테 택배를 보낸 게 있었어. 핸드폰 케이스랑 화장품이었거든.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택배 왔다' 하시 길래 나는 핸드폰 케이스가 먼저 도착한 줄 알고 '엄마 그거 돌아가실 때까지 써도 돼요.'라고 말을 했어. 그런데 엄마가 몹시 서운한 목소리로 '아니 이건 일 년이면 다 쓸 거 같은데~~'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는 거야. 그래서 다시 한번 '그거 오래 쓸 수 있는 거예요.'라고 말을 했어."
동생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하기를
"사실 핸드폰 케이스를 가죽으로 좀 튼튼한 것을 사드렸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 화장품이 먼저 도착한 것 같아. 그러니까 엄마가 1년이면 다 쓰겠다고 하신 거였어. 언니 어떻게 해. 울 엄마 서운 했겠지?"
동생의 말을 듣고 나는 어이없어하면서 웃음이 났다. 오지랖 넓은 효녀 둘째가 효도를 하는 중에 말실수를 해 버렸지 뭔가.
"얼른 엄마한테 전화해서 바로 잡아. 엄마도 이해하실 거야."
내 말에 동생은 집으로 전화를 다시 한 모양이다. 금방 전화벨이 울린다. 밝은 목소리다.
"언니 !! 엄마도 그런 줄 알고 있었대. 핸드폰 케이스가 먼저 도착한 줄 알고 그러는 거라 짐작하셨대." 동생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나서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핸드폰 케이스도 예쁜 거 나오면 또 바꿔 드린다고 해. 돌아가실 때까지 쓰라고 하지 말고.”
동생은 또 맞장구를 친다.
“맞아 언니! 그래야겠어. 자꾸자꾸 바꿔 드린다고 첨부터 그럴걸 그랬어.”
우리는 또 한참을 웃었다.
.
동생의 말 때문에 한참 웃게 되니 요즘 직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일이 생각난다. 직장에서 하루에 실천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적어 보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개인이 행복해야 직장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대표님의 뜻이다. "오늘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하기도 바쁜데 그런 걸 생각하라고 하시다니 너무해요."라고 처음에 동료들은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3일째 같은 질문을 하다 보니 오늘 들은 대답 중에는 "고운 말을 해야겠어요." "존중하는 대화법을 찾아야겠어요."라는 대답들을 한다. 결국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언어인가 보다. 자신의 대화로 옆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더더욱 의미 있는 캠페인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이라는 게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센스 넘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티키타카가 이루어져 대화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 내용은 또 얼마나 유쾌한가. 습관처럼 몸에 익은 배려하는 언어는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도 녹여 버리는 게 언어의 힘인 것 같다. 언어에는 찬바람도 있고, 칼바람도 있고, 따뜻한 바람도 있다. 사시사철 부모님 마음을 녹여주는 내 동생의 언어는 봄볕아래 피어나는 아지랑이 바람이다. 내일은 또 어떤 내용으로 전화가 올까? 동생의 전화가 기다려진다.